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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신화에 대해 매력을 느낀다. 인간의 이야기가 아닌, 신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판타지적인 이야기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신들의 모습들에 열광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그러면서도 대중에게 잘 알려진 신화는 그리스 신화일 뿐, 그 외의 신화에 대해서는 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쉽게 그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한다.

 

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북유럽신화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며, 문화 콘텐츠의 영향으로 일본 신화에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소수지만 우리의 것을 좋아하는 이들은 한국의 무속신화에도 관심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에서는 문명권에 따라서 각자 독특하고도 재미있는 신화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이집트 신화는 오랜 역사와 함께, 신화의 변동이라는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집트의 역사에 따라 신들의 역할이 변하고, 또한 신들의 권력도 달라진다. 이러한 다채로운 모습은 이집트 신화를 접하는 매력일 것이다.

 

이런 이집트 신화는 바로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인 이집트 문명전, 즉 '파라오와 미라'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신화적 내용은 단편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특별전을 가서 볼 수 있는 신화의 이야기들을 간단히 써 볼까 한다.

 

[오시리스] 미라로 부활한 저승의 신이자 죽은 자의 왕

 

 

오시리스는 이집트 신화에서 매우 특별한 신이다. 이번 '파라오와 미라'전의 도록에서도 제일 첫 번째로 소개될 정도로 그 중요도가 높다. 본래 오시리스는 고대의 옥수수 신이자, 시리아에서 주로 숭배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시리스는 이시스의 남편이자 호루스의 아버지, 그리고 세트의 형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식으로 이집트의 신들은 그 족보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태초의 사람들은 야만스러운 식인종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문명을 전파해 준 이가 바로 오시리스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법, 신을 숭배하는 법 등을 가르치고 법을 제정하였다고 한다. 오시리스는 설득을 통해 사람들을 다스렸고, 운하와 댐을 건설하여 홍수를 조절하며 이집트를 다스렸다고 한다.

 

그러나 왕위를 탐내는 세트에 의해 쫓겨나고 결국엔 죽임을 당하게 된다. 세트는 어느날 오시리스를 연회에 초대하여 오시리스에게 맞는 상자를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관처럼 누워보라고 꼬드겨, 오시리스가 상자에 눕자 바로 못을 박고 납을 달아 나일강으로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시스가 시신을 찾자, 이를 열네 토막 내어 또다시 시신을 버리게 된다. 하지만 이시스 등의 노력으로 부활하게 되고, 죽은 자의 땅에서 자신의 왕국을 통치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아들인 호루스에 의하여 누명이 벗겨지게 된다.

 

오시리스는 이시스와 호루스와 함께 삼신일좌(三神一座)라는 형태로 이집트 전 지역에서 숭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오시리스는 지상권을 상징하는 문장인 양치기의 지방이나 채찍(혹은 도리깨)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며, 머리엔 아테프 왕관을 쓰고 구부러진 턱수염을 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진의 <오시리스>는 다소 작은 형태지만, 이 외에도 여러 유물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네페르헤테프의 석비>같은 석비들에서 찾을 수 있는데, 석비 자체가 저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많기에, 저승의 왕인 오시리스가 나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이시스] 지혜롭고 자애로운 이집트의 영원한 어머니

 

 

이번 특별전에서 이시스에 대한 대표적인 유물은 2점을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는 <날개 달린 이시스>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시스와 하포크라테스>라는 유물이다. 두 형상 다 이집트에서 많이 제작되고 또 알려진 형태로서, 이시스의 대표적인 도상을 보여준다. 이시스의 날개는 오시리스를 감싼다고 하며 솔개나 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시스는 대부분 암소 뿔 사이에 태양 원반이 달린 관을 쓰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와 마찬가지로 게브와 누트의 딸로 알려져 있다. 게브와 누트의 자식으로는 오시리스, 세트, 이시스, 그리고 네프티스가 있으며, 이 중에서 오시리스와 이시스, 세트와 네프티스가 결혼을 하게 된다. 이러한 모습이 다소 이상하게 비쳐지지만 이집트에서는 이런 결혼이 전통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클레오파트라 7세는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결혼하였는데, 둘 다 클레오파트라의 남동생이었다는 점이 그 대표적인 일례이다.

 

이집트 신화에서 이시스의 숭배가 중요한 이유는 그녀가 오시리스가 죽은 뒤 한 역할 때문이다. 오시리스가 지상을 통치할 때에는, 그가 자리를 비울 때 섭정하고 가사일을 여자들에게 가르치며 결혼제도를 수립했다는 정도이다. 하지만 오시리스가 세트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자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앞서 말한 대로 이시스는 열네토막 난 오시리스의 시신을 찾아나섰는데, 열세토막은 찾았지만 남근은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는 나일 게가 먹어버렸기 때문으로, 나일 게는 그 때문에 저주를 받고, 오시리스의 남근은 다른 것으로 대체된다.

 

이시스는 생전에 오시리스의 아이를 갖지 못하였다. 하지만 마법을 이용하여 죽은 오시리스의 아이를 임신하였고, 이 아이가 바로 하포크라테스, 즉 호루스라고 한다. 이러한 신앙은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며, 종교학자들은 나사렛 예수가 어릴 적 이집트에서 자랐다는 점을 상기하여, 기독교가 이집트 신화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게 바로 이시스가 남편과의 관계를 하지도 않았음에도 호루스를 가진 것이며, 앞서 본 '이시스와 하포크라테스'라는 유물은 마리아의 도상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세트] 흉악하고 강력한 파괴의 신이자 비운의 사나이

 

 

오시리스와 이시스, 호루스가 이집트에서 최고의 신으로 숭배 받는 데에 반하여 세트는 과연 어떤 위치에 있었을까란 생각도 들 것이다. 세트 또한 의외로 이집트에서 상당히 숭배의 대상이 되으며, 그 대표적인 일례가 <세티 1세의 카르투슈가 새겨진 부조파편>이라는 유물이다. 세티 1세는 세트를 숭배한 왕으로서 신의 성격처럼 정복을 좋아했다고 전한다. 카르투슈란 이집트 상형문자 중에서 왕의 이름이나 신의 이름을 표시하는 판넬로 타원형의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서 왕은 생전에 신으로 취급 받았기에 신과 같이 카르투슈를 쓰는 것이다.

