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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00일학교 2기생 맞을 준비로 바쁘다. 집 이구석 저구석이 모두 손 볼 곳이다. 한참 일을 하다 돌아오니 어머니가 전을 부치시면서 하나 먹고 하라고 손짓하신다.

이 더운날. 겨울이라며 뚜꺼운 윗도리를 입으시고 불가에 앉은 어머니 표정이 아주 흡족하시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호박전이다.

호박전으로 나를 부르신다.
▲ 호박전 호박전으로 나를 부르신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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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 선생께서 이 더운날 부침을 차려 주신 것이다. 부엌에서 하면 훨 쉬운 것을. 안 해도 누가 뭐라지 않는 것을. 부러 마루에 차려놓고 어머니가 하실 수 있도록 하나하나 뒷 감당을 해 주신다.

어머니 솜씨가 활짝 피어나셨다. 어머니 솜씨는 예나 지금이나 뛰어나시다. 전을 발라당 뒤집는 것도 그러려니와 오줌이 좀 묻었을(?) 혐의가 짙은 손을 씻지도 않고 덥썩덥썩 손바닥으로 전을 뒤집는 것도 남들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어머니만의 솜씨다.

전굽기
▲ 전굽기 전굽기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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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부침 굽는 일이 끝나고 손까지 씻어주시니 흐뭇한 울 엄니.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내가 어머니 모시고 산 세월과 거의 맞먹는다. 우리 집안 어떤 가족보다도 우리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계시다.

<똥꽃> 출판기념찬치 때 모셨었다. 특별히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모시고 큰 꽃 다발을 드렸는데 꽃 다발 하나로 답례하기에 은혜가 너무 크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가시고 어머니는 입가를 슥 문지르고 나를 빤히 쳐다 보셨다.

정구지
▲ 정구지 정구지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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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뭐 먹을 거 없나?'가 아님은 안다. '더 뭐 할 일 없냐?'는 물음임을 나는 안다. 마당에 정구지(부추)를 나란히 잘라다 드렸다. 어머니는 또 신이 나셨다. 으험. 이걸 나 말고 누가 한단 말고. 있음 나와봐라 그래!~

어머니 입에서 박물관 학예사나 할 수 있는 말이 쏟아져 나온 것은 이때부터다.

"아이고~(이건 감탄사다. '아허아롱다리' 같은 말이다. 어디 간다는 미(米)국말이 아니다.) 정구지 꽃 핑거 봉게 나락 두벌 논 맬 때 됐네?"

어머니 말씀을 듣고 유심히 봤더니 진짜로 부추에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정구지
▲ 정구지 꽃망울 정구지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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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때다 싶어 끼어 들었다.

"정구지 꽃 피면 나락 두벌 논 매요?"
"두벌논을 잘 매야 돼야. 초벌논은 매 봤자 땅 속에 있는 풀씨가 도로 나능기라."
"두벌논은 땅 속 풀씨가 안 올라와요?"
"찌랄하고로 그것도 모르능기 서당 간다고. 느그 서당 선상은 그렁거또 안 갈차주나? 책 보고 농사 짓는 놈 두지(곳간) 안 비는 놈 없다카더라."

짐작컨대 두벌논을 매면 나락이 많이 자란 때라 더 이상 풀씨가 싹을 틔우지 못하리라. 나락의 울창한 그늘 밑에는 햇볕이 들어가지 못하니까 말이다. 근데 지금 우리 논을 제외하고 다른 논들은 나락이 패고 있다. 두벌논은커녕 논에 들어가지도 못할 상태다. 나락 꽃 다 떨어지니깐.

그노무 종자개량이 계속되면서 철이 다 어긋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식생들과 수 천년을 피고 지고 열매 맺기를 짝을 이뤄가며 해 왔는데 요즘은 다 어긋나고 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가 안타까울 지경이다.

머위 가리기
▲ 머위 머위 가리기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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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를 다 가리신 우리 어머니. 탄력을 받으신 우리 어머니. 좀 쉬셔도 좋으련만 주문은 계속된다.

"또 뭐 할 거 없어? 이리 각꼬와아~"

나는 밭에 가서 좀 쇠어 버렸지만 그늘쪽 부드러운 머위대를 잘라다 드렸다. 솥에 살짝 삶아 드렸다. 껍질을 벗기시면서 들깨 갈아서 들깨국 끓이시란다. 역시 대단한 솜씨다. 겉껍질은 물론 속 심을 하나 안 남기고 다 볽아 냈다.

진짜 어머니 솜씨는 그 다음 단계에서 드러났다. 앙그레 킴인지 뭐가 봐도 혀를 내 두를 것이다. 보라! 10년도 더 됐을 내 모시 반 바지를 가져다 무르팍이 헤진것을 보라 색 한 조각 갖다 붙이고 말끔히 꿰매셨다.

바느질
▲ 바느질 바느질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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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의 마술이었다. 나희덕 시인은 자신의 저서 <보라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 창비 ->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황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노랑과 빨강은 어디에서 끝나는가. 빨강과 파랑을 엄밀하게 갈라놓는 보라색의 한계는? 보라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경계를 보라.....

울 엄니의 보라는 나희덕의 보라를 뛰어 넘는다. 멀쩡한 어머니 모시 적삼 호주머니를 하나 장례치르고 얻은 조각이기 때문이다. 빨강과 파랑의 경계가 아니라 거룩함과 풍요로움을 베푸시는 온전한 모정이다.

휴지로 꿰메다
▲ 휴지로 꿰메다 휴지로 꿰메다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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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전위적 발상은 바로 그 옆이다. 보라는 어쩌면 견인색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얇은 휴지조각을 대고 기워 놓으셨다. 영화제에서 상 받는 여배우의 의상에나 어울리는 저 환상적인 옷감을 보라. 바느질 역사에 길이 기록될 어머니의 신 소재 감각!

날아 오를 것 같은 가벼움과. 속박감이 없는 성긴 바느질. 솜보다 따스해 보이고 속살같은 부드러움. 종류를 불문하고 습기에 대한 거부! 짧디짧은 수명을 보란 듯이 내 걸고 있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어머니, #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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