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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현지에서 학원 수업은 8월 3일(월)이 공휴일이어서 4일(화)부터 시작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차적응이 된 토요일(1일)에 석달 먼저 토론토 생활을 시작한 동생 식구들과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습니다. 나들이 장소는 토론토의 동쪽에 위치한 리버데일 농장으로 정했습니다.

 

리버데일 농장은 윈체스터와 슈막 스트리트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바로 북쪽에 토론토에서 제일 오래된 공동묘지인 네크로폴리스가 있습니다. 리버데일 농장은 원래 토론토 최초의 동물원 장소였는데, 지금은 토론토 도시의 아이들에게 농업에 대해서 알려주고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꾸며진 "보여주기 위한 농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집에서 리버데일 농장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맑은 날이라 중간 중간에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리버데일 농장을 한 번 둘러보고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리버데일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리버데일 공원에 있는 많은 벤치들은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떠난 사람을 기억하면서 기증한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주변의 나무들 중에서도 몇 개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그리운 마음을 담아서 기증한 것들이었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공원의 여기저기를 사진기에 담고 있는 데, 갑자기 외국인이 다가와서 말을 걸어왔습니다. 영어울렁증과 외국인 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캐나다 도착한 후 최초의 위기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혹시 내가 공원에서 이상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배회하는 소위 '몰카족'이 아닐까 의심하고 다가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신을 집중해서 외국인이 하는 말을 들으려고 노력했는데, 무슨 말인지 너무 빨라서 다 알아들을 수는 없고, 대충 내 카메라를 보고 한번 만져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을 때 알아듣는 척하지 말라고 했는데, 대충 알아듣는 척 하면 금방 갈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은 카메라를 만지면서 계속해서 말을 했습니다.

 

나중에 외국인이 떠나고 난 뒤에 동생이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뭐래?"

"나도 몰라."

"상당히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던데?"

"카메라를 들고 뭐라고 계속 이야기하는데, 나쁜 말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계속 듣고 있었지... 설마 나쁜 말을 했어도 뭐라고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낯선 땅에서, 낯선 생활을 하면서, 낯선 언어를 배우려고 한다면, 매사에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고 귀가 닳도록 들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날, 막상 그런 상황이 벌어지니까 적극성은커녕 내 앞에서 이야기하는 외국인이 빨리 말을 끝내고 떠나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채워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커다란 마음을 먹고 캐나다로 건너왔건만, 혹시나 외국인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새가슴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아직은 한심스럽게만 느껴집니다. 그러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먼저 이곳에 와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나에게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나도 하루 빨리 이곳 생활에 적응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런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이제 다음 주부터 학원 수업이 시작되는데, 그때가 되면 조금 나아질까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 Daum view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영어공부, #토론토, #리버데일 공원,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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