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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을 서식지로 하던 고래가 최근에는 신안 앞바다에서도 그물에 걸렸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바다환경이 변해서 서식지가 확대된 건지, 아니면 개체수 확대로 인해 남해안까지 진출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확실한 건 예년에 비해 혼획되는 고래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신난 건 바다의 로또를 건진 어부들과 고래고기 맛을 아는 미식가들이 아닌가 싶다.

 

내가 처음 고래고기를 찾아 나선 건 2005년 봄이었다. 현재는 포경이 금지 되어 과거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지만 울산 장생포는 한때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곳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포경선이 불야성을 이루고, 전국에서 고래고기 맛을 보러 장생포항으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생포 어디에서도 과거의 영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겨우 몇 군데 남은 고래고기 전문점만이 여기가 바로 고래고기의 메카 장생포였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택시 기사의 안내를 받아 들른 곳은 장생포고래할매집. 평일의 식당은 최고의 진미를 내는집 답지 않게 한산하기만 했다. 다양하게 맛을 볼 요량으로 모둠(小)을 주문했다. 한 접시에 6만원, 다소 부담되는 가격이다. 그래도 "매일 먹는 음식도 아닌데"라고 자위하면서 경제적 무리수를 두었다.

 

옛부터 일본 고토에서는 고래의 거의 모든 부위를 낭비 없게 이용해 왔다. 버리는 부위가 없다보니 각 부위별로 독특한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게 고래고기의 미덕이다. 흔히 12가지 맛이 난다고들 하는데 12가지 향이 난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닌가 싶다. 그 정도로 부위별 풍미가 도드라진다. 고기의 맛은, 포유류의 고기면서도 쇠고기 등과는 완전히 다르다. 다랑어와도 통하는 독특한 맛을 가지고 있다. 살코기에 대해서는 특히 말고기에게 가깝다는 평도 있어, 실제로 일본에서는 말고기를 고래 고기로 사칭해 판매한 예가 보고되고 있다.

 

 

고래 고기에는 여러가지 부위가 있는 만큼 음식 맛이 달라, 조리법도 나뉘고 있다. 크게 분류하자면 회, 데침, 조림, 절임이다.

 

내가 주문했던 모둠에도 조림만 빠진 상태로 차려졌다. 각자 미각의 차이로 선호하는 부위가 다르겠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일미(一味)로 치는 건 뱃살이다. 일명 '우네'라고 불리운데 아래턱으로부터 배에 걸친 줄무늬 부분의 고기를 말한다. 특유의 쫄깃함과 부드러움이 특징이다. 일본에서는 베이컨 재료로도 사용되는데, 소금절이로 하고 나서 훈제를 한다. 이것을 얇게 썰어서 불에 살짝 구워서 먹는다. 하지만 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본피(몸통의 표피와 피하지방층)로 대용되기도 한다. 한편 나가사키 지방에서는 데쳐서도 먹는데 스야히로(末広)라고 한다. 이는 단면이 끝으로 갈수록 퍼져나가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생강을 곁들여 간장에 찍어서 먹는다.

 

배육, 복육 등의 지방이 적은 부위 살코기육은 생산량의30-4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은 부위다. 주로 요리로 이용되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횟감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흔히 소고기와 비유를 많이 한다. 내장은 주로 삶아서 먹는다. 그중에 고래 좀 먹어봤다는 사람들이 탐내는 부위는 소장이다. 삶은 소장을 썰면 동그란 형태가 된다. 독특한 풍미가 있어 처음 접하면 곤혹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맛과 향에 매료되면 헤어나오기 힘들다. 양이 많지 않은데 찾는 이가 많아 늘 양이 달리는 인기 부위이다.

