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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5~6번씩 영화를 찍고 있다."

 

21일 밤 10시경, 쌍용자동차 정문 앞에서 만난 금속노조의 한 간부는 씁쓸하게 웃었다.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경찰의 눈을 피해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개구멍'도 수시로 막힌다. 그때마다 이 간부는 새로운 '개구멍'을 찾아 나서고, 그 때마다 새로운 달빛을 틈타 새로운 수풀을 헤치고 올라가야 한다.

 

이 간부가 소개시켜준 쌍용차 노조원의 뒤를 따라 기자도 '영화를 찍으며' 공장 안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단 한 명의 경찰도 만나지 않았고, 20여 분이 채 안 걸린 코스였지만, 공장 안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기자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금은 전투 상황... 소화전 끊으면 어떻게 진화하나?"

 

밤 11시 40분경 도장1공장 옥상에 올랐다. 노조가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도장공장은 자동차에 페인트를 입히는 곳으로, 1공장과 2공장으로 나뉘어 있다. 옥상 문을 열자, 정면으로 보이는 대형 굴뚝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위압감을 줬다. 왼쪽 굴뚝 꼭대기에 검은색 우산 끄트머리가 살짝 보였다.

 

쌍용차 사태와 관련, 노조원들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당초 3명의 조합원이 올라갔지만, 김을래 쌍용차지부 부지부장은 협심증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 40일 만에 내려왔고, 김봉민 정비지회부지회장과 서맹석 비정규직지회 부지회장은 벌써 71일째 굴뚝 꼭대기를 지키고 있다.

 

"도장공장이 위험하다고 하더니, 소화전을 끊었다."

 

이창근 쌍용차지부 기획부장의 말이다. 지난 20일 회사측이 도장공장에 대한 단수조치를 했을 때만 해도 소화전은 멀쩡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4시경 경찰 헬기 3대가 3000여 톤의 최루액과 최루가루를 도장공장 옥상 위에 뿌려댈 때, 갑자기 소화전도 단수가 됐다는 것이다. 소화전은 수도와 다른 라인으로 물이 공급되고, 수도와 마찬가지로 회사측에서 통제한다.

 

이창근 부장은 "소화전을 끊으면 도장공장에 화재가 났을 경우 내부에서 진화를 할 수가 없다"며 "누가 보더라도 지금은 전투 상황이다. 화재 진압과 관련해 전혀 대책이 없게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부장이 지난해 용산참사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부장은 "작년 용산참사 때처럼 도장공장도 밖에서만 불을 끄려고 해봤자, 전혀 소용이 없다. 용산참사가 재현될 것"이라며 "소화전을 끊은 이유는 경찰의 최루액을 효과적으로 뿌리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단수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쌍용차 지부의 한 조합원도 "우리가 사고를 내려는 게 아니다. (경찰과 회사측에) 위험하다는 경고를 계속 했다"며 "그런데 그들은 말로만 위험하다고 할 뿐 실제로는 막무가내로 밀고 오니까, 우리로서는 안 싸울 수가 없다. 타이어에 불을 내고 싶어서 내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다는 경고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음식물과 의료품 등의 반입은 지난 16일부터 막혔다. 사측은 급기야 물과 가스 공급까지 끊었다. 하지만 노조원들을 지치게 하는 것은 이런 물리적인 제약이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합원은 "제일 힘든 것은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 대화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마치 우리가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경영 위기나 일자리 문제 등에 대해 마치 노동자가 책임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게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회사 관리자들이 돌아가면서 노조원들의 노모와 아내를 협박하고 있지만, 조합원들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도 평범한 노동자들이다. 집에 가고 싶고, 아이들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지만 집에 못 가는 것은 정리해고의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을 우리가 한 것도 아닌데, 우리보고 책임지라고 하고……."

 

말끝을 흐리며 울분을 토하던 이 조합원은 지난 20일 자살한 동료 조합원 아내의 얘기를 꺼냈다. 그는 "그 소식을 듣고 (점거농성 중인 조합원들의) 분위기가 살벌해지기도 하고, 침울하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그것을 막지 못한 조합원들로서 죄책감으로 인한 울분이 있었다"며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노조를) 건드리면 폭발할 수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물리적 충돌, 우리도 회피할 생각 없다"

 

한상균 쌍용차노조 지부장과의 인터뷰가 시작된 것은 22일 새벽 0시 20분경이었다. 피부를 검게 그을린 한상균 지부장은 "함께 살자고 시작한 투쟁이 62일째"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극도로 날카로운 노동자의 분노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정말 (경찰이 물리적 충돌을) 원한다면 저희도 회피할 생각이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내비쳤다. (인터뷰 기사 참고)

 

한상균 지부장도 집에 아내와 고등학교 1학년생인 딸, 중학교 1학년생인 아들이 있다. 특히 한 지부장은 아내 얘기를 하면서 한없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는 가족대책위 활동도 열심히 하고……. 하루하루가 생소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적응이 됐더라. 하지만 '파업 끝내야 하는데, 왜 안 끝내서 여러 사람 힘들게 하느냐'는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듣고 밤새 울었다고 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한상균 지부장과 인터뷰를 끝내고 1층으로 향했다. 계단에 있는 화장실에서 심한 악취가 났다. 안을 들여다 보니, 좌변기 안에 배변이 가득 쌓여 있다. 단수가 되면 식수와 씻는 것만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다. 화장실 물을 내릴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이 볼일을 본 곳에 또 볼일을 봐야 한다. 그렇게 변기가 차면 더 이상 화장실을 쓸 수가 없다.

