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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가락동에서 동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중소상인들이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동네 골목상권까지 장악하려는 롯데의 무분별한 SSM 진출을 막기 위해 7월 29일 하루 장사를 접고 집회를 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서 동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중소상인들이 기업형 슈퍼마켓(SSM)으로 동네 골목상권까지 장악하려는 롯데의 무분별한 SSM 진출을 막기 위해 7월 29일 하루 장사를 접고 집회를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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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업형슈퍼(SSM) 입점 규제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대형 유통자본의 영업활동이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를 쏟아내는가 하면, 지역 소비자들이 더 저렴하고 나은 서비스를 받을 기회를 박탈당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소비자의 피해를 걱정하는 보도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을 심각히 왜곡하거나 문제를 오로지 유통 대자본 중심으로 보는 시각이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지역경제를 살리는 차원에서, 지역 경제의 선순환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금까지 유통 대자본이 자본력을 동원해서 시장 지배력을 무분별하게 확장함으로써 지역 경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온 국민이 경제난을 조기에 회복시키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고, 특히 심각한 고용한파를 이겨내기 위해 갖가지 고용 대책과 사회 안전망 대책에 집중하고 있는 마당에 고용불안과 사회 안전망 사각지대에 있는 자영업의 회생을 모색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되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역 상인들이 겪고 있는 4중고

현재의 경기 침체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계층이 바로 자영업인이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문 닫는 가게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도 1년을 넘게 지속되고 있고, 한 해 동안 30만 명 이상의 자영업주들이 줄어들 만큼 사태는 심각하다. 그러나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적어도 ▶ 경제위기와 내수침체로 인한 매출감소 ▶ 각종 금융 부담의 가중 ▶ 대형 유통자본 잠식에 의한 고통 ▶ 사회안전망의 소외지대로 인한 4중고라고 할 수 있다.

1) 경제위기와 내수침체로 인한 매출감소 : 우선 경제 위기로 가뜩이나 부진하던 내수가 지난 2008년 4분기에 전 분기 대비 -4.3퍼센트로 추락한 뒤에도 좀처럼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로 대기업들과 관계된 수출증가율은 올해 2분기에 접어들면서 전 분기 대비 14.7퍼센트를 기록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내수는 2.8퍼센트 증가에 그치고 있어 계속 바닥을 기는 형국이다. 지난해에 비하면 여전히 마이너스다.

여기에 노동자의 월급은 올해 상반기에 명목상 1.4퍼센트밖에 오르지 않았는데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마이너스다. 내수 침체와 소득 감소는 곧 소비 위축과 구매력 축소로 나타나고 이는 즉시 자영업의 매출 감소로 나타났다. 그 결과 대기업 수익률은 올해 들어서 상당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자영업 가운데 이익을 내는 곳은 10곳 가운데 3곳도 안 되는 실정이다.

2) 각종 금융 부담의 가중 :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고 은행의 부실 위험이 커지면서 은행권은 신용위험이 있는 서민과 자영업 등에 대한 대출을 급격히 줄이기 시작했고, 정부가 일부 중소기업과 자영업에 대한 금융지원책을 내놓았지만 이에 대한 효과는 매우 제한돼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영업 가맹점에 대한 대형 금융사들의 카드 수수료는 3퍼센트 수준이어서 대형 마트(1.5퍼센트)의 두 배에 이른다. 손해 보는 장사에 카드 수수료마저 두 배로 뜯기고 있는 셈이다.

3) 대형 유통자본 잠식에 의한 고통 : 외환위기 이후 초과잉상태가 되어버린 자영업은 대형 유통자본의 팽창이 아니더라도 이미 '충분히 과열 경쟁' 구도가 형성된 상태였다. 그런데 여기에 대형 할인마트가 400개에 육박할 정도로 포화상태가 되 데 이어 기업형슈퍼까지 500개를 훌쩍 넘어 팽창하자 지역의 자영업은 아예 경쟁 구도 밖으로 밀려나는 길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4)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 자영업 : 경제 위기로 내수는 위축되고 거대 금융자본과 대형 유통자본의 전방위적인 공세에 밀려 가게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자영업에게 사회가 주는 안전망이라고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취약하다.

