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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에 휩싸인 산봉우리들...안개 서서히 걷히고..
▲ 성인봉... 안개에 휩싸인 산봉우리들...안개 서서히 걷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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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높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섬, 섬에 들어갔어도 파도 높이 일면 발이 묶이는 섬, 쉽게 손닿지 않고 발 닿지 않아 처녀림 같은 섬, 쉬 갈 수 없기에 아득한 섬에 내 첫 발이 한 여름날에 닿던 그날의 설렘이 떠오른다. 그 섬을 알기엔 지극히 짧은 시간, 이곳에서 2박 3일을 머물렀다. 

화산섬 울릉도는 섬마을의 활기와 내륙의 고요함이 공존하고 있는 섬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울진에서 울릉도까지를 순풍이라도 이틀이 걸리는 뱃길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이야 쾌속선이 생겨서 그나마 3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섬이지만 옛날에는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가려면 7,8시간씩 배를 타고 가야했다.

호젓한 숲길 한참 이어지고...
▲ 성인봉 가는 길... 호젓한 숲길 한참 이어지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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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섬 울릉도를 처음으로 와서 도동항을 비롯해 해안절벽으로 이루어진 화산섬에서도 생을 잇대어 살아가는 마을과 기암절벽으로 이 섬에서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의 고요함을 만났다. 나리분지는 면적이 1.5km2, 동서 약 1.5km, 남북 약 2km,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이다.

이곳엔 울릉도 개척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투막집과 너와집이 있으며 섬백리향 군락과 울릉국화, 성인봉 원시림 등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 더덕농사를 짓는다. 초록으로 깔린 평지 곳곳이 더덕 밭이고 각종 나물 밭이다.

하룻밤을 지새우고 난 이튿날 아침, 남편과 함께 울릉도의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성인봉(984m)에 오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성인봉 등반코스는 크게 4코스로 나뉜다. 도동 대원사, 사동의 안평전, kbs중계소, 그리고 나리분지에서 오르는 길이다. '늘푸른 산장'앞에서 출발하니 넓고 푸른 숲길로 접어든다.

알봉분지를 지나며...저 뒤에 투막집이 얼핏 보이고...
▲ 성인봉 가는 길... 알봉분지를 지나며...저 뒤에 투막집이 얼핏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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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이 잘 들지 않는 서늘한 숲길을 계속 걸어 올라간다. 새벽 일찍 나온 사람들인지 어느새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얼마쯤 가다보니 오른쪽 숲길 옆에 투막집이 보인다. 10시 55분, 알봉분지에 도착했다. 40만 평이라 했던가.

울릉도는 거의 모든 것이 우뚝우뚝 치솟아 있어 손바닥만한 평지도 귀하고 신기하다. 농사짓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의 모두가 산전이다. 연초록 아담한 평지에 풀들이 웃자라 있다. 넓은 숲길 곳곳엔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물들과 풀들이 나무와 이웃하여 싱그럽다.

숲길이 너무 예쁘고 좋아서 걸음에도 리듬이 실린다. 길은 계속 이렇게 넓고 호젓한 숲길로 이어질 것 같은 생각에 우린 여기저기 눈길을 주며 느긋한 마음으로 걷는다. 벌써 산행을 마치고 오는 것일까. 몇 명의 사람들이 마주오고 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벌써 산행 마치고 오는 길인가요?!"
"예."
"길은 어때요?! 멀어요?!"
"몇 시에 출발했어요?!"하고 상대방 아주머니는 되묻는다.

"한 10시 20분 쯤요!"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는 듯싶더니, "그렇다면 그 걸음으로는~"하며 한참 걸릴 것이라 한다. "계단길이 끝이 없을 정도로 한참이에요. 엄청 힘들어요!" 하고 말하고 가던 길을 간다. 그렇게 힘든가?

신령수...울릉도에는 어디든 물이 흔하다...
▲ 성인봉... 신령수...울릉도에는 어디든 물이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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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산보 길처럼 거의 평지길이 이어졌고 또 가볍게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어 이 정도로 계속되나보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긴장이 된다. 이러다 해지는 건 아닐까, 빨리 걸어야 하나보다. 보아하니 이 숲에 든 사람들 모두가 다 산행을 하는 게 아니다.

가볍게 산책하듯 왔다가 약수터 앞에서 되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11시 5분, 성인봉 신령수에 도착했다. 바위틈에서 물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있다. 울릉도에는 '삼무오다'란 말이 있다. '삼무'란 도둑, 공해, 뱀'이 없다는 것이며, '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이 많다고 하여 '오다'라 한다.

