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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에너지 개발이라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지원하기 위한 포스터
▲ Clean Energy For America 대체 에너지 개발이라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지원하기 위한 포스터
ⓒ Shepard Fairey/Obeygia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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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의 가장 최근 작품을 한번 보자.

그가 누군인지 짐작이 되는가? 그림의 스타일만 보고 누구인지 한 눈에 파악했다면 당신은 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다. 이 포스터는 현재 미국에서 미래의 산업으로 점쳐지고 있으며 오바마 행정부의 강력한 뒷받침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는 클린 에너지 산업을 장려하는 포스터다.

한 십오 년 뒤 쯤, 드넓은 미국 땅 만년설이 쌓인 거대한 산맥의 줄기마다 우뚝 솟아 있을 저 풍력 발전기. 저 풍력으로 미국 에너지 소비의 25%를 충당하겠다는 자신감. 그런 것들이 포스터를 통해 전해지는 듯하다. 색깔만 녹색인 MB씨의 삽질 산업 장려에서는 이런 숭고미가 어린 작품이 나올 수가 없다. 그저 과거회귀 코미디 "대한 늬우스" 정도가 딱이다.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라는 이름이 매우 낯설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이 예술가의 작품을 잘 알고 있다. 그 작품이란 작년 미국 대선을 버락 오바마의 승리로 만든 주역들 중 몇 손가락에 꼽힐 만한 것이다.

셰퍼드 페어리는 바로 오바마의 "희망" 포스터의 작가다. 그는 올해 서른 아홉 살의 나이로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길거리 예술가다. 그가 오바마 포스터로 유명해지기 전 만 해도 그는 길거리나 건물에 허락도 없이 자기 작품을 스티커나 포스터로 만들어 붙이고 다니는 일종의 말썽꾼이었다 - 물론 지금도 그러고 다닌다. 그리고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작은 의류회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한데, 그의 작품이나 회사이름에 Obey 혹은 Obey Giant라는 일종의 브랜드를 붙이곤 한다. 우선 듣는 어감은 별로 좋지 않다. 뭘 "복종하라"는 건지. 혹자들은 그 "복종하라"는 말에 숨겨진 이중적인 의미를 애써 찾곤 하지만...

어쨌건 그는 길거리 예술가로 출발, 작년 대선을 기점으로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그런데 그의 작품들을 보면 어째 정체가 불분명한 것들이 많다. 우선 오바마 포스터나 클린 에너지 포스터는 "예술" 작품이라기보다는 선전, 그것도 국가나 정치의 "선전"(달리 말하면 선동)을 위한 도구처럼 보인다. 좋은 의도를 가진 작품들임이 분명하더라도 어쨌든 정치적 선전 포스터인 것도 부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전의 다른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의 스타일이 바로 과거의 선전-선동의 정치적 포스터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된다. 특히 구 소련이나 중국의 사회주의적 정치 포스터의 단순하면서 역동성이 넘치는 형태와 색채를 차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레닌의 모습은 식권에 마오쩌뚱의 모습은 채권에 겹쳐 그려져 있다.
▲ 레닌과 모택동 레닌의 모습은 식권에 마오쩌뚱의 모습은 채권에 겹쳐 그려져 있다.
ⓒ Shepard Fairey/Obeygia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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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그가 사회주의자라는 생각은 우선 하지 말자. 그의 작품들은 20세기 초중반 사회주의권의 예술적 스타일에 대한 오마주(존경의 표현)이기도 하면서 일면 그 사회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다. 마오쩌뚱 주석의 모습은 마치 국채(채권)라는 매우 자본주의적 상업문서 위에 겹쳐져 있고, 레닌의 당당한 얼굴은 스탬프(식권 혹은 우표)에 초라하게 찍혀있다. 그런 면에서 그는 단순한 국가 선전 포스터 작가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판을 본업으로 하는 전투적인 예술가인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것을 다음 작품들이 보여준다.

