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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초기에 오줌똥 사고를 너무 많이 쳐서 창살 개집을 사다가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처량한 눈초리로 동정을 호소한 했살이는 가족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결국 철거하고 말았습니다.
 입양 초기에 오줌똥 사고를 너무 많이 쳐서 창살 개집을 사다가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처량한 눈초리로 동정을 호소한 했살이는 가족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결국 철거하고 말았습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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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빠는 첫 생리를 한 딸에게 장미꽃과 케이크를 선물했다는데 딸이 없었던 저는 그런 이벤트를 준비할 일이 없었죠. 그런 저에게도 딸이 생겼는데 여성의 첫 통과의례를 마친 지 7년이 지난 열여덟 살에 만나 한 식구가 됐으니 그런 이벤트를 펼칠 기회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는 찾아왔습니다. 입양된 딸이 첫 생리를 한 겁니다. 하지만 딸을 키워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그게 생리인 줄 전혀 몰랐습니다. 방바닥 곳곳에 봉숭아 꽃물 혹은 철쭉 꽃잎 같은 붉은 흔적들이 울긋불긋 수놓아졌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에이씨~ 이게 뭐야! 누가 이런 걸 묻혀놨어!'라며 투덜거리기만 했습니다.

"엄마! 엄마! 햇살이가 생리를 하는 것 같은데!"

외출했다 귀가한 대학생 딸이 아내를 부르더니 햇살이의 몸 상태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어머어머 얘! 진짜다. 맞다 맞아, 햇살이가 첫 생리를 하는 거야!"

설거지를 하던 저는 호들갑에 가까운 모녀의 대화를 듣다가 어안이 벙벙해서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아니, 개도 생리를 하나? 설사 생리를 한다고 해도 한 살도 안 된 저 어린 것이 무슨 생리를 한단 말이야!"

컴퓨터를 하던 큰아들이 즉각 검색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곤 곧바로 무지한 아빠에게 정보를 제공했는데 이를 종합해보면 이렇습니다.

개마다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첫 생리는 6개월~10개월 사이에 하고, 생리기간은 15~20일로 긴 편이며, 두 번째 생리는 첫 생리 이후 3개월 간격으로 이어지는데 생리를 시작한 날로부터 9일쯤에 교배를 시키면 임신할 확률이 높다.

딸의 생리도 모르는데 어떻게 개 생리를 알 수 있나!

햇살이는 저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을 가장 불안해 합니다. 저와 둘이 있을 때의 기죽은 표정입니다
 햇살이는 저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을 가장 불안해 합니다. 저와 둘이 있을 때의 기죽은 표정입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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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빠는 그렇게 사이좋던 딸의 어깨를 평상시처럼 감싸 안았는데 갑자기 기겁하더라는 겁니다. 마치 추행당한 것처럼 반응하는 딸의 행동에 놀란 그 아빠는 '아하! 딸이 생리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이해했답니다. 하지만 딸을 키워본 적 없는 저로서는 딸의 생리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함께 목욕 가는 사내자식들의 생리야 어느 정도 알죠. 하지만 생판 겪어보지 않은 딸은 생리뿐 아니라 심리적 또는 정서적으로 복잡한 생리를 알 턱이 없죠. 기분 좋을 때는 '아빠~헤헤!'하다가도 말 몇 마디 또는 사소한 것에도 토라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니 참나! 아들과 달리 딸은 파악하기도 쉽지 않고, 대처하기도 어렵더군요. 하지만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딸 생리도 파악하기 복잡한데 어찌 개 생리를 알 수 있겠습니까! 개 생리를 운운하는 사이에 제 생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생리보다 시급한 것은 방바닥 곳곳에 묻은 자국을 지우고 더 이상 묻히지 않도록 조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베란다로 격리 조치한 뒤, 다음날 개 생리대를 사다가 채웠습니다. 개들이 생리를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개 생리대가 있다는 것 또한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햇살이의 첫 생리를 위해 무엇을 선물했는지 궁금하지요? 햇살이를 몹시 사랑하는 딸과 아내는 첫 생리를 축하하면서 통조림을 사다가 먹였고 저는 안방과 딸의 방, 아들 방, 거실 등에 묻힌 생리 자국을 빡빡 닦았습니다. 그냥 닦은 게 아니라 이렇게 투덜거리면서 닦았습니다.