울릉도에는 물이 풍부하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물맛은 시원하고 상쾌하다. 신령수 주변에는 나무 쉼터의자와 긴 탁자들이 놓여 있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 있는 작은 대피소도 있다. 숲길을 산보하듯 걸어온 길이지만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산행로가 시작된다. 신령수 앞에서 성인봉으로 가는 길은 원시림, 그 자체다.

원시림이란, 말 그대로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 인간의 손을 타지 않아 피해를 입지 않고 자연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숲을 말함이다. 신령수 위에서부터 성인봉정상부분 원시림은 1967년 천연기념물 제189호조 지정되어 관리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끝도 없을 것처럼 이 원시림엔 계단길 이어지고...
▲ 성인봉... 끝도 없을 것처럼 이 원시림엔 계단길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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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엔 너도밤나무, 왕고로쇠, 섬단풍 등의 군락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들려오나 싶더니 점점 더 환해지고 숲 가득 계곡 물소리가 노래처럼 번진다. 11시 35분, 나무계단 앞에 당도한다. 흐르는 계곡 물로 얼굴을 문지른다.

아주 차갑다. 이렇게 시원한 물줄기가 원시림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흘러 흘러내리고 있다. 위에는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있다. 창원에서 가족들과 함께 온 분이 울릉도를 자주 온 듯 예전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나무계단 길은 몇 년 전만 해도 없었고 가파르게 뻗어 올라간 산을 지그재그 길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 오히려 그때가 좋았노라고 말했다. 원시림도 지금보다 훨씬 울창해서 하늘이 잘 보이지 않고, 숲의 여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 함께 살아가던 넝쿨나무들도 많이 줄어든 것 같다는 것이다. 아마도 원시림을 보존하면서 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정리를 한 듯 하다. 나무계단 길은 직각으로 뻗어 올라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올라갈수록 경사도가 급준 해진다. 양쪽에는 키 큰 나무들과 그 나무들을 타고 올라간 넝쿨나무들이 숲 가득하고 짙은 안개에 싸여있다.

나무아랜 고사리과에 속한 늦고비가 지천으로 깔렸다. 높은 비탈 산 중턱에 두 줄기의 계곡 물이 흘러내려 오다가 밑에서 하나로 만나 하나 되어 흐르고 있다. 나무계단 길을 오르며 바라보는 숲엔 안개 가득하다. 습윤지역이라 계단도 미끄럽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던 청년들, 그 와중에도 계단 수를 세며 올라간다.

안개에 싸여 있는 원시림...늦고비가 지천이다...
▲ 성인봉 가는 길... 안개에 싸여 있는 원시림...늦고비가 지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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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길 쉼터(648m)에서 잠시 휴식한다. 성인봉까지는 1.77km가 더 남았다. 다시 오르막 계단 길, 함께 오르던 꼬마들이 쉬고 있다가 먼저 뛰어올라가던 한 아이가 독백처럼 외친다. "미치겠다. 끝이 안보여!" 우리 옆에서 쉬고 있던 두 아이 중 한 아이가 하는 말, "니가 키가 작은 거야!" 그 한마디에 우린 한바탕 웃는다.

계단을 또 오르다 쉬고 하면서 계속 끝이 안 보이는 계단 길을 올라간다. 해발 984m의 성인봉 정상을 16m가 모자라는 해발고도를 0에서부터 시작해 올라가야하는 도동 쪽에 비하면 좀 수월한 길 일 법도 한데 힘들긴 힘들다. 정말 끝이 안 보인다.

어디까지 이 계단 길 이어질까 궁금하다. 12시 10분, 드디어 나무계단 길 끝, 능선 길 시작이다. 젖어있는 흙길은 발밑에서 질척거린다. 젖은 흙길을 지나 조금씩 오르막길 이어진다. 수령이 500년 된 고목들도 안개 속에 그 텅 빈 속을 내보이며 서 있다.

고목...수령이 500년 되었다던가?!
▲ 성인봉... 고목...수령이 500년 되었다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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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동안 비와 바람과 세월 속에 풍화되고 노화되어서 이제 속이 텅 비어버린 나무들...다 주고...다 내어주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있는 나무들이다. 해발 945m 지점, 쉼터에 앉아 잠시 휴식한다. 바로 옆에는 약수터 '성인수'가 있다.

시간은 어느새 12시 35분. 높이 오를수록 안개는 더욱 짙게 깔린다. 이제 다시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급경사 가파른 오르막 계단 길을 이제는 한. 걸. 음씩 걷는다. 전혀 속도가 붙지 않는다. 그냥 천천히, 스타카토로 한 걸음씩 내딛을 뿐이다.

