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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공원 후문 앞에서 치아고개삼거리를 지나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으로 나아가다 보면, 신천고가도로 인근에 자리한 소산서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소산서원(소산재)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자는 연량, 호는 경재-신희, 본관은 진주인 하연(河演, 1376-1453) 선생의 재실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타자 1467년(세조12)에 하연의 셋째 아들인 우명(友明)이 이곳에 영당을 짓고 소산재를 다시 지어 봄가을로 향사를 지내오고 있습니다.

 

 

1963년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쇄락한 소산재를 중건하였고, 1995년 다시 중건하여 소산서원(蘇山書院)이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합니다. 소산서원 뒤편에는 사당인 문효사(文孝祠)가 있습니다.

 

하연 선생은 정몽주의 문인으로, 21살에 벼슬에 올라 이조판서, 대제학,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의 벼슬을 두루 거쳐 황희, 허조와 함께 명재상이라 일컬어집니다. 편서에 <경상도지리지>, <진양연고>가 있으며 저서로는 <경재집>이 있습니다.

 

 

서산서원 뒤 소래산 중턱 남쪽 기슭에는 그의 묘가 있는데, 풍수로 보아 무공단좌형(武公端座形)으로 후세에 인재 부귀가 끊이질 않을 명당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커다란 묘역을 중심으로 앞 중앙에 상석과 향로석이 놓여있고, 우측에는 묘비, 좌측에는 장명등, 좌우에 문신석인과 석양 한 쌍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묘역 주변에는 하연 선생의 2남 하제명과 손 하중호의 묘, 3남 하우명과 손 하철석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산서원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시흥시 향토유적 제11호인 하우명 효자정각이 있습니다. 하우명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하연 선생의 셋째 아들로 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700년대 처음 세워진 후, 후대에 내려오면서 수차례 중수하였으나 오랜세월 동안 원형을 잃어가자 1988년 전면 보수했다 합니다.

 

"우리 어머님께서는 평소에 자식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가장 즐거워하셨다"는 하우명은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는데, 아침 저녁으로 손수 조리한 찬으로만 상을 올렸고 어머니 또한 아들이 직접 조리하지 않았을 때는 음식을 들지 않았다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 경기도 시흥시의 문화재 안내판만 봐도 허술하게 문화재를 관리-방치 하는 인천시와 너무나 비교가 되더군요.


태그:#하연, #소산서원, #하우명, #효자정각비, #시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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