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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대낮에 폭우가 쏟아진다. 푸르딩딩한 무성한 나무들이 초록빛 춤을 춘다. 몸을 통째로 흔들며 헤드뱅잉을 한다. 등걸들은 폭우를 맞아들여 검은빛으로 젖어 축축하다. 대지에 충만한 여름꽃들이 저마다 다른 얼굴로 화들짝 웃고 있다. 성하의 생명들이 내뿜는 기운으로 대지는 향연을 벌인다. 아,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아름다움이여!

그런데 그토록 꽃을 좋아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축제에 눈 감은 채 생애 최초로 긴 잠에 빠져 계신다. 아마도 너무 지치셨나 보다. 그래, 그 분은 정말 지치실 때가 되었다. 너무도 길고 험한 길을 오랫동안 걸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께 고마운 까닭이 너무 많다.

수구 기득권의 정글에서 살아남다

도쿄 납치 생환미사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도쿄 납치 생환미사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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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일제치하에 태어나 성장해 해방과 전쟁 그리고 분단독재를 겪었다. 자유당 민간독재, 박정희 군사독재를 통과했다. 그 사이에 여러차례 생사의 기로를 헤매었다.

이승만 독재가 4·19의 순결한 피로 무너진 후, 그 아리따운 젊은 피의 흔적이 마르기도 전에 5·16군사쿠데타가 헌정을 유린했다. 불행하게도 김대중은 바로 그 때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가 박정희 장군의 의회해산조치로 선서조차 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그의 삶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1973년에 유신독재는 그를 납치에 일본 근해 바다에 수장시켜 죽여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군사독재의 그 기획은 실패했다. 그러자 7년 후에는 박정희 종신집권 체제였던 유신을 추종하는 전두환 등이 그를 다시 잡아들여 사형을 선고했다. 터무니없이 날조한 '내란음모'를 덧씌웠다. 그들은 백주대로의 납치살인이 아닌, '사법살인'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는 구사일생했다. 국내외 양심들이 구명운동을 줄기차게 해 전두환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는 목숨을 부지했다.

돌이켜보면 해방공간에서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은 무수히 목숨을 잃었다. 김구나 여운형 등은 암살당했다. 진보당을 일으켜 어느 정도 성공을 움켜쥔 조봉암과 민족일보의 창간자 조용수 등은 국가보안법의 사슬에 묶여 '법살'당했다.

박정희 장군의 5·16 군사쿠데타가 '반공을 국시의 제1의'로 선언한 이후로 대한민국에는 증오의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페스트 균보다 더 강력한 이 바이러스는 '민주' '평화'라는 말에도 발작을 일으켰다. 대한민국은 오로지 '경제성장' '조국 근대화'라는 단 두마디 이외의 말을 허락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평화'라는 말은 불가촉천민이었다. 아니, 한센병 환자 문둥이처럼 멀리서 보기만 해도 도망 가야 일신의 안위를 지킬 수 있었다.

'민주주의'는 그만큼 위험했다. 살짝 밟기만 해도 목숨을 잃거나 신체일부가 파손되는 부비트랩이었다. 하이에나가 어슬렁거리는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민주주의니 평화통일이니 하는 말은 입에 담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김대중은 그런 위험한 말을 일삼았다. 그것은 바로 그 자신의 기본 신념이요,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용케 목숨을 부지해 살아남았다. 허리 잘린 반도의 북녘과 그곳의 굶주리고 헐벗은 동족을 연민하고 도와주는 대신에 '탱크가 주석궁을 쳐들어가' 물고를 내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승냥이 떼들이 우글거리는 극우 광신 이념의 정글에서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마침내 국민의 선택에 의해 '국민의 정부'의 수장이 되었다.

어찌 고맙지 아니한가. 나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던 밤에 한없이 울었다. 그래도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믿음을 준 그가 너무 고마웠다. 대한민국과 그 국민됨이 자랑스러웠다. 행복했다.

가장 돋보인 정책, 남북평화공존과 기초생활보장제

지난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지난 2000년 6월 13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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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가 날조해 덧씌워놓은 '누명'으로 인해 그는 평생 고통스러워했다. 김대중의 사상이 불그스레하다고? 과격하다고? 이는 단군 이래 최대 거짓말이다. <조선>, <동아>가 민족 정론지라고 얘기하면 네티즌들이 '허무 개그'라고 하듯이.

김대중은 확실한 평화주의자다. 그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증오한다. 그는 또한 뼛속 깊이 민주주의자다. 반대 세력과의 대화를 트기 위해 혼신으로 노력하는 '대화 지상주의자'다.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이라고 조롱하고 매도하던 중공으로 날아가 물꼬를 튼 닉슨의 정책을 평가한다. 비록 자신에게 사형을 '선물'한 신군부의 핵심이지만 노태우의 '7·7선언'을 높이 평가한다.

