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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비 무서워서 애 못낳겠다'는 소리가 엄살이 아님을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강남의 한 영어유치원에 1년 보내는 돈이 국립대 등록금의 4배 수준이라지요? 정부에서는 사교육을 잡는다고 '학파라치'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효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교육비는 점점 부모의 재력에 비례해 극과 극을 향해 치닫고 있는 듯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총 5회에 걸쳐 '사교육? 死교육!' 기획기사를 내보냅니다. 사교육의 메카라 불리는 대치동 학원가 풍경, 사교육비 극과 극 현장, 부모들이 체감하는 사교육비에 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편집자말]
밤10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을 태우고 갈 버스와 승용차들이 늘어서 있다.
▲ 대치동 학원가 밤10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을 태우고 갈 버스와 승용차들이 늘어서 있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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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에라도 아이들을 보내는 게 낫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같아요. 실제 걸려야 할 고액 과외는 걸려들지 않는데 학원만 갖고 뭐라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요?" - 학부모 A씨.

"잘못된 조처예요. 내 자식 잘 가르치겠다는데, 신고하려는 사람이 미친 인간이지요. 없는 사람들만 억울할 거예요. 있는 사람들은 몰래 몰래 다 하고 있잖아요. 온갖 불법은 더 하는 사람들이 정책이니 단속이니 어쩌고 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어요." - 학부모 B씨.

지난 20일 밤 9시 40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사거리 주변. 학원가가 몰려있는 길거리 주변으로 정차하는 차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길옆으로 차를 멈춰선 채 아이들을 기다리던 학부모들에게 다가가 최근 정부의 사교육 경감대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이내 불만스런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고3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고 첫마디부터 쏘아 붙였다. 새벽 0시~1시까지 공부해도 모자랄 마당에 일률적으로 밤 10시에 끝나게 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것. 그는 "음성 고액과외만 늘어날 뿐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옆자리에 앉은 남편이 '그래도 정부가 하는 일인데 따라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그는 바로 대꾸했다.

"왜 서민들이 아이들 보내는 학원만 잡아? 있는 사람들 몰래하는 고액 과외는 제대로 단속도 못하면서. 과외 못 시키는 없는 사람들만 더 손해 보는 건데. 단속하려면 고액 과외를 확실히 잡아들여야지…."

'밤 10시' 거리로 쏟아지는 학생들, 불 끄는 학원들

수업 종료 시간이 10시로 나와 있는 한 학원의 수업시간표
 수업 종료 시간이 10시로 나와 있는 한 학원의 수업시간표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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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가 넘어서자 대치동 주변 도로에선 극심한 혼잡이 빚어졌다. 그 많은 학원들 정문에선 학생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고, 길게 늘어선 통학버스와 일반 차량들이 뒤엉키며 곳곳에서 경적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최근 학파라치 제도가 시행되면서 밤 10시가 되면 모든 학원이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을 귀가시킴에 따라 생긴 풍경이다. 주변의 한 상인은 "며칠 전부터 이 시간만 되면 학원 주변이 혼잡해 진다"며 "학파라치 제도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7일부터 시행된 일명 '학파라치' 제도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사교육 경감대책으로, 학원 수업시간 제한 및 교습시간 위반과 학원비 초과 징수 등을 막기 위한 신고포상금제도다. 학원의 불법적 운영 실태를 고발할 경우 최대 200만원까지 포상금을 받을 수 있게 한 '학파라치'가 시행되면서 대치동 학원가는 몸을 바짝 낮추는 모습이다. 길게는 새벽 0시 이후까지 진행되던 수업은 이제 제한시간(10시)을 넘기지 않는다.

ㅅ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이영균(고3) 군은 "학원 선생님도 학파라치 때문에 수업을 일찍 끝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며 "평소 새벽 0시 30분에 끝나던 수업이 요즘은 10시에 마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귀가하던 고등학교 1학년 한 학생도 "전에는 10시 30분까지는 수업했으나 며칠 전부터 10시에 맞춰 수업이 끝나고 있다"며 바뀐 분위기를 전했다.

ㅌ학원의 ㅎ교사는 "요즘 10시 이후에 하는 학원은 없다"면서 "우리는 규모가 작아 예전부터 10시에 끝냈다"고 말했다. 한 학원의 수업계획표에는 모든 수업이 10시에 마쳐지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사교육 과열을 잠재우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먹혀드는 듯했다.

쉬는 시간 없는 릴레이 수업에 밥도 못 먹는 아이들

불 밝히고 있는 대치동 학원들 간판
 불 밝히고 있는 대치동 학원들 간판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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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겉모습일 뿐이다. 실질적인 수업시간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학생들에 따르면 수업시간이 그대로거나 일부 앞당겨졌지만 10시에 수업이 끝나게 되면서 쉬는 시간 없이 바로 수업이 이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저녁식사도 못하고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학생도 있었다.

"이전에는 10시 30분쯤 끝났어요. 그런데 10시로 앞당겨지면서 쉬는 시간이 아예 없어요. 그래서 불편하기는 해요. 또 10시에 다 같이 끝나다 보니 차도 많이 밀리는 것 같아요. 그래도 집에 일찍 들어갈 수 있어서 피곤한 것은 덜해요." - 김보연(중학교 2학년) 학생

수업시간은 줄었지만 토요일 수업이 새로 생겼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 평일에만 있던 수업이 토요일에도 생겨났다는 것. 최은영(가명) 학생은 "시간이 급하게 변경됐다, 원래는 월수금만 오는데, 갑자기 주말 수업이 생겨나 토요일에도 학원에 나온다"며 "토요일 수업은 2~5시까지 하는데, 나오는 인원이 더 늘어난 것 같지는 않고 비슷비슷하다"고 주말 학원가 분위기를 전했다.