 

계단 벽을 비롯해 건물 곳곳에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 등이 빼곡히 걸려 있다. 건물을 빠져나오니, 들어올 때 보지 못했던 바리케이드가 여럿 보인다. 각종 철제 구조물과 폐타이어, 심지어는 출시 예정이었던 신차도 바리케이드 재료가 됐다. 페인트와 시너 등을 쌓아놓은 작은 바리케이드도 곳곳에 보였다. 바리케이드 뒤편에는 반드시 2~3명의 조합원들이 지키고 있다. 일부 조합원은 피곤했는지, 시멘트 바닥에 은박지깔개만 펴고 누워 새우잠을 자고 있다.

 

도장공장과 조립공장 사이를 지키고 있던 이아무개(34)씨는 "현 상황에서 절대 공권력이 들어올 수 없다"며 "경찰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씨와 반대편에서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 신아무개(44)씨는 "면역이 돼 이제는 겁이 나는 것은 없다"면서 "온다, 온다 하면서 오지 않으니까, 오히려 답답하다"고 말했다.

 

신씨가 경계를 서고 있는 앞쪽으로 카이렌, 로디우스, 액티언 등 대표적인 쌍용차들의 외부 패널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 고공농성 중인 굴뚝 하단과 옆 건물로 연결된 구조물에는 "정리해고 분쇄 없인 살아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비장한 구호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공장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도장2공장으로 넘어가려면 옥상 지붕을 타고 가야 한다. 물기가 마르지 않은 철제 지붕 150여 미터를 걸어가는데, 발을 헛디딜까봐 아슬아슬하다. 옥상을 지키고 있는 조합원들도 그렇고, 정문 앞에 있는 경찰들도 그렇고, 작은 움직임도 없이 적막에 휩싸여 있다.

 

 

"공권력보다 더 무서운 게 뭔 줄 아나?"

 

새벽 2시가 되자, 갑자기 쇠붙이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경찰들이 고함을 질러댄다. 옥상도 분주해졌다. 조합원들은 옥상에 설치된 새총에 볼트를 장전하고 경찰을 향해 겨눴다. 그러나 지도부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경찰이 프레스공장 쪽으로 진입하기 위해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10여 분 뒤, 경찰이 내는 소음이 멎었다. 방어막을 들고 조금씩 전진하던 경찰들도 멈춰섰다. 조합원 한 명이 "하도 들어오다 말고, 들어오다 말고 해서 이젠 긴장도 안 된다. 양치기 소년도 아니고 뭐하는 짓이냐"고 한마디 한다.

 

새벽 3시경, 이번엔 회사측의 방송차량이 나타나, 선무방송을 시작했다.

 

"아빠, 왜 출근을 안 해? 아빠 회사는 왜 싸움만 해? 아이의 물음에 마땅히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방송차량에서 흘러나오는 '비해고자 아내'의 말이다. 농성 중인 조합원들의 회유가 목적이다. 그러나 선무방송을 듣던 조합원 정아무개(38)씨는 "오히려 저 방송이 여기 있는 사람들의 악을 더 바치게 한다"며 "자기들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여기 있는 사람들 가족은 죽으라는 말 아니냐"고 화를 냈다.

 

기자가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묻자, 정씨는 슬쩍 핸드폰을 꺼내서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보내준 문자를 보여줬다. 핸드폰 창에는 "아빠, 회사에서 힘내. 파이팅^^"이라고 적혀 있었다.

 

옆에 있던 임아무개(32)씨가 불쑥 "우리는 배가 아파도 화장실에 못 간다"고 호소했다. "정말 참지 못할 경우에는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물었다. 임씨는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라며 한참 뜸을 들이더니, "사실은 변을 봉지에 담아 모으고 있다"고 귀띔했다. 공권력 투입에 대비하기 위해서란다. 단수를 한 것이 오히려 노조에게 공권력에 대응할 무기를 만드는 동기를 부여한 셈이 됐다.

 

새벽 3시 30분경, 공장 정문 앞에 있던 노조원 가족대책위의 천막이 회사측 직원 30여 명에 의해 철거되는 장면이 목격됐다. 옥상에 있던 조합원들은 정문을 향해 "X새끼들아, 부녀자와 아이들은 때리지 마"라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당장 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초조한지 배아무개씨(35)가 연신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어쨌든 경찰은 훈련된 사람들이다. 경찰이 진압을 시작하면 어떤 식으로든 노조원들은 깨질 수밖에 없다. 두려움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러나 배씨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공권력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아나? 열 받는다고 도장공장에 불 지르고 같이 죽겠다는 조합원들이다. 악이 바치니까, 그러는 거다."

 

그러고 보니, 공장 곳곳에 "공권력 들어와봐라. 여기가 너희들의 무덤이다"라고 적힌 글귀가 생각났다. 배씨 말대로라면 '공권력보다 더 무서운 건 바로 내부의 동료'다. 도장공장에는 페인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불씨 하나면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의 화재가 발생할 수 있는 화약고다. 노조원들의 분노가 그 불씨를 지필 여지는 충분하다. 게다가 사측에 의해 소화전도 쓸 수가 없게 됐다. "제2의 용산참사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새벽 4시경 경찰이 또 한 차례 짧게 위협을 한 것을 제외하면 쌍용차 평택공장의 아침은 평온하게 시작됐다. 그러나 오전 8시경부터 경찰 병력이 속속 공장 주변으로 집결했다. 특공대와 진압용 컨테이너 박스의 모습도 보였다.

 

특히 소방차 수십 대가 공장으로 몰려왔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상황이다. 소방차 사이에는 살수차 외에 고가사다리차도 다수 보여, 경찰의 진압 작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쌍용차 평택공장은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태그:#쌍용차, #쌍용차 노조, #점거농성, #공권력 투입, #소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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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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