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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 되자 주위 대학생 친구들은 시원한 바다와 계곡으로 떠나기 위해 분주하였다. 토익, 취직, 스펙, 영어 등 대학생들의 일상의 스트레스를 잠시 잊어버리고 멀리 멀리 떠나갔다.

 

나도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며 대학생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방학 때 동아리 친구들과 빈민현장활동(이하 빈활)을 준비하고 있어 쉽게 떠나지 못했다. 올 여름도 이렇게 무덥게 보내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바다와 계곡으로 떠난 친구들이 부러워졌다.

 

빈활을 통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기?

 

빈활을 같이 준비하는 부산대 후배 녀석이 갑자기 나에게 빈활이야말로 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바람과 같은 활동이 아니냐고 말했다.

 

"형 남들이 다 계곡, 바다에 가서 시원한 여름을 보내는 게 그렇게 부럽나?"

"아니 뭐, 부럽기보다는 여름에는 그래도 시원한 곳에 가서 푹 쉬는 게 제격인데, 이렇게 빈활 준비 한다고 사무실에 콕 박혀 있는 게 답답해서 그러지."

"그럼 이번 빈활을 시원하게 보내면 된다이가!"

"어떻게?"

 

시원한 비와 함께 '용산 참사' 알리기

  

2009 부산지역 빈민현장활동은 지난 1월 20일에 있었던 용산참사의 문제를 부산 시민들에게 알려 나가는 것과 동시에 제2, 제3의 용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지역의 철거, 빈민 지역과 연대하는 활동이다. 지난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부산 대연-우암 공동체, 물만골 공동체에서 진행되었다.

 

빈활 두 번 째 날인 24일에는 부산 시민들을 만나며 용산 참사에 대해 선전전을 진행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폭우가 내려서 처음 기획했던 용산 참사에 대한 선전전을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부산 시민들을 만나면서 용산 참사를 알려 나가는 선전전을 진행할 수 있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선전전은커녕 밖에 나가는 것조차 힘들겠는 걸요."

 

많은 빈활 대원들이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하늘을 보며 한숨만 쉬고 있을 때 한 대원이 대뜸 이렇게 이야기했다.

 

"더운데 시원한 비를 맞아 가면서 선전전 하면 안돼요? 우비를 입고 부산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지하철 곳곳에 들어가서 선전전을 진행하면 좋지 않을까요?

"(모든 대원들이 찬성하며)좋아요. 더운데 비에 젖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대원들의 열정으로 용산 참사를 알리는 선전전은 지하철과 서면 곳곳에서 진행되었다. 각 팀을 나누어 지하철에 탑승하여 지하철에 타고 있는 시민들을 만나며 우리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서면 지하철 내부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대원 모두 서서 우리의 목소리를 알리는 피켓을 들고 큰소리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용산 문제가 언론에서도 보도 되고 있지 않은데, 이렇게 거리에서 나와서 사람들과 만나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니 정말 제 속이 시원합니다."

 

선전전을 진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익명의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다.

 

"고생이^^ 만원이라도 후원하려고 하는데 유인물에 계좌만 있고 은행명이 없네요. 문자주세요!"

 

용산 참사를 알리는 유인물을 제작했었는데, 뒷장에 용산 철거민들에게 후원을 하기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금을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썼었다. 이것을 보고 익명의 부산 시민 한 분이 후원을 하겠다고 연락이 온 것이었다.

 

"정말 뿌듯해요, 바다에 가서 바나나보트 타는 것보다 더 짜릿한데요."

 

물만골 사랑방, 여럿이 함께 사는 집

 

23, 24일에는 대연-우암 공동체에서 마을 사람들과 철거 당시의 이야기도 듣고, 용산 참사 문제를 부산시민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25일부터 빈활이 끝나는 날까지는 물만골 공동체에서 머물게 되었다.

 

물만골 공동체는 90년대 철거투쟁 당시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땅을 공동으로 구매하여 투쟁에서 승리한 곳이다. 투쟁에서 승리 이후 마을 주민들이 공동체를 형성하여 마을을 자치적으로 꾸려나가고 있다.

 

 

이곳에 도착한 빈활 대원들이 부탁받은 것은 마을 사랑방 담장을 허무는 것이었다. 처음에 많은 대원들은 당황했다. 멀쩡한 집의 담을 굳이 허물어내는 이유가 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을의 위원장님께서 사랑방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신 후 대원들은 담을 허무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공동체를 꾸려 나가는데 있어서 서로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마을 위원장인 제가 이 집을 내놓는다면 다른 마을 사람들도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나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물만골 사랑방을 저는 여럿이 함께 살아가는 대안 공간으로 만들 것입니다. 지금은 단지 외부인의 숙소로만 생각되어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오실 때는 이곳이 많이 변해 있을 거예요. 집의 담장을 허물어서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 겁니다. 그리고 빗물을 받아서 이 집에 필요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거예요. 모든 자연을 재활용하면 우리가 쓸데없이 물, 전기, 가스 등을 낭비 안 해도 되잖아요? 또 우리 마을이 생태 마을인 만큼 사랑방에서는 생태적인 규칙을 만들 겁니다. 가령 예를 들면 세제를 쓰지 못하게 하는 것, 샴푸 쓰기 말기, 대신 천연 비누를 이용하는 것을 규칙으로 만들 거예요."

 

위원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바로 사랑방 담장을 허물기 시작했다.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는 망치질 하나 제대로 못해서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이 곳이 누구나 머물고 쉴 수 있는 공간, 생태적이고 여럿이 함께 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힘든 몸은 근방 회복되었다.

 

 

함께 나누는 피서- 빈민현장활동

 

 

비록 바다와 계곡에 가서 시원한 물에 발과 몸을 담그며 물놀이, 계곡에서 먹는 삼겹살 등 을 하지 못했지만 빈활을 마치고 난 후 집에 돌아왔을 때도 피서를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오랫동안 도시에서의 삶을 잊은 듯한 기분 말이다. 사람이 많은 것, 자동차 매연 연기를 맡는 것, 뜨거운 아스팔트 거리를 걸어야 하는 것 등 피서에 갔다 온 사람처럼 도시 생활이 어색했다.

 

용산 참사 문제를 다시 기억하고, 제2 제3의 용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 철거민과 연대하는 활동, 나의 욕심을 잠시 접어두고 함께 살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을 했던 이번 빈활은 나에게 무더운 여름을 잠시 잊게 해 준 여름 피서와 같은 활동이었다.

 

뜨거운 여름, 빈민공동체에서 주민들과 함께 여럿이 함께 하는 삶을 고민하는 것도 괜찮은 피서이지 않을까?

 

ⓒ 배성민

 

덧붙이는 글 |  '2009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태그:#빈민,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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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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