"에이씨! 개××가 무슨 생리를 다해! 에이씨 한두 군데가 아니네!"

햇살이와 관계가 악화된 이유

첫 생리를 하는 햇살이... 개가 생리를 한다는 것도, 개 생리대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첫 생리를 하는 햇살이... 개가 생리를 한다는 것도, 개 생리대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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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청소 담당인 저에게 햇살이는 '웬수 덩어리'입니다. 개를 사랑하지 않느냐고요? 그건 아닙니다. 개는 사랑하지만 개의 오줌똥은 결코 그럴 수 없으니까요. 아내와 딸, 아들은 개를 사랑만 할 줄 알지, 사랑에 따른 배변 처리 책임은 도통 지지 않으니 그걸 치워야 하는 저로서는 짜증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햇살이는 아내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귀가하면 '오줌을 질질 흘릴' 정도로 반가워합니다. 표현이 저속하다고 나무랄지 모르겠으나 현상을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반면 현관문을 열면 반가워하며 달려왔다가도 저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잽싸게 자기 집에 들어가 숨습니다. 어떤 때는 서운함이 뻗쳐서 이렇게 소리치곤 합니다.

"아니, 엄마가 오면 환장하면서 내가 오면 안면 몰수하네! 개까지도 인간차별 하네!"

지난 3월 입양한 햇살이는 '코카 스파니엘' 잡종 유기견으로 먹성도 좋고 사납기도 하고 대소변 사고도 아주 잘 칩니다. 이불에 똥, 벗어 놓은 옷에 오줌, 안방과 애들 방에도 오줌똥…. 애가 입양된 이후 저는 오줌똥과 전쟁을 치르느라 아주 성질이 '뻗쳤습니다'. 입양의 주역인 큰아들은 개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개똥을 치우는 일엔 모르쇠고, 아내는 바빠서 잘 치우지 못하고, 딸과 막내는 건성으로 지나치고….

햇살이와 저의 관계가 악화된 것은 오줌똥 때문만은 아닙니다. 입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일입니다. 김밥을 싸기 위해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계란지단 3판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는데 햇살이가 식탁 의자를 딛고 올라와 순식간에 먹어 치운 것입니다. 계란을 더 부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결국 계란지단 없는 김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 번은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훔쳐 먹은 두 번째 사건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처가 식구들과 함께 지난 5월 23~24일 1박2일로 충남 보령의 한 섬으로 놀러 갔다가 개불을 캐왔습니다. '개불'은 해산물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개불을 챙겨 집으로 돌아온 저는 공부 때문에 여행에 동참하지 못한 둘째아들과 함께 먹을 요량으로 정성껏 손질한 뒤 접시에 담아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솔아! 개불 먹게 어서 나와라!"

아들을 부른 뒤 냉장고를 뒤져서 초장을 찾았습니다. 그 시간은 길어봐야 1~2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개불 어디 있어요?"
"응, 거기 식탁에~ 어어~ 개불 어디 갔어? 어, 저놈 봐라! 야이잇, 개××야!"

순식간에 개불을 훔쳐 먹은 햇살이가 제 고함소리에 놀라 잽싸게 자기 집으로 달아났습니다. 저는 흥분했습니다. 아니 '매우' 흥분했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개불'을 물어보지도 않고 통째로 훔쳐 먹었으니 그 죄는 심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아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햇살이'는 이 세상 개가 아니었을 겁니다. 다들 속좁다고 할지 모르겠으나 오늘 이 시간까지도 저는 햇살이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그:#생리, #유기견, #개불, #딸,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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