10시 수업제한 조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학년별로 확연히 갈렸다. 고3들은 불만이 많은 반면 그 외에는 집에 일찍 갈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전에는 새벽 0시 30분에 끝났는데, 10시에 끝나니 야간 자습도 안 되고 불편함이 많아요. 끝나면 바로 독서실로 가는데, 차도 많이 밀리잖아요. 고액 과외는 못 잡고 학원만 갖고 그러는 것 같아요." -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학생A

"일찍 끝나게 되니 좋은 걸요. 집에 일찍 들어갈 수 있잖아요. 5시에 시작해 11시에 끝나던 수업을 10시에 마쳐 여유가 생기는 느낌은 들지만, 대책 없이 시간을 조절한 것 같아요. 고3들이 불평을 많이 하던데요." -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중인 학생B

학부모들도 아이들이 집에 조금이라도 일찍 올 수 있다는 것과 학원비 인하 등에 대해 기대를 하는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학원에 묶여있는 시간이 줄어든 게 다행이며 애들을 위해서는 수업시간 제한을 두는 게 옳다는 것.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도 지난 13일 발표한 성명에서 수업시한 제한 조처를 환영하며 이를 법제화할 것을 요구했다.   

학원교사·학부모 "고액과외만 늘어날 것"

이에 비해 학원 측은 '시간표 짜기가 빠듯해졌다'면서 고충을 나타냈지만, 한편으론 방학 기간 중이라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현재는 학원 운영에 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일부 학원들은 지장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다. 또 주말반이 활성화 될 것으로 보고 있었으며 학파라치 제도에 대해서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ㄱ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한 교사는 "정부 방침에 따르기에 10시까지 하는 것인데, 학파라치 시행은 안 좋은 것 같다"며 "학원 선생님들 인격을 비하하고 모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감시당하고 고발당할 수 있는데 어느 학원 선생님들이 좋아하겠나"라고 말했다.

한 학원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교사 C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르치는 것에 대해 제한을 둔다면 통행금지도 시행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라며 "사교육이 과열되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생각은 안하고 규제 일변도로 가는 것은 미봉책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자율적인 규제로 유도해야 하는데, 학파라치 제도를 시행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며 "그런 식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나온 정책이니 수준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학원 교사들은 정부가 내놓은 수업시간 제한이 결국 음성화된 고액 과외를 늘어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치동에서 만난 학생이나 학부모들도 거의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앞서 인터뷰한
이영균 학생은 학원 수업제한이 이뤄지면서 주변에 과외 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고 했다.

학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귀가하기 위해 나오고 있다.
 학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귀가하기 위해 나오고 있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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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과외의 실태를 이야기하던 한 학부모는 목소리 톤을 높이며 이렇게 말했다.

"10시에 수업 끝나면 없는 집 자식들이나 집에 가는 것이고, 잘 사는 집 애들은 부근 오피스텔로 과외하러 가요. 학원에서 애들 길게 안 붙잡고 있는 것은 찬성하지만 결국 과외비용만 높아져 고액 과외만 돕는 꼴인데, 이런 것을 제대로 단속해야지요. 과외비도 100만원이 넘어가는데, 몰래 몰래 다 하고 있잖아요. 잡으려면 확실히 잡든가 해야지 대충하다 끝내면 시행 안하느니만 못한 거예요."

고액 과외 사정을 잘 아는 한 학원 교사에 따르면 지역에 따라 과외비가 차등이 나는데 강남은 과목당 300만원 선이라고 한다. 목동은 200만원 선이며, 가장 싼 지역도 100만원 선 이라는 것. 하지만 요즘 같은 단속이 있을 때는 몸값이 올라가는 데다 위험수당이 추가돼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따라서 사교육 팽창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해결할 만한 해결책이 들어있지 않은 이번 '사교육 경감 대책'은 일회성 조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교육 조장해 놓고 단속하겠다는 정부

대치동 한 상가 건물안에 모여 있는 학원들
 대치동 한 상가 건물안에 모여 있는 학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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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학교 교사들도 정부가 내놓은 사교육 경감 대책에 일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서울지역 한 고등학교 선생님은 "교사들끼리도 모여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부가 사교육 시장을 다 키워놓고서 학파라치로 단속한다는 것은 우스운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교육과정의 기준이 강남에 맞춰진 것이 문제"라며 "교육 정책이 강남에 기준을 두고 있기에 국어 영어 수학 위주의 입시교육이 강조되면서 사교육 시장이 과열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남 쪽은 학원에 가는 것이 당연시 돼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을 못 한다는 것. 최근 나온 대책들도 강남 교육의 틀 안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만든 정책이라 자신들의 자녀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국가 교육 자체가 학원을 키워 놓고서 학교에는 학생들을 잡아놓으라고 이야기하는 데, 학생들이 잡아지겠냐"며 "결국 학원들을 단속하는 것으로 해결하기보다는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의 한 관계자도 "사교육 조장에 대해서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겠지만 몰래 숨어서 할 수도 있는 만큼 학원들의 자율적인 조처를 유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태그:#사교육, #학파라치, #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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