길옆엔 '섬현호색'과 늦고비가 지천이다. 큰 나무들을 타고 올라가 함께 살아가는 나무들로 또한 숲을 이루고 있다. 해무가 짙게 깔려있어 사진조차 잘 찍히지 않는다. 뿌옇게 흐리다. 성인봉 정상 가까이 오자 조금 전의 공기와 사뭇 다르다. 차가운 한기가 돈다.

울릉도 섬 산행...성인봉 정상에서...
▲ 성인봉... 울릉도 섬 산행...성인봉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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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성인봉 정상 도착, 낮 1시 정각이다. 어쩔거나, 아쉽게도 짙은 해무가 깔려 있어 아무것도 조망되지 않는다. 해무에 싸여있다. 눈앞의 모든 사물은 해무가 다 지워버렸다. 성인봉 정상에는 필경 뭍에서 이곳 섬 여행을 왔을 많은 사람들이 기념촬영도 하고 땀도 식히며 쉬고 있다.

비록 안개에 가려져서 울릉도를 둘러싼 바다도 아니 뵈고 빼어난 경관도 드러나지 않지만 사람들은 한동안 서 있다. 나리분지에서 언제나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봉우리들을 볼 때면 맑은 날에도 산봉우리 높은 곳에는 해무가 깔려 있었다.

울릉도에서 맑은 날은 년 중 55일 정도다. 모처럼의 선물일까. 아주 짧은 순간, 성인봉 정상에서 사진을 찍는 사이에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환해진다. 안개가 점점 물러가면서 구름바다, 흰 솜털구름들이 가득 깔린 눈부신 구름바다가 발아래 펼쳐진다.

성인봉 가까이 있는 산봉우리들이 살짝 드러냈다가 다시 안개가 감싸다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으면 다시 안개로 덮기 시작한다. 바다 빛과 흡사한 하늘 한 귀퉁이가 열리고 옥색 하늘빛도 흰 구름사이로 드러낸다. 우린 두둥실 흰 구름 위에 있다. 마치 흰 눈이 하얗게 내려 깔린 것 같은 구름밭이다.

신령수 앞 쉼터...
▲ 성인봉... 신령수 앞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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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감탄하며 정상에서 내려갈 줄을 모른다. 사람들의 사진 찍기와 행동이 활발해진다. 구름 바다위에 서 있던 우리는 이제 정상 근처에 있는 숲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차가운 공기에 조금 앉아있어도 소름이 돋는다. 낮 1시 35분, 하산한다.

끝없는 계단 길을 이제는 반대로 내리막길로 걷는다. 성인수를 지나고 안개에 갇힌 길을 걸어 계속 간다. 올라가는 길도 힘들지만 내리막길은 항상 조심스럽다. 폭포 쏟아져 내리는 계곡 물에 세수를 하고 신령수에 도착하니 2시 50분이다. 알봉분지 투막 집 옆을 지나간다.

늘푸른 산장을 끼고 나오니 오후 3시 40분이다. 아직 여름 해는 위에 있다. 성스러운 모습이라 성인봉이라 불리는 성인봉은 짙은 해무와 구름에 싸여 쉽게 탁 트인 조망을 드러내지 않는 봉우리다. 연중 55일만이 맑은 날을 볼 수 있다는 울릉도, 성인봉은 오죽하랴 싶다.

섬피나무, 너도밤나무 등의 희귀수목이 자생하는 원시림, 천연기념물 제 189호로 지정된 성인봉 산행이었다. 성인봉 정상에서 섬 전체를 조망할 순 없었지만 선물처럼 짙은 해무를 열어 구름바다 위에 서 있게 했던 짧은 순간, 좋았다.

산행수첩
1.일시:2009년 7월 31일(금).구름
2.산행기점:나리분지 늘푸른 산장
3.산행시간:5시간 30분
4.진행:나리교회(10:15)-늘푸른산장(10:20)-알봉분지 투막집(10:55)-신령수(11:05)-계단길 입구(11:35)-계단길 끝(12:10)-성인봉 정상(정각 1시)-하산(1:35)-성인수(1:50)-신령수(2:50)-알봉분지 투막집(3:15)-늘푸른산장(3:40)-나리교회(3:45)
5.특징:나리분지: 한여름엔 시원함. 투막집, 너와집 있음(문화재)


태그:#울릉도, #성인봉, #원시림, #나리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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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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