폐업을 했을 때 노동자처럼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마땅한 재취업 기회나 재교육 기회를 얻는 것도 훨씬 어렵다. 고용보험제도에 자영업이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그나마 추진하는 인턴제나 희망근로 사업에도 문을 닫은 자영업인보다는 주로 청년이나 노인층에게 혜택이 가고 보면 자영업은 정부의 일자리 창출 대책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지역 상인은 가장 유력한 지역 주민이며 지역 소비자이다

자영업인들이 이처럼 초유의 4중고를 겪고 있음에도 유통 대자본은 자신들이 지역 상권에 진입해야 할 유력한 근거로 지역 주민과 소비자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권과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것을 들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 주민, 지역 소비자를 앞세운 이런 주장은 얼마나 정당할까.

우리나라의 자영업 인구가 선진국에 비해 거의 두 배 이상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도시지역에서 자영업과 관련되어 경제활동을 하는 지역주민들은 자영업 고용주 + 단독 자영업인 + 무급 가족종사자 + 자영업에 속한 임금 노동자를 포함해서 최소 1/3 이상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다시 말해 지역의 시장과 슈퍼마켓, 음식점, 미용실 등 다양한 상점들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해당 지역에서 10명 가운데 최소 3명 이상이다. 그리고 직장인들과 달리 이들의 주거지역은 대부분 해당 주거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은 해당 지역의 가장 중요한 '주민'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인 셈이다.

또한 이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역 경제의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특히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지역경제에서 건설, 중소 제조업과 함께 지역 상업이 공통적으로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 중요도는 더욱 커진다.

도시 경제활동인구 구성비
 도시 경제활동인구 구성비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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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특정 지역의 지역 주민들은 다양한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주민의 극히 일부는 롯데쇼핑이나 신세계 주식에 투자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투자자로서 대형 할인마트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 또한 지역 주민의 대부분은 소비자로서 해당 지역 상권에서 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한다.

유통 대자본의 지역 경제 잠식에 따른 이해관계
 유통 대자본의 지역 경제 잠식에 따른 이해관계
ⓒ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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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의 적어도 1/3은 해당 지역의 자영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소득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치 지역 주민, 또는 소비자와 지역의 상인들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것처럼 호도하면서, 그림의 (2)의 축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지점으로 규정하며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 입점의 정당성을 강변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역의 상인은 그 자신이 지역주민의 1/3이며 그 자신이 소비자의 1/3이다. 또한 지역 주민이 대형마트에서 상품을 구매하면 그 자금이 다시 지역으로 환류할 가능성은 적은 반면, 지역 상점에서 구매할 경우에는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지역주민 -지역 소비자- 지역 상인은 스스로 상당부분 동일인이면서 동시에 지역 경제순환에 대한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림에서 (2)의 관계는 이해관계의 대립보다는 이해관계의 동일성이 오히려 크다고 할 것이며, 문제는 역시 그림에서 (1)의 관계가 전혀 '상생'의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유통 대자본의 이익에 대한 고려만으로 지역 상권에 진입하기 때문에 대립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은폐하기 위해 유통 대자본은 자신의 이익을 내세울 수 없으니 '지역 소비자의 선택권'을 앞세우게 된 것이다.

지역 자영업 영세화 악순환을 몰고 가는 유통 대자본

물론 유통 대자본의 할인마트나 기업형슈퍼보다 지역 상점이 영세화되어 있고 따라서 서비스 조건이 나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유통 대자본의 지역 상권 잠식에 의해 초래된 악순환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유통 대자본의 지역상권 잠식은 기존 자영업의 영업활동을 위축시켜 더욱 영세화시키고, 영세화가 진행될수록 지역 소비자에 대한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여력은 줄어들게 된다. 그럴수록 영세화를 명분으로 유통 대자본이 들어올 여지는 늘어나는 악순환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소비자를 위한 상품 서비스의 고급화, 다양화라는 목표가 지금까지는 오직 대형 자본의 전국적 확장이라는 단선적인 방식으로만 진행되어왔고 우리 국민은 여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지역 자영업을 보호하고 이들 자체의 수익성을 보장하며, 이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확장하여 서비스를 고급화하고 다양화하려는 '다른 방식'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 국민의 1/3을 경제 위기에서 보호하는 길이면서 지역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번 기업형슈퍼 입점 논란과 관련하여 유통 대자본과 지역 상인이 받는 고통의 강도가 차원이 다르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증권가의 평가에 의하면 유통 대자본에서 기업형슈퍼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 기준으로 10퍼센트도 안 되며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2~3퍼센트에 불과할 만큼 미미하다(이데일리, 2009.8.5).

그러나 상권 안에서의 기업형슈퍼 진입은 지역 상인들에게 생계 자체가 달린 사안이다. 과연 누가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 정당하겠는가?

덧붙이는 글 | 김병권 기자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입니다.

이기사는 새사연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SSM, #기업형수퍼,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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