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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8월 7일)는 용산참사 발생 200일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어제도 서울을 갔습니다. 200이라는 '마디숫자'가 나를 집에 있지 못하게 했고, 서울로 용산으로 이끌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와 또 대학생 딸아이와 함께, 또 한번 가족동반으로 '용산미사'에 참례했습니다.

 

 200이라는 숫자와 잘 어울리는 것 같은 20명 사제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주례하시는 맹제영 신부님의 "죽은 남편은 나와 함께 있다"는 내용의 인사말을 들으면서, 김규봉 신부님의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주제로 한 강론 말씀을 들으면서, 그리고 미처 미사에 오지 못한 아들녀석의 몫까지 네 개의 큰 '컵 초'를 다섯 영혼의 영정 앞에 봉헌하면서 시(詩)를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번 '용산미사'에 참례하면서 여러 개의 글을 썼지만, 문인 명색으로 살면서 아직 용산 관련 시를 하나도 짓지 못한 것을(하느님께 봉헌하지 못한 것을) 죄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미사 후 내 아이들의 자취방이 있는 합정동으로 가면서 시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자취방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오래도록 깨어 있으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를 지었습니다. 거룩한 '용산미사'에 참례하면서 짓게 된 이 시를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과 용산참사로 숨진 영혼들께 바칩니다. 

   

 

용산에는 오늘도 꽃불이 피어난다

―용산참사 발생 200일의 굽이에서

 

 

창조주의 신비한 섭리에 따라

사람으로 태어났다

이 땅이 이민족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

이념 갈등이 극심하던 시절에

대한민국의 백성으로 태어났다

 

하느님을 배우고 느끼고

깨닫고 믿으며 살아온 60평생 동안

더욱 사람이고자 했다

 

늘 감사하며 살고자 했고

동정심을 가장 값진 마음으로 여겼고

수치심을 생명처럼 간수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늘 양심을 생각하면서

뜨거운 가슴으로 고뇌하며

때로는 눈물을 지니고자 했다

 

냉철한 분별의 눈 위에

정의를 갈망하는 마음 위에

눈물을 사랑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오늘 또 한번 눈물짓는 마음으로

용산을 간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 구석

남일당 골목을 잊을 수 없어

여름 한철

무수한 피서객들이 삶을 즐기려 몰려드는 곳에서

집을 떠나 다시 용산을 간다

 

그곳을 갈 적마다

'깊은 슬픔의 구렁 속에서 울며 탄식하는'

시편 구절을 다시 듣고 접한다

 

그곳에서는 오늘도

나자로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시는

예수님의 눈물을 본다

십자가를 메고 넘어지며 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님의 모습을 본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지으시는

애처로운 성모 마리아님을 본다

 

오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예수님을 보고

그 앞에서 오열하시는 성모님을 보며

멀찍이 구경꾼으로 서 있는 군중들

무심히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 가운데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십자가의 길

눈물의 여정이 나를 살게 하는 힘임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다시 눈물의 그 길 위에서

무거운 물음표를 십자가처럼 어깨에 멘다

십자가를 멘 마음으로 수없이 물었지만 다시 묻는다

묻고 또 묻는다

 

메아리가 없음을 잘 알면서도

느닷없이 메아리 아닌 광풍이 불어올지라도

쉬운 우리의 국어로 다시 묻는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어쩌자는 걸까?

왜 시신 공개도 하지 않고,

시신을 내주지도 않는 걸까?

왜 장례도 치르지 못하게 하는 걸까?

 

무려 1만 쪽이나 되는 수사기록을

모두 공개하라는 법원의 결정을

왜 무시하는 걸까?

3천 쪽을 감추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검찰공화국이라지만

그럴 수 있는 걸까?

 

의문부호마저 잡아 가두려는

이상하고도 울울창창한 밀림

혼돈의 세월 속에서 

질식해 가는 민주주의의 방황을 본다

광기의 발톱으로 상처를 입고 피 흘리는

민주주의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그리하여 그 신음과 눈물 속에서

오늘 다시 골고타의 십자가를 본다

무수한 희생 속에서

끊임없이 소생하고 부활하는

눈물의 생명력을 본다

 

육신은 죽여도

마음은 죽일 수 없음을!

진실과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엄혹한 냉동고 안에서도 되살아남을!

용산 남일당 골목 안에 우뚝 선 십자가가

온 세상에 뜨겁게 현시한다

 

비록 우리에게 인위적 광장은 없을지라도

용산의 남일당 골목은 이 세상에서 가장 드넓은

심장 박동이 힘차게 굽이치는

민주주의의 광장이 되었다

 

날마다 촛불로 피어나는 작은 기적들이 쌓이고 쌓여

위대한 역사창조의 장이 되리니

비록 오늘 또다시 눈물을 흘리더라도

그 눈물의 힘으로

용산의 남일당 골목, 드넓은 광장은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산상수훈'을 설파하신 언덕

여덟 가지 진복이 영원히 꽃피어나는

생명과 평화의 꽃언덕이 되리라!

 

 

 


태그:#용산참사, #용산미사, #남일당, #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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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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