후일의 역사가들이 평가할 몫이겠지만 그가 재임기간에 성취한 정책 가운데 가장 돋보인 것은 '남북평화공존'과 '기초생활보장제'다.

그의 '햇볕정책'은 급조한 것이 아니다. 오래 숙성된 것이다. 71년 '선거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진' 대선 때 이미 '4대국 보장론'을 주창한 이래로 일관되게 다듬어진 것이다. 이 평화주의 노선은 국제 공인을 획득했고 노벨 평화상이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어찌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실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아니던가.

'6·15남북정상회담' 성사로 우리는 비로소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평화는 곧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는 인간의 존귀함을 지켜주기 때문에 인류가 추구하는 가장 고귀한 가치다.

김대중은 또한 80년대식 수사법으로 '민중주의자'다. 그가 친지에게 가장 자주 써주는 휘호의 글귀는 '事人如天'(사인여천)이다. 백성 섬기기를 하늘같이 하라는 동학의 핵심사상이다.

그는 우리의 이 동학사상을 예로 들면서 국제사회 논쟁의 주인공이 된 적이 있다. 서구의 민주주의를 무작정 아시아에 이식하려는 서구문명사회를 향해 아시아의 전통과 문화에 맞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내뱉은 리콴유 수상과 맞붙은 '아시아의 가치논쟁'이다. 그는 민주주의가 '문화가 아니라 운명'이라고 받아쳤다. 국제사회는 김대중의 손을 들어주었다.

김대중은 우리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거처하는 약자들에 대해 천래적인 감수성을 지녔다. 청년시절부터 노동문제에 대해 '개발독재'와 다른 논리와 철학을 보유했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노사정위원회'를 맨 먼저 꾸렸다. 그만큼 대화와 타협에 의한 노동정책을 존중했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비합법 굴레를 벗겨버렸다. 그는 일생에 감동받은 일로 80년대에 노동현장으로 달려간 소위 '위장취업' 대학생을 꼽는다.

이러한 그의 인간관은 자립 능력이 없는 취약계층을 향한 국가의 보호의무를 관철했다. 만난을 무릅쓰고 '기초생활보장제'를 실현했다. 지금도 200여 만 명의 국민이 이 제도의 보호 아래 인간으로서 최저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복지의 기초이자 사회안전망의 설치인 것이다.

보수적인 법무장관과 한꺼번에 과욕을 부리는 시민단체 사이에서 안팎 곱사등이가 되면서 국가인권위원회를 설립한 것도 같은 관점에서 이룩한 쾌거다. 패권적 국가권력의 본성을 아는 그는 '모성적' 국가기구의 필요성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지도자였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은 뜨거운 '휴머니스트'다.

여성인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또한 천래적인 '페미니스트'다. 13대 국회에서 가족법을 개정할 당시 그는 직접 여당 대표와 실력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법안심사소위에 가족법을 상정조차하지 않으려는 소위원장을 전격 교체하기도 했다. 국회 본회의에 가족법이 통과되는 순간 박수를 치는 그를 동료 남성 국회의원들은 볼이 부어터진 채로 쏘아보았다고 한다. 남자 특권 다 내주고 무에 그리 좋으냐고.

"내 몸의 반이 무너지다"

지난 5월 29일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울고 있다.
▲ 오열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지난 5월 29일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울고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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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 작가인 필자에게 김대중은 걸출한 수사를 구사하는 웅변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그의 수사는 단연 빼어났다. '내 몸의 절반이 무너졌다'라고. 이는 그가 수사학에 능란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그의 진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진실로 온몸으로 슬퍼하고 통곡했다. 그 지극한 슬픔이 노구의 그의 에너지를 많이 앗아갔으리라 본다. 그는 그만큼 슬픔이 깊었던 것이다.

그런 그 분이 지금 위태롭게 꺼져드는 숨을 쉬고 계신다. 그가 이 위험천만한 하이에나의 정글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독재를 미워하고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는 우리들에게 등불이 되어줘서 너무 너무 고맙다.

그러나 염치없게도 다시 기도한다. 아직은 가실 때가 아닙니다. 13일은 그가 36년 전에 동경 한복판에서 납치되어 수장의 위기를 넘기고 동교동으로 생환한 날이다. 병상에 계시지 않았더라면 조촐한 제2의 생일상을 차렸을 것이다.

36년 전 그 날, 아무일 없었던 듯이 나타난 것처럼 그렇게 일어나실 것이다.
마치 편하고 긴 잠을 자고 벌떡 일어나는 사람처럼.
많은 이들이 그렇게 되기를 간구함으로 반드시 그리 될 것이라 나는 믿는다.

그는 지금 '한여름 밤의 꿈'속에 계실 것이라고.
우리의 고려가요 한구절을 병상의 그분께 소리높여 불러본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 살라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셜운님께 외치노니 꿈꾼듯이 일어나소서

덧붙이는 글 | 필자 유시춘씨는 소설가이자 전 국가인권위원입니다.



태그:#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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