전투적인 이미지의 작품들
▲ 평화의 수호자와 화염병 전투적인 이미지의 작품들
ⓒ Shepard Fairey/Obeygia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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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을 든 여전사와 화염병을 던지는 남자 전사. 여전사의 총에는 꽃이 꽂혀있고 남자 전사의 그림은 우리 80년대의 판화그림을 연상케 한다. 페어리는 무슨 의도로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아마 우리나라 보수적인 분들이 본다면 분명 그를 빨갱이라고 몰았을 거다. 그림의 내용을 봐도 전사들이 나오질 않나, 색깔은 또 얼마나 뻘건가. 그는 분명 사회 비판적인 혹은 사회 참여적인 작가다. 아웅산 수치 여사의 석방을 주장하는 포스터며 조지 부시를 흡혈귀나 전쟁광(히틀러)으로 묘사하는 작품을 볼 때, 또는 제3세계 사람들의 억압받는 삶을 그리는 작품들을 볼 때는 분명 그렇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그 쪽으로만 경도되어 있지는 않다. 전설적 록그룹 레드 제플린의 <Mothership>의 앨범표지, 조지 오웰의 유명한 두 소설인 <동물농장>과 <1984>의 표지도 그의 작품이다. 그에게는 이런 상업적인 작품이건 예술적인 작품이건 별로 다를 게 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비판적인 상업-예술가일 뿐이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표지와 레드 제플린의 <Mothership> 앨범커버
▲ 상업적인 작품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 표지와 레드 제플린의 <Mothership> 앨범커버
ⓒ Shepard Fairey/Obeygia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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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젊을 적 길거리에 붙이고 다니던 포스터며 스티커들은 그의 이름을 알리기 위한, 말하자면 길거리의 낙서(그래피티) 같은 것이었다. 한 건물의 벽면을 잔뜩 채운 그의 포스터는 그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데 최상의 도구였으리라.

물론 거기에는 일말의 사회비판 혹은 참여로서의 예술이라는 명분 또한 있었을 것이다. 그런 페어리는 포스터 붙이기를 통한 캠페인에 유능했고 펩시 등의 회사를 위해 게릴라 캠페인을 하기도 했다. 다시 한번 그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게 되는 부분이다.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었던 오바마의 희망 포스터는 주간지 <뉴요커 New Yorker>(2009년 2월 23일자)에 실린 피터 쉬젤달(Peter Schejeldahl)의 표현에 따르면, "엉클 샘 원츠 유 Uncle Sam Wants You" 포스터 이후 가장 효능있는 미국 정치 그림이다. 이 희망 포스터에 실린 오바마의 모습은 사실 AP통신의 보도 사진에서 페어리가 가져다 쓴 것이다. 이 역사적인 포스터가 보도 사진을 유용·변형한 것이라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현재 법정에서 다툼 중에 있다.

AP통신사는 페어리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고소했고, 페어리는 예술가로서 어떤 이미지든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으며 자신의 작업은 저작권법이 허용한 공정한 사용(fair use)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가 나타나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그 사진작가는 당시 자신은 AP통신에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왜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가져다 썼느냐고 묻는다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일일 텐데, 페어리를 예술가로 볼 것인지 아니면 그저 상업작가로 볼 것인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상업적인 용도로 이미지를 가공 재배포하는 것은 분명 저작권법 위반일 테지만, 예술가의 작업이라면 그것을 문제 삼을 수 있을까?

그런데 최근 그가 법정에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다. 그것도 그의 작품이 보스턴의 유명한 미술관인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에 생애 처음으로 전시되는 날 체포된 이후의 일이다. 그전에 이미 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었는데, 죄목은 공공시설 파괴(vandalism)였다. 그가 그동안 무단으로 길거리와 건물에 붙이고 다닌 포스터와 스티커 때문에 생긴 일이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예술가로 공식적인 데뷔를 하는 날 공공시설 파괴 죄목으로 체포가 되다니. 그렇다면 우리는 그를 예술가로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길거리 양아치로 봐야 할까, 그도 아니면 유명세에 굶주린 상업작가로 봐야할까?

길거리나 공공시설에 자신의 포스터 작품을 붙이고 있는 페어리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Obeyshepard2.jpg)
▲ 포스터 붙이기 길거리나 공공시설에 자신의 포스터 작품을 붙이고 있는 페어리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Obeyshepard2.jpg)
ⓒ Tatjana Ilic (c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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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 문제가 인터넷과 블로그 상에서 점점 문제가 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한 번 쯤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한다. 과연 어떤 이미지가 한 사람의 소유이어야만 하는 것일까? 이미지가 공공의 재산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글에 사용한 (그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페어리의 이미지들은 저작권법에 위반되는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위의 이미지들은 작가의 허락 하에 사용하였습니다.



태그:#셰퍼드 페어리, #오바마, #희망, #포스터, #저작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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