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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이란 굳이 다른 말 덧붙이지 않아도 쉬고 싶은 마음을 절로 부른다. 그늘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쉴 틈을 허락한다. 그리고 그늘은 왠지 모르게 초록빛 그득한 나무들 아래서만 태어나는 것 같다. 그늘에선 언제나 나무 냄새가 난다.

 

나무 한 그루와 그늘, 몸 누일 작은 방 한 칸과 쉼, 더는 애쓸 일이 없는 무덤과 안식. 그늘에선 언제나 누군가가 쉬고 있다. 그리고 사람은 때가 되면 영원히 쉬고 싶어 한다. 더는 애쓰고 애달파 할 필요가 없는 영원한 쉼. 그래서인지, 진정한 쉼이란 무엇인가를 말없이 증언하는 무덤들이 산 자들 눈에는 때로 한없이 평화로워 보인다. 여기 이 세상엔 영원히 쉬길 바라는 산 자들이 참 많기도 하다.

 

살 구멍 하나 없어보여도 즐거운 소식 하나 없어도 늘 '만사형통'이다 하며 생을 달래던 내 할머니가 '사라지시고' 남은 것은 기억 뿐. 아니, 기록이던가. 어쨌거나, 더는 손에 잡히지 않는 기억들을 끌어앉고 바라보는 것은 무덤덤한 생을 손에 쥔 나. 그런 나는 지금도 간혹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중얼거리시던 말 한 마디를 꼭 잡고 똑같이 중얼거린다. 삶은 왜 간혹 하염없이 잠에 빠지는가, 하고. 그렇게라도 나는 죽은 이에 대한 기억을 옆에 끼고 삶을 읊조린다.

 

죽음은 때로 삶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는다

 

이영광 시집 <그늘과 사귀다>(랜덤하우스 펴냄, 2007)는 우리에게 쉼이란 무엇인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산 자나 죽은 자나 모두 바라는 '그늘'이란 무엇인지를 잘근잘근 조심스레 곱씹어보게 한다. 그늘 아래 잠시 쉬러 모인 이들은 모여서 '그늘'아래 세월도 묻고 자신도 묻고 안식한 이들을 괜스레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런 마음은 죽은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되기도 하고 삶에 대한 뜨거운 애착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그늘' 아래선 간혹 뜨거운 숨들이 끓어오른다.

 

식은 몸을 말끔히 닦아놓으니,

생의 어느 祝日보다도 더

깨끗하고

희다

미동도 없는데 어지러운

집은, 우물 같은 고요의 소용돌이 속으로

아득히

가라앉는다

(…)

(<그늘과 사귀다>, '쉼' 일부, 33)

 

'그늘' 아래서 태어난 예순 한 가지 시(詩)들은 죽은 자는 기록으로만 증언하고 산 자는 기억으로 알아채는 뜨거운 생에 시원한 바람 한 줄기 흘려보낸다. 뜨거움이 너무 진하여 생이 혼미해지지 않도록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배려라고나 할까. 나뭇잎 띄운 물 한 바가지처럼, 가쁘게 몰아쉬는 산 자들의 지나친 호흡을 매만지는 부드러운 손길은 간혹 긴 세월 썩고 또 썩어서만 나는 진한 흙냄새를 풍긴다. 박자를 잃어버린 산 자들 숨은 간혹 그 진한 흙냄새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쉬곤 한다. 누가 산 자이고 누가 죽은 자인지...삶이란 참, 죽음과 그리 멀지 않다.

 

"죽음을 성찰하면서 시인은 삶의 중심에 대한 물음을 새롭게 던진다. 사람은 죽음을 예감하고 사유할 수 있는 존재이며 죽음은 삶의 어떤 순간에도 침투할 수 있다. 삶 속에 죽음이 그토록 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면 삶의 중심에 그것이 놓여 있음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을까? 죽음이 삶 속에 버티고 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는 죽은 자가 살아 있는 기억의 위력이다."(같은 책, '작품해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133)

 

'그늘'과 사귀어봤자 생각지도  못한 '마감 신고'나 하게 될지 모른다 싶지만 때론 그게 흐리멍텅하여 움직이도 않는 삶을 콕 찔러 깨우기도 한다. '그늘과 사귀다', 하고 중얼거리고 있자니 죽음이 삶을 깨운다는 묘한 말이 입술을 터뜨린다.

 

관을 열자,

제일 먼저 한 아름의 빛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고는

 

금니 하나 지폐 한 장

안 나오는 무덤

 

피도 눈물도 없는

한 구의 골다공증

 

(중략)

 

추리려 절하며 보니,

또한 이제 막 도착했다는 듯

뼈는 꼿꼿이 선 자세이다

(같은 책, '뼈·1' 일부, 64)

 

산 자들이 뿜어내는 거친 숨과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기억들은 '그늘' 아래서는 혹 대충인 것 같으면서도 여하튼 옹기종기 제 자리를 찾아 앉는다. 말하고 싶지 않은 죽은 자들 앞에서 거침없이 기억을 쏟아내는 산 자들은 기록하기엔 너무 복잡한 생 한쪽 끝에 걸터앉아서 죽은 자도 더 이상은 하지 않는 한탄을 한다. 죽음이란 무엇이냐고, 죽은 자 앞에서 죽음을 논하는 이들은 언제나 산 자들이다.

 

살았다 하는 것도 죽었다 하는 것도 여하튼 '그늘' 아래 앉아 숨을 고를 때에나 마주 한다. 나무 아래든 땅 아래든 이 세상 모든 '그늘' 아래서 삶과 죽음은 언제든 마주치고 또 마주칠 수 있다. 그리고, 이영광 시집 <그늘과 사귀다>를 잠시라도 스친 이들은 아마도 "삶 속에 드리운 죽음의 짙은 그늘을 기억하면서 삶을 더욱 절박하게 호흡"하게 될 것 같다.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옆에 두고 삶을 읊조리곤 하는 나처럼.

덧붙이는 글 | <그늘과 사귀다> 이영광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2007.

* 이 서평은 제 블로그(blog.paran.com/mindlemin)에도 싣습니다.


그늘과 사귀다

이영광 지음, 걷는사람(2019)


태그:#그늘과 사귀다, #이영광, #삶, #죽음,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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