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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은 없었나요?"

"그런 적 없어요.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내가 재밌다고 느끼며 해온 일이기 때문에 전혀 어렵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랄까. 올해 세계소리축제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전주대 김정수(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 교수는 30년 가까이 지역에서 문화 활동을 해오는 동안 한 번도 어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고 한다.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을 통해 전공과는 상관없는 연극과 인연을 맺고, 대학원에서 희곡을 전공한 뒤, 각종 지역축제의 공연기획과 연출을 맡아 왔지만 이 모든 게 자신이 스스로 재미를 느끼며 해온 일이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겪은 애로사항은…."

"그런 것도 없어요.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잖아요. 물론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지역에 남은 거에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요. 하지만 저는 지방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억울하다? 속상하다? 이런 걸 느껴본 적이 없어요. 저는 지방이라고 해서 결코 한계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세계소리축제 준비로 바쁜 김 감독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특히 지역문화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중앙(서울)에 예속되지 않는 독자적인 지역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바로 지역문화를 이끌어 갈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 그가 진두지휘하고 있는 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팀 역시 사람을 찾다 못 찾아서 현재 두 자리가 공석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지난 5일, 지역문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김정수 감독을 만나봤다.

"지역 문화인력 양성은 시급한 문제"

지역에 사람이 없다는 그의 걱정은 사실 한 두해 고민이 아니다.

"지난 2001년 제2회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장 일을 하면서도 느낀 건데,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에요. 지금 소리축제 프로그램팀도 사람이 없어 공석으로 남아 있는 상태고요. 그런데, 대학을 가면 또 학생들은 일할 곳이 없다고 얘기해요. 이게 안 맞는 거예요. 그렇다고 서울에서 사람이 내려온다? 그건 아니거든요. 물론 아직까지는 박봉에 임시직이란 문제가 있지만요…."

김정수 감독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전주대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前 연극학과)는 연극뿐만이 아니라 문화기획이나 예술경영까지 포함하는 학과를 만들자는 의미에서 학과명이 변경된 경우다. 그만큼 앞으로는 영화나 연극같은 단일 장르가 아닌 복합적인 장르에서 많은 인력이 필요하게 될 것이란 얘기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 축제만 1천 개가 넘어요. 너무 많은 것은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축제가 그렇게 존재하는 한 누군가는 이 축제를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좋은 이벤트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수많은 공연과 퍼포먼스가 관여돼 있는데, 누가 기획을 하고 누가 공연을 해요?" 

문화의 외형이 넓어지고, 크로스오버 경향으로 새로운 공연문화가 확산될수록 인력수급은 절실한 문제가 된다. 결국 이는 지역인재 양성의 중요성으로 이어지지만, 서울로 가지 못한 (혹은 가지 않은) 대학생들의 심리에 자리 잡은 'in 서울'의 욕구를 달래기가 쉽지 만은 않다. 오히려 지역문화를 비롯해 지역 자체에 관심 없는 학생들에게 '지역에서도 할 수 있다'라고 외치는 것은 자칫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김정수 감독은 "지역이라고 해서 절대 패배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주문한뒤, 지역이 서울보다 비교우위에 설 수 있음을 현실적인 이야기로 풀어냈다.

"서울에서의 10년, 지역에서는 3년 만에 가능"

"문화 활동을 하는 후배들과 대학생들을 만나면, 특히 신입생들의 경우 'in서울' 하지 못했다고 패배의식 느끼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거예요. 경제적인 부분은 중앙 예속이 강하지만 문화는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전주국제영화제와 세계소리축제가 보여주듯, 얼마든지 우리지역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어요."

지역이 침체돼 있다고 해서 문화까지 기죽을 필요는 없다는 김 감독. 오히려 그는 서울에서 다수를 상대로 경쟁하는 것보다는 지역에서 승부를 보는 게 개인에게는 훨씬 더 짧은 기간에 문화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길임을 제시했다.

"물론 이를 물리적, 산술적 수치로 계산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서울에서는 10년 해야 간신히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일도 지역에서는 3년이면 충분히 자신을 어필 할 수 있어요. 이미 전주에도 뛰어난 문화예술인이 많고, 전국 최고의 축제도 있잖아요. 결국 무언가 원하는 게 있으면 자신이 만들겠다는 그런 의욕이 중요한 겁니다."

김정수 감독은 또한 문화예술에 대한 행정 지원 부분에 있어서도 과잉상태에 이른 서울보다는 지역이 훨씬 유리하다며, 오히려 지역에서 일을 하는 것이 개인의 활동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공연제작 측면에서만 이뤄질 게 아니라, 문화예술인 개개인에 대한 투자로 이어져할 것이란 바람을 내비쳤다.

"서울 지향적 마인드 경계해야"

전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김정수 감독은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는 지방대학의 현실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내비쳤다.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지만 서울로의 지나친 쏠림현상이 있잖아요. 대학만 보더라도 우선 서울권 대학과 지방대학으로 갈려요. 지방대학이 가지고 있는 어떤 훌륭한 인프라가 단지 서울이 아니라는 점에서 저평가 받는 거죠. 그게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느낍니다."

김 감독은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지방분권 정책을 통해 지방 문화를 되살리려는 마인드가 퍼져나갔지만, 현재는 서울 집중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며 이는 경계해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서울로, 서울로…. 이런 마인드가 앞으로 언젠가는 지역문화의 목에 칼을 들이댈 날이 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울 쏠림 현상아래에서 지역문화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야기는 다시 사람을 키우고 인재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앞의 논의로 돌아온다. 이 부분에 이르자 김 감독꼭 우리 지역의 인재만 우리 지역문화를 지켜 나가는 것은 아니라며, 다른 지역의 젊은이들도 전주와 전라북도로 와 일할 수 있게 하는 '문화교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우리지역만 살리자'고 하는 거도 문제가 있어요. 지나치게 폐쇄적일 필요가 없다는 거죠. 다른 지역 사람을 끌어다 이곳에서 일하게 하고, 또 그 사람을 전주와 전북에 살게 하면 더 좋잖아요. 지역과 지역 간의 문화교류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면 지역문화를 지키는 것과 인력 수급문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서울국제영화제'와 '서울세계소리축제'는 무언가 어색하다. 나라안팎에서 주목하는 '전주국제영화제'와 '세계소리축제'가 열리는 곳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전주, 그리고 전북이다. 지역이 서울보다 부족한 것은 많지만, 오히려 나은 점도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먼저 깨닫는 일. 가능성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세계소리축제, #지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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