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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산골에 내려와 살고 있는 독일 베를린 출신의 귀화한국인 빈도림씨와 서울토박이 이영희씨 부부. 이들의 남도생활은 '행복' 그 자체라고...
 담양 산골에 내려와 살고 있는 독일 베를린 출신의 귀화한국인 빈도림씨와 서울토박이 이영희씨 부부. 이들의 남도생활은 '행복' 그 자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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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변신을 꿈꾼다. 과정은 다를지라도 목표는 하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다. 지난날 산업화시대, 농어촌을 등진 사람도 같은 이유였다. 최근엔 대도시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농어촌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귀농이고 귀촌이다. 이들의 결행 또한 보다 나은 삶을 찾아서다.

"서울, 경기 같은 수도권과 달리 때가 묻지 않아서 좋아요. 주민들도 이기적이지 않고 서로 생각해주고…. 만족합니다. 내려오길 정말 잘했다 생각하고 있어요."

7년 전부터 남도에 내려와 살고 있는 독일 출신의 귀화 한국인 빈도림(56)씨와 서울토박이 이영희(51)씨 부부의 한결같은 얘기다. 이들 부부가 둥지를 튼 곳은 외딴 산골인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문학리 옥천골. 도로에서 한참 계곡을 따라 들어가는 산골 숲속에서 일도 하고 텃밭과 과원도 가꾸며 사람 사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독일인 디르크 휜들링에서 한국인 빈도림으로 귀화한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35년 전, 서울대학교로 유학 오면서부터. 1974년부터 4년 동안 국문학을 공부한 그는 독일로 돌아가 보흠대학교에서 동양학을 공부하며 한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4년에 다시 한국으로 건너와 대구의 한 대학에서 7년 동안 독문학과 조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10년 동안은 주한 독일대사관에서 통역관으로 일했다. 이때 독일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번역가로 일하고 있던 이씨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

빈도림 씨가 집옆에 가꾸고 있는 텃밭에서 토마토를  따고 있다. 빈도림씨와 이영희씨 부부는 텃밭은 물론 과수원까지 조성해 놓고 있다.
 빈도림 씨가 집옆에 가꾸고 있는 텃밭에서 토마토를 따고 있다. 빈도림씨와 이영희씨 부부는 텃밭은 물론 과수원까지 조성해 놓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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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마치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산책을 하고 있는 빈도림·이영희씨 부부. 숲속에 사는 재미가 알콩달콩 행복하다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산책을 하고 있는 빈도림·이영희씨 부부. 숲속에 사는 재미가 알콩달콩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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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던 이들 부부가 남도를 만난 건 정말 우연이었다. 빈씨의 친구가 살고 있는 담양에 놀러왔다가 옥천골의 주변경관에 반한 것. 주변에 민가 하나 없는 외딴 산골이었지만 하염없이 좋았다. 바로 일을 저질렀다. 둥지를 틀 조그마한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 주말에 한번씩 오가는 별장을 떠올렸다.

실제 이들은 6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꼴로 내려와 이곳에서 쉬었다갔다. 지난 2002년엔 아예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이사를 해왔다. 결과적으로 산골생활 연습을 해온 셈이다.

"정말 우연이었어요.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난 저도, 서울에서 태어난 제 부인도 거의 오지라 할 수 있는 이 옥천골에서 살게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죠. 아마 둘 다 번역을 직업으로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빈도림씨의 얘기다.

꿀초를 만드는 일은 번역과 함께 빈도림·이영희씨 부부의 직업이다. 이 꿀초는 인공의 색상을 첨가하지 않은 친환경 초로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꿀초를 만드는 일은 번역과 함께 빈도림·이영희씨 부부의 직업이다. 이 꿀초는 인공의 색상을 첨가하지 않은 친환경 초로 알려지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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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도림·이영희씨가 전라남도관광기념품으로 만든 꿀초제품. 빈씨의 손재주가 빚어낸 작품들이다.
 빈도림·이영희씨가 전라남도관광기념품으로 만든 꿀초제품. 빈씨의 손재주가 빚어낸 작품들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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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담양에 내려와 살면서 직업 하나를 더 갖게 됐다. 기존의 번역일에다 꿀초(밀랍초) 제작이 그것. 꿀초를 만들기 시작한 것도 빈씨의 표현대로 "별 복잡한 생각없이"였다.