 

물렁뼈처럼 하얗게 생긴 건 꼬리지느러미다. 지방과 젤라틴질이 풍부한 부위다. 현지 식당에선 오베기로 통용되고 있다. 일본에선 오바(オバ)라고 불리우고 절임을 거치고 나면 사치시쿠지라(さらしくじら)라고 부른다. 약 6개월여동안 소금에 절였다가 얇게 썬 다음 데쳐서 냉수에 담가 차갑게 식혀서 낸다. 일본에서는 초된장을 곁들이지만 우리는 초장과 궁합을 맞춘다. 쫄깃하면서 고래의 독특한 풍미로 인해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거부감을 가질만하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런 매력이 고래를 다시 찾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고래고기찌개도 있어 주문해본다. 특별한 맛은 없지만 동태 무국과 비슷한 맛이다. 시원하고 담백했다. 장생포에서 고래고기와 첫 인연을 맺었지만 사실 고래고기 참맛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고래고기에 하자가 있었다기보다 내 자신이 고래고기에 대해 너무 몰라 생긴 현상이다. 12가지 맛이 난다는 풍월만 가지고 찾는다면 누구나 다 나 같은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그 후, 부산 등지에서 몇번 더 경험을 하였지만 매번 마찬가지였다. 무슨 음식이든 이모저모를 알고 먹으면 맛이 배가되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먹는다면 천하 일미도 맛은 반감된다. 특히 고래고기는 유독 심한 편이다. 나 역시 "아 이게 고래고기의 진미구나"라고 느낀 건 첫 대면 후 몇 년이 흐른 후였다.

 

구룡포의 고래고기 자존심 '모모식당'

 

 

 

장생포 못지 않게 고래로 유명했던 지역은 구룡포이다. 바다에서 잡은 고래를 장생포항으로 가져오기에는 먼 거리고, 때문에 보다 가까운 구룡포에서 해체를 하였기 때문이다.

 

고래고기 유통의 본고장이 된 구룡포답게 현재도 고래 해체 전문가는 구룡포에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물에 걸린 고래가 많이 해체되는 곳은 구룡포이다. 이런 환경을 지닌 구룡포에 어울리는 고래고기 전문점이 있다. 구룡포 읍내에는 모모식당과 삼오식당이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다. 현지인의 안내를 받은 곳은 모모식당이었다. 하지만 두 집 다 맛에 있어 별 차이는 없으리라는 판단이다.

 

가격표를 보니 울산에 비해 약간 저렴한 편이다. 먼저 수육 한 접시를 주문했다. 막 썰어 내왔지만 수육의 상태는 여느 집에 비해 준수했다. 퍽퍽한 살코기는 되도록 배제하고 대신 다양한 식감과 맛을 지닌 부위들로 채워졌다. 그래도 아쉬운 건 있다. 오베기라 불리우는 꼬리지느러미 부위가 빠지고 대신 몸통 부위를 이용한 사치시쿠지라가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나머지 부위들이 탁월해 아쉬움을 덜어주었지만 아쉬움은 또 있다. 수육에 내장 몇 점 올라가 있으면 금상첨화련만 어이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그렇다고 그냥 넘어간다면 돌아가 후회할 건 100%! 도우미를 불러 내장을 청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이미 동났다는 비수다. 어쩌겠는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고래고기가 아무리 미식의 소재로 사랑받는다지만 기호식품이라 할 정도로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그만큼 낯설어 하는 인구가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고래고기는 별미이자 우수한 영양식품이라 할 만 하다. 양질의 단백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EPA(고도불포화지방산)도 함유하고 있어 혈관 계통의 응고를 억제하는 효과, 발암 예방 효과 등이 있다. 또한 DHA는 뇌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까지 나와 있다.

 

 

고래의 철분은 흡수되기 쉬워 고품질 철분의 공급원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는 편이다. 철분은 신체 조직에 산소를 운반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철분 부족은 빈혈의 원인이 된다고 하니 빈혈환자에게도 좋은 고래고기다.

 

고래 적육회와 배의 지방부위와의 만남은 지금껏 맛본 고래고기 중에서 가장 잊히지 않은 경험이었다. 미끌거리면서 쫄깃한 지방쪽과 사르르 녹는 적육회의 조화라니...

 

오랜 명성에 걸맞게 고래전골도 수준급이지만 아무래도 미각의 만족도 면에서 보면 회나 수육에 밀리는 편이다. 내 미각의 기준이 그렇다는 얘기다. 국물을 선호하는 그대라면 전골도 주문해보시라. 맛이란 누가 뭐래도 자신의 기준에 의한 선택이 가장 중요하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래고기, #울산 장생포, #구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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