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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 22일과 권영세 의원이 한나라당 서울시당위원장으로 선출된 23일 양일간 여권의 대형 정치인들이 '내상'을 입었다. 바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다.

박근혜, 정치력 발휘해놓고 막판 입장 선회로 비판 직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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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표는 지난 15일과 19일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 강행처리에 제동을 걸었다. 여야가 합의처리해야한다는 원칙과 함께 "본회의에 참석한다면 반대표를 행사할 것"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박 전 대표의 '반대표 발언'에 한나라당 지도부는 물론 친박계 중진의원들도 적잖이 당황했다. 일부 보수단체들은 박 전 대표를 향해 '좌파의 세작이냐'라는 말까지 동원해 박 전 대표를 공격했다.

그러나 여론은 박 전 대표의 편이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미디어법 강행반대'에 64.6%가 '국민 여론에 따른 온당한 처신'이라고 손을 들어줬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매체합산 시장 점유율 등 박 전대표가 제안한 구체적인 사항들을 한나라당의 미디어 관련법 최종안에 부랴부랴 반영했다. 

여기까지 박 전 대표는 여론의 흐름과 같이 가고 있었다. 그런데 22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본회의 통과 강행에 손을 들어주면서 박 전 대표는 여론의 흐름과 반대 방향으로 갔다.

오후 한나라당이 미디어 관련법을 본회의에 상정하고 신문법을 통과시키려 할 무렵 박 전 대표는 국회에 나타나 기자들에게 합의처리가 안된 것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 "(한나라당 법안에) 국민들이 공감하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제안한 각종 여론독과점 예방 조치가 한나라당의 최종안에 반영됐기 때문에 '국민들이 공감할 것'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들로부터는 기회주의적 처신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었다. 또 반영됐다는 여론독과점 예방 조치가 허울만 그럴듯할 뿐 실효성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도 박 전 대표의 입장변화는 야당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박 전 대표가 입장을 바꾼 것에서 오는 혼란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당장 친박연대에서 '파열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박 전 대표의 '강행반대' 발언으로 '직권상정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던 친박연대에 소속된 노철래, 김을동 2명의 의원이 22일 한나라당 의원들과 함께 미디어 관련법안들에 찬성표를 던진 것.

23일 열린 친박연대 긴급 간담회에서는 박 전 대표의 입장 변화에 따라 본회의에 참석한 이들 의원의 행위가 당론에 위배된다는 질타가 이어졌고, 박 전 대표의 입장변화를 지적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박 전 대표의 입장변화에 어리둥절한 이들은 정치권 외에도 있었다. 박 전 대표 지지 모임인 '박사모'에서도 '박 전 대표가 이번엔 국민 여론과 반대로 간 것 같다'는 의견과 '그나마 박 전 대표가 나서서 미디어법이 통과된 것'이라는 등 의견들이 분분하다.

진보·보수 일간지들의 거센 비판..."비판 예상됐지만 소신껏 했다"

<한겨레>와 <경향>등 진보성향 일간지들은 박 전 대표의 입장변화를 강하게 비판했고, 미디어법의 조속한 처리를 강하게 주문해 온 <중앙>은 박 전 대표가 나서 미디어법을 '누더기법'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쪽 저쪽 가리지 않고 박 전 대표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는 상황.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이런 상황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자신에게 제기될 비난 여론을 몰랐겠느냐"며 적극 옹호했다.

