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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마을> 겉그림.

세상 돌아가는 모습 중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알까 싶다. 오늘 목줄을 타고 넘어간 쌀알들이 누구 땀을 먹고 자랐는지 한 번쯤 충분히 헤아려보았을까 싶다. 밥상머리에 앉아서 농부들 애타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일에만 열심을 내지 않았나 싶다. 한껏 상상 날개를 후두두둑 쳐댈 줄이야 알지 한낮 땡볕이 머리 꼭대기를 태우기 전 얼추 일을 마치고자 새벽녘부터 눈 비벼 본 적 있나 싶다. 나는 도시를 먹고 자란 도시 '촌놈'이다.

 

특징이랄 것 없는 사각 상자들만 모아놓은 것 같은 회색빛 아파트. 메마르다면 메마른 시멘트 울타리 속에서 자란 시간이 의외로 20년을 채우고도 넘친다. 그리고 그 딱딱한 울타리를 넘나들며 지금껏 간직하는 것은 아파트 앞 평상과 아파트상가 안 가게들 틈바구니에서 얻은 사람 사는 맛이다. 그 맛을 잊지 않고 지금도 나는 '내 아파트'를 사랑한다. 지금은 다 사라지고 정 확 달아나는 키다리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내 아파트'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5층)

 

노오란 평상이 살아 있는 내 마음 속 '오래된 마을'을 찾아서

 

"형님은 동네일과, 동네 산과 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소상히 알고 있습니다. 비닐을 씌워놓고 구멍을 뽕뽕 두 줄로 뚫어놓은 곳에서 참깨 싹들이 아주 예쁘게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참깨들을 보고 "참 이쁘지요잉." 했더니 "자네 왜 참깨들이 한 구덩이에서 저렇게 많은 싹이 나온지 안가?" 하고 묻데요. 정말 한 구덩이에서 참깨 싹이 많이도 나오고 있었습니다. 참깨가 나는 것을 평생 보았겠지만, 오늘에야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모르겠데요. 그래서 모른다고 했더니, "참깨를 한 구덩이에 두세 개씩 넣으면 이것들이 하도 싹이 작아서 땅을 못 뚫고 나온다네. 그래서 참깨 구덩이에서는 저렇게 많은 싹이 나온당게. 여러 개를 한 구덩이에 넣어야 저것들이 힘을 합쳐 땅을 뚫고 흙을 밀어내며 나온당게." 하십니다.

 

나는 놀라고 또 놀랍니다. 광화문에 모여든 촛불 생각이 났습니다. 작은 촛불들이 모여 나라를 들어 올리잖아요. 아무튼 오래된 농사 교육은 사람들에게 자연과 생태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만들고, 또 몸과 마음에 배게 했지요. 말로만 떠들고, 이론으로 무장해서 목에 핏대 세우고, 나같이 책상머리에 앉아 생태가 어쩌니, 자연이 어쩌니, 하는 것들하고는 근본적으로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요."(<오래된 마을>, 54-55쪽)

 

어디서든 '오래된 마을'은 딱딱한 돌덩이, 시멘트도 뚫을 만한 사람 힘이 있다. 너와 내가 주거니 받거니 미운 정 고운 정 있는 것 없는 것 다 모아들여 만들어내는 사람 힘이 있다. 사람 힘으로는 절대 안 될 것 같은 일도 '오래된 마을'에선 가능하다. 그런 마을에선 세월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웃하며 산다. 사람이란 결코 '개인'일 수 없다는 진리를 '오래된 마을'에서는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내 아파트'는 그런 면에서 분명 '오래된 마을' 중 하나였다.

 

김용택 산문집 <오래된 마을>(한겨레출판 펴냄, 2009)은 바람 드나드는 골을 따라 사람도 드나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인 김용택은 나고 자란 곳에서 책 속 역사보다는 차라리 마을 사람들을 먼저 본다. 역사책 속 한 줄 차지하고서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려는 이들 뒤를 굳이 되밟아가 사람, 사람을 불러내 지난 이야기 다시 끌어낸다.

