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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기용기자]

 

"어차피 잘릴 목, 내가 알아서 그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말이다. 유 장관은 15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제17차 위기관리대책회의의 시작을 기다리다 맞은 편 테이블에 앉아 있던 누군가가 목의 흉터를 거론하자 농담 삼아 이같이 말했다.

 

유 장관은 발언 직후 목의 상처가 최근 받은 목디스크 수술자국이라고 설명했지만 이 농담은 시기와 장소의 문제로 묘하게 받아들여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조문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개각을 고심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이기 때문이고, 또 이 자리에 위기대책회의를 주재하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모두 발언을 기사화하기 위한 20명 가량의 취재진들이 운집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기자들더러 들으라고 대놓고 한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유 장관은 지난주 금요일에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병원에서 목디스크 수술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비서실 관계자는 "장관께서 그동안 계속 목에 불편함을 느껴와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가 바로 수술을 해야한다해서 예정에도 없는 수술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 입원해 있었고 현재 통원 치료 중이라고 한다. 유 장관은 말하자면 지금 `환자`다.

 

유 장관이 불편한 몸을 끌고 오랜 만에 과천까지 오게 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이날 아침 모 일간지에서 장관들의 위기대책회의 참석률 부진을 질책했기 때문이다.

 

위기관리대책회의는 지난해 7월 고유가 상황을 계기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개편해 만든 회의체다. 당연히 각 부처 장관이 참석하게 돼 있다.

 

하지만 장관들의 참석률은 50%가 채 되지 않았다. 유 장관 역시 올 들어 15번의 회의중 고작 4번만 참석해 단 한 차례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 이어 당당한 '2위' 자리에 올랐다.

 

위기대책회의에서 문화부와 관련된 주요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에도 유 장관은 없었다. 지난 3월11일 관광을 포함한 서비스 산업 육성 방안 때도, 5월14일 역시 관광산업과 직접 관련된 남해안 투자활성화 방안을 논의 자리에도 유 장관은 보이지 않았다.

 

유 장관으로선 아픈 목을 부여잡고 과천까지 '납셔야' 할 만큼 위기대책회의 출석 성적이 충분히 저조했던 것이다.

 

유 장관은 정부과천청사에 도착해 회의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도 "이 회의 참석 안 하면 신문에 다 난다"면서 "그래도 난 4번이나 참석했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내각은 공석인 공정거래위원장을 포함해 5~8명의 장관 교체설이 나돌고 있다. 유 장관이 농담삼아 던진 '어차피 잘릴 목'이란 말은 다분히 다음달쯤 있을 것으로 보이는 개각을 염두해 둔 표현이다.

 

유 장관은 본인이 개각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는 얘기를 우회적으로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가 '형님'으로 모시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그야말로 '알아서' 그 교체 대상 목록으로 들어가려는 걸까.

 

문화부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선 장관 교체 전인 이달 안에 휴가를 다녀와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심심찮게 흘러나온다고 한다. 아무래도 취임 이후 각종 구설에 휘말리며 인기를 잃은 유 장관이 이번 개각을 맞아 마음을 굳게 먹고 있는 것 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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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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