이 의원은 "강행처리에 제동을 걸 때도 당내에서나 보수단체에서 일어날 비난을 예상했고, 22일 입장발표 때의 야당 비난도 충분히 예상된 것"이라며 "아무도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비난 같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소신있게 여야가 대화도 하게 만들고 여론 독과점 방지 장치들도 법에 반영시킨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의원은 "박 전 대표의 고민은 신문과 방송 겸영의 시너지가 너무 크기 때문에 여론 독과점이 우려되고 이를 막을 최소한의 장치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며 "22일 오전까지도 한나라당 지도부에서 진입규제 기준 중 신문 구독률을 25%, 매체합산 시청점유율 반영시 신문 구독률을 10%만 반영하는 것을 고집하고 있었지만  박 전 대표의 끈질긴 문제제기로 신문 구독률 25%를 20%로, '10%만 반영'은 아예 없앨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22일 박 전 대표의 갑잡스런 입장 변화에 대해 "한나라당은 이만큼 양보를 했다고 판단한 것이고, 민주당은 그만큼 양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직권상정에 찬성해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재오, 전여옥 내세운 '대리전' 패배...친이계 이탈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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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표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십분 발휘하다가 입장이 변해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면, 이재오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은 자신의 영향력 축소를 절감하는 사건을 겪어야 했다.

23일 치러진 한나라당 서울시당위원장 경선에서 권영세 의원(서울 영등포을)은 1062표를 얻어 805표를 얻은 전여옥 의원(서울 영등포갑)을 이겼다.

전 의원의 출마는 갑자기 이뤄졌다. 지난 17일 출마를 선언한 전 의원은 이 전 최고위원과 정몽준 최고위원의 지원을 받았다. 이 전 최고위원은 9월에 전당대회를 열어 당 대표로 선출돼 당권을 장악한다는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서울시장 공천을 좌우하는 서울시당 위원장직부터 장악하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부터 서울시당 위원장직을 노리고 있던 중립 성향의 권 의원은 갑작스런 전 의원의 출마에 발끈했다. 권 의원은 17일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것은 권영세와 전여옥의 싸움이 아니다"라며 "전 의원을 뒤에서 부추기는 당 장악기도세력, 18대 공천을 난도질한 바로 그 세력과의 싸움"이라며 '대 이재오 투쟁'을 선언했다.

이재오계에서는 당초 48명의 당협위원장 중 친이계 주류가 30명 이상이어서 경선 승리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 밖의 판세가 진행되자 이번 경선에 총력을 다하기 시작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당협위원장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전 의원 지지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고, 경선 당일에는 서울시당 당직자 150명을 전원 참석시키는 등 전 의원을 당선시키는 데에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

그러나 결과는 '이재오의 패배'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중립이나 친박 성향의 당원 뿐 아니라 다소 많은 숫자의 친이계 당원들이 권영세 의원을 지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분석된다.

친이계 당원들이 이 전 최고위원이 내세운 전여옥 의원을 지지하지 않은 이유는 이 전 최고위원이 당을 장악하는 일이 현재로선 당에 불이익을 가져다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 복귀 명분 없다" "전여옥 카드만 아니었으면…"

한 중립성향의 한나라당 의원은 "의외로 많은 친이계 의원들이 권 의원을 지지했다"며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시당을 장악하는 일이 명분도 없고 현실적으로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이 서울시당을 장악하는 순간, 아직 치유되지도 않은 친이-친박간 갈등이 더욱 심해진다는 것. 당 쇄신의 1차 과제인 친이-친박 화합이 아직 제대로 시도되지 못했는데 '이재오의 귀환'이 현실화되면 친이-친박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전 최고위원이 내민 '전여옥 카드'도 부적절했다는 분석이다. 한 친이계 의원은 "이재오 최고가 다른 사람을 내세웠다면 밀어줬을텐데 이번 카드는 부적절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근혜 의원의 '입'이었다가 대통령 후보 경선 때는 이명박 후보 캠프로 옮기고 현재는 정몽준 진영에 있는 전 의원의 행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당원들이 많다는 것이 이 의원의 의견이다.

이재오계 의원들은 이번 경선 결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이다. 이재오계 의원들은 '일개 서울시당위원장 선거에 큰 의미가 있겠느냐'며 다시 9월 전당대회론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친박측을 설득하기 위해 이 전 최고위원이 당 대표가 아닌 최고위원직에 출마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태그:#이재오, #박근혜, #전여옥, #미디어법,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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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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