 

세트는 리비아에서 온 것으로 추측된다. 이집트의 신들은 전통적으로 이집트에 있던 신들도 있고, 이방인들에 의해 그 신앙이 옮겨진 것도 있는데, 세트나 오시리스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집트는 정복민들의 신을 부정한 게 아닌, 자신들의 신과 융합시켜서 새로운 신으로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세트는 오시리스의 동생이며 네프티스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야심만만한 신이었기에, 권력에 대한 욕심이 굉장히 강력하였다.

 

세트가 오시리스에게 불만을 품은 것은 영토 분할 문제 때문이었다. 오시리스와 세트는 하이집트와 상이집트를 분할 받았는데, 이를 모두 오시리스가 다스렸다고 한다. 전쟁을 좋아하던 세트는 평화로운 방법으로 정복하고 통치하는 오시리스가 아니꼬웠고, 결국 꾀를 써서 죽이게 된다. 나중에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와 기나긴 전쟁을 치르게 되며, 신들의 법정에서 최후엔 호루스가 승리를 인정받게 된다.

 

세트는 티폰 동물의 모습이나, 티폰 동물의 머리를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외에도 사막의 동물인 멧돼지, 돼지, 하마, 악어, 뱀 등이 세트와 결합되었다고 한다. 이집트의 신들은 이처럼 동물의 모습을 하거나, 동물의 머리를 한 인간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호루스] 이집트 신화의 마지막 승자이자 태양의 절대자

 

 

이번 문명전에서 호루스의 모습을 형상화 한 유물들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입구에 있는 <호루스의 신성한 동물, 매>와 <호루스와 호렘헤브>라는 석상이 그것이다.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된 신이면서, 숭앙받았던 매의 신이다. 호루스는 매의 형상을 하고 있거나, 매의 머리를 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호루스는 태양신이면서 그의 두 눈은 태양과 달을 형상화한다. 세트와의 싸움에서 최후의 승자이기도 하다. 호루스는 여러 모습의 신으로 나타나며, 때로는 다른 신과 결합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이집트 신화의 특징이다.

 

앞서 말했듯이 호루스는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로서, 유복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하반신이 장애였다는 말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포크라테스('유아 호루스'라는 뜻)는 이시스의 젖을 먹는 형태로 나타나거나 앉아서 손가락을 빠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호루스는 왕관과 우라에우스(코브라) 표식을 쓴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시리스는 죽은 뒤에도 어둠에서 돌아와 호루스에게 전쟁에서 싸우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다소 어리둥절하지만 이게 가능한 것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가 미라로 만들어져 영생을 얻었고, 저승의 신이 되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호루스는 성년이 된 후 본격적으로 세트에게 복수를 시작하였고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하여 세트는 신들의 법정으로 문제를 가져가길 원했다. 결국 신들의 법정이 이 문제가 올라오게 되고, 80년 동안이나 이 문제를 가지고 다투게 되었다.

 

다수의 신들은 호루스를 지지하였지만, 최고신인 라-하라크테가 세트의 편을 듦으로서 재판이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호루스와 세트는 서로 언쟁을 하고 싸움을 하고 마법을 쓰기도 하였다. 그 와중에서 이시스는 마법을 써 자신을 매혹적인 여성과 아들의 모습으로 바꾸었고, 세트에게 접근하여 꾀를 부렸다.

 

처녀로 변장한 이시스와 아들에게 낯선 남자가 다가와 '난 너를 물리치고 네 아버지의 소를 데려간 후 너를 쫒아버리겠다!'라고 외쳤다. 이시스는 이런 자신을 도와주라고 하자, 세트는 매혹적인 여성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남자에게 상속자인 아들이 있을 때 소를 낯선 사람에게 주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이시스는 이를 이야기를 그대로 법정으로 가져갔고, 세트는 이로 인하여 크게 불리하게 되었다.

 

이후로도 다툼이 계속 되었지만, 오시리스의 변호가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결국 호루스는 오시리스의 상속자임을 인정받게 된다. 이집트 신화는 이런 식으로 다소 복잡한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곳곳에 내용이 뒤섞이곤 한다. 이는 신화가 하나로 정해진 게 아닌, 시대에 따라 변하는 매우 유동적인 점을 갖고 있고, 이게 이집트 신화의 결정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집트 신화는 매우 이국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이러한 이집트문명은 자신들의 삶에 신화를 깊게 각인시켜 놓았기에 수많은 유물에서 그 흔적들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앞서 말한 4명의 신 외에도 수많은 신들이 있고, 이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로 이집트 신화는 꾸며진다.

 

이번 이집트문명전에서는 이렇게 여러 이집트 신들과 그들의 뛰어난 문명,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상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집트의 문물이라고 마냥 신기해하기만 하기보다 미리 약간의 공부를 해나가면서 그들에 대해 더욱더 깊이있게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5월 30일 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문명전에 갔다와서 쓴 글입니다. 이집트의 수많은 신 중에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4명의 신에 대해 써 보았습니다.


태그:#국립중앙박물관, #이집트문명전, #파라오와 미라, #이집트, #호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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