 

어디서 열고 어디서 닫는 이야기인지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김용택 산문집 <오래된 마을>은 읽는 이가 책을 덮거나 말거나 혼자서도 주절주절 말을 이어간다. 사람은 결코 '개인'일 수 없다는 '철없는' 확신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런 확신이 오래도록 '오래된 마을'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같이 먹고 일하고 놀며 한 마을의 공동체를 가꾸는 데 필요한 것은 많은 지식이 아니라 경우였습니다. 반듯한 경우라는 것이 일상적인 일 속에서 나왔습니다. 논을 갈고 고르고 모를 심고 가꾸어 쌀을 얻고 또 논을 쉬게 해서 논의 힘을 길러 다음 해에 새로 농사를 짓는 것처럼, 자연의 이치와 순리와 순환을 알고 자연을 따르는 자연친화적인 삶이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를 가꾸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자연 가까이 다가가려는 삶이, 서로 몸과 마음을 기댄 평화와 공동의 삶을 가꾸게 했지요. 나 혼자 잘 먹고 잘살려고 엄청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동네는 물이 흘러오고 흘러가는 것처럼,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곡식들이 자라 익는 것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잘 돌아와 사람들과 함께 살다가 돌아갔습니다. 작은 마을의 모든 자연은 교육 자료였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교육자였습니다."(같은 책, 104-105쪽)

 

어릴 절 다닌 초등학교에 교사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는 김용택 시인. 초등학교 시절부터 따져 30년을 한 곳에서 배우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다는데, 그 초등학교 이름은 덕치초등학교란다. 요즘은 농촌도 도시와 맞닿아 온전히 농촌이랄 곳이 많지 않은데 초등학교 한 곳에서 빚어낸 이야기보따리가 30년 치나 된다 하니 그 이름 한 번 대놓고 불러줄 만하다.

 

그가 들려주는 '오래된 마을' 소식이 겁나게 많지만 그 중에서도 지렁이가 운다는 말을 놓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진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누군들 재밌어 하면서도 궁금해 할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걔 중엔 영화 <워낭소리>를 생각게 하는 핑경(워낭) 단 어느 수소 이야기도 있다. 잘 키운 그 수소가 전라북도 종우대회에서 아버지에게 근사한 상장과 금일봉을 안겨주었다는 얘기도 함께. 아버지가 생전 처음 받은 상장이어서인지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는데 나도 좀 보고 싶다.

 

김용택 시인은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놔두지 않는 경쟁 사회를 틈만 나면 나무란다. 그는 마찬가지로 경쟁만 떠올리게 하는 교육 구조에도 할 말을 아끼지 않는다. '오래된 마을'에서는 결코 허락할 수 없는 모난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없이 살았어도 우리 선조들은 산천을 읽을 줄 알"았다는 말을 하는 그에게 지금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영 개운치 않고 마뜩찮다. 친구 없이 운동장 한 구석을 홀로 차지한 아이와 역시 혼자 덩그러니 놓인 운동장을 번갈아 보며 무언가 못내 아쉽다는 마음 한 자락 남기는 이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아파트'는 사라졌지만 '오래된 마을'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사라지게 놔둘 수 없다. 그리 되면 나는 분명 사람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를 적잖이 잃어버리리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파트 한 동마다 적어도 한 개 씩은 있던 노란 평상 냄새를 기억하기에 나는 지금도 아파트에 산다. 평상만 떠올리면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날마다 아파트 벽에 대고 혼잣말 하듯 핀잔을 주었으리라. 내 마음 속 아파트는 '오래된 마을'이며 그 마을에는 항상 노란 평상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오래된 마을> 김용택 지음. 한겨례출판 펴냄. 2009.4. 1만천원


오래된 마을 - 김용택 산문집

김용택 지음, 한겨레출판(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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