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밥퍼 천사'인 슐라밋, 그는 열성을 다해 자원봉사를 한다.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밥뿐 아니라 미소도 맘껏 퍼준다.
 '밥퍼 천사'인 슐라밋, 그는 열성을 다해 자원봉사를 한다.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밥뿐 아니라 미소도 맘껏 퍼준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슐라밋(21)은 '밥퍼' 도사다. 능숙한 주걱 놀림으로 식판에 밥을 퍼주는데 한국 아줌마 못지않은 솜씨다. 배식이 끝나면 허리 펼 틈도 없이 식탁을 훔치고 식판을 설거지한 뒤 주방바닥을 물청소한다. 고된 봉사에 지칠 법도 한데 홍조 띤 얼굴엔 환한 미소 가득하다.

독일에서 온 자원봉사자 슐라밋이 외국인노동자 인권·선교단체인 (사)지구촌사랑나눔(대표 김해성)을 찾아온 것은 지난 6월 중순이다.

그는 이곳에서 급식봉사를 비롯해 외국인노동자와 다문화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이 단체가 영어로 발행하는 뉴스레터 감수 및 외국인노동자 관련 뉴스 스크랩 등을 돕는 'A급' 자원봉사자다. 외국인노동자뿐 아니라 이곳 기관에서 일하는 내·외국들에게도 인기 '짱'이다.

이 단체의 상담팀장인 최의승(39) 목사는 "굉장히 성실하고 능력 있는 자원봉사자"라면서 "우리 기관엔 방글라데시 등 13개국에서 온 통역선생들이 있는데 이들과 관계도 매우 좋다"고 높이 평가했다.

한국 온 이유? "봉사하며 세상 배우고파"

밥퍼 중인 슐라밋, 그는 'A급 자원봉사자'다. 밥퍼면 밥퍼, 영어강사면 강사 모든지 즐겁고 기쁘게 해낸다.
 밥퍼 중인 슐라밋, 그는 'A급 자원봉사자'다. 밥퍼면 밥퍼, 영어강사면 강사 모든지 즐겁고 기쁘게 해낸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밥솥에서 밥푸는 솜씨나 한국 음식을 먹는 솜씨 등을 보면 한국 처녀보다 더 토종이다.
 밥솥에서 밥푸는 솜씨나 한국 음식을 먹는 솜씨 등을 보면 한국 처녀보다 더 토종이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슐라밋은 지난해 6월 뒤셀도르프에 있는 괴러스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3개월 뒤인 9월 1일 한국에 왔다. 베를린선교협의회(Berlin Missionary Council)가 탄자니아, 쿠바, 이스라엘 등에 자원봉사자를 파견했는데 그중 슐라밋 혼자서 한국을 지원했다.

독일 축제에서 본 '비보이'의 뛰어난 춤 솜씨와 함께 한국 남자친구와 그 가족들과의 좋은 경험이 한국을 지원한 배경이란다.

한국에 처음 온 그는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단체인 '두레방'에서 3개월간 자원봉사를 했고 이어서 중증장애인 시설인 거제도 '애광원'에서도 3개월간 봉사활동을 했다. 그는 미군 기지촌에서 일하는 필리핀, 러시아 여성들로부터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고, 중중장애아들의 순수한 모습에선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이유를 묻자 "봉사하면서 세상을 배우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언니(23)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를 증진시키는 예루살렘의 한 교육기관에서 봉사활동 중이란다. 자매의 선택에 목사 부모의 강요나 개입은 없었단다.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나이란다. 오로지 '일류대학' 진학에 목숨을 건 한국 학생들과는 다른 선택이다. 대학 진학 뒤에도 취업 스펙 쌓기에 시달리는 한국 학생들에게 '슐라밋' 같은 선택이 과연 가능할까?

킬(kiel)대학교와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공부를 한 바 있는 최의승 목사는 "독일 고등학생 상당수는 방학이 되면 여러 나라를 찾아가 자원봉사 활동을 하거나 여행을 다닌다"면서 "다양한 봉사와 경험을 통해 진정한 학문과 인생을 배우고, 사회정의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소통을 익힌다"고 말했다.

슐라밋은 한국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2년 8개월 동안 한국어를 배웠다. 봉사를 위한 준비와 노력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오랜 준비를 거친 봉사이기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봉사 대상기관의 만족도도 높을 수밖에 없다. 그는 한국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글쓰기 실력은 수준급이다.

한국 학생들에게 봉사는 또 다른 '점수'이기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 없는 봉사가 되기 쉽고 봉사기관 또한 만족도가 떨어진다. 봉사와 나눔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 나라에서 온 '슐라밋'은 자원봉사 업무가 끝나면 요가도 배우고 한국 곳곳을 여행 다닌다. 그에게 봉사란 '억지 수단'이 아닌 '즐김과 나눔'인 것이다. 그래서 기쁨과 활력이 넘친다.

독일 아닌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해도 친절했을까?

행주로 식탁을 훔치던 슐라밋이 환하게 웃는다. 그에게 자원봉사는 즐거움이고 인생 공부다.
 행주로 식탁을 훔치던 슐라밋이 환하게 웃는다. 그에게 자원봉사는 즐거움이고 인생 공부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일을 시키고도 월급도 주지 않고 괴롭히는 게 '코리안드림'인가요?"

슐라밋의 항의다. 그는 "좋은 생각을 가지고 한국에 왔는데 직접 와서 보니 너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에게 가혹한 '코리안드림'의 속살을 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노동자들에겐 불친절하면서도 미국과 유럽에서 온 외국인들에겐 매우 친절한 것 같아요. 내가 독일에서 왔다고 하니까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었는데 만약 방글라데시 혹은 아프리카에서 왔다면 그렇지 않았을 것 같아요. 영국에서 온 흑인 영어강사를 거제도에서 만났는데 그는 피부가 검다는 이유로 어린 학생들에게 놀림 당해야 했고 월급도 받지 못한 채 그만둬야 했어요."

독일 사회의 아시아에 대한 관심도는 매우 낮다. 관심사는 세계 강자로 떠오른 '중국'과 위험 국가인 '북한' 정도다. 그래서 독일 친구들은 한국을 공부하려는 그의 계획을 우려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을 공부할 계획이며 장래의 꿈은 한국 관련 '외교관' 혹은 '통역사'다.

한국을 왜 좋아하는지 물었더니 "함께 나누는 모습이 좋았고, 한국 사회가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공부하고 싶다"면서 "학생들이 너무 공부에 시달리는 것 같고, 어른들은 너무 바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너무 급한 것 같다"면서 "너무 직설적인 표현 때문에 상처 입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슐라밋은 다음달 16일 독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리고 9월 26일 영국 런던에 소재한 '소아스(SOAS)' 대학에 입학해 정치학과 한국학을 공부할 계획이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언어지원가(외국인노동자를 위한 통역지원)들과 함께 기념촬영 촬칵! 그는 이들과도 매우 친하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언어지원가(외국인노동자를 위한 통역지원)들과 함께 기념촬영 촬칵! 그는 이들과도 매우 친하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태그:#외국인노동자, #자원봉사, #독일, #지구촌사랑나눔, #밥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