"담양 가마골에 갔을 때였죠. 추월산 자락인데 정말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마을이었어요. 농사도 짓고 한봉도 키우는…. 평상에 앉아 한봉꿀을 빨아먹고 입안에 남은 밀랍을 내뱉다가 농부아저씨한테 물었죠. 꿀을 내려서 팔고 남은 밀랍을 어떻게 하는지? 그랬더니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버린다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빈씨는 그 자리에서 밀랍초를 떠올렸다. 독일 가는 길에 제작기술을 배워오고, 집에서 직접 쓸 생각으로 밀랍초를 하나씩 만들었다. 주변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면 나눠주기도 했다. 몇 해 전엔 담양군의 적극적인 관심으로 본격 생산에 나섰다. 계곡 옆에 400평 규모의 공방도 따로 지었다.

이들은 밀랍초를 만들 때 인공의 색상을 첨가하지 않는다. 이물질만 제거한 천연재료로 자연의 색깔을 낸다. 이 초는 빈씨의 손재주와 만나 작품으로 탄생했다. 지난해 5월엔 창평의 한옥에서 사는 독일인 베르너 삿세 교수의 문인화와 함께 공동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예초기를 들고 풀을 베고 있는 빈도림씨. 이들 부부는 크고 작은 집안일까지도 함께 하며 행복한 나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예초기를 들고 풀을 베고 있는 빈도림씨. 이들 부부는 크고 작은 집안일까지도 함께 하며 행복한 나날을 만들어 가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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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도림 씨와 이영희 씨는 잠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서로 찾을 정도로 금실이 좋단다. 이들 부부가 집과 공방 사이를 흐르는 계곡에서 오후 한때를 보내고 있다.
 빈도림 씨와 이영희 씨는 잠시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서로 찾을 정도로 금실이 좋단다. 이들 부부가 집과 공방 사이를 흐르는 계곡에서 오후 한때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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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으로 알 수 없는가 봐요. 한국학을 전공한 남편과 독문학을 공부한 제가, 독일과 한국이란 낯선 두 문화가 만나서, 그것도 이렇게 전라도 산골에서 텃밭을 가꾸며 '꿀초아저씨'와 '꿀초아줌마'로 살지 누가 알았겠어요?"

이영희씨의 얘기다.

"서울에 살 때는 정말 바빴죠. 일상에 쫓기다보니 지인들 얼굴 보기도 쉽지 않았고. 문화생활도 큰맘 먹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어요. 그런데 이곳으로 내려온 이후 모든 게 달라졌어요.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주변 사람과 왕래도 잦아졌어요. 문화생활도 더 자주 해요. 돈 쓸 일도 별로 없고. 엔간한 부식거리는 텃밭에서 얻죠. 교통이 불편할 것 같지만 시내까지 30∼40분이면 충분합니다."

빈도림씨의 말이다.

부부가 하루 종일 같이 지내며 번역과 꿀초 만드는 일을 같이 하고, 집안일까지도 함께 한다는 빈도림·이영희씨 부부. 밤엔 촛불 켜놓고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며 다람쥐 부부처럼 알콩달콩 산다는 이들은 어느새 '전라도사람'이 돼 있다. 마을주민들과도 곧잘 어울린다는 이들 부부의 변신에서 '묵은 된장'처럼 '오래 된 전라도'를 본다.

빈도림·이영희씨 부부가 사는 집과 공방. 사방이 숲이고 집과 공방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그림'같은 곳이다.
 빈도림·이영희씨 부부가 사는 집과 공방. 사방이 숲이고 집과 공방 사이로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그림'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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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빈도림, #이영희, #빈도림꿀초, #옥천골, #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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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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