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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 지난 3월 병환이 너무 깊어져서 부산 중앙동에 있는 노인전문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기 한 달 전부터 너무 고통스러워서 낮이고 밤이고, 새벽 두세 시이고 전화로 호출을 하셨습니다. 제 아내는 어머니의 호출을 받고 달려가서 수지침을 놓아드리고 온갖 병수발을 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직전에는 고통을 단 1분도 못 참겠다고 하셔서 하는 수 없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입원하신 그 다음날부터 막무가내로 퇴원을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아파서 그러셨겠지만,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도 소리를 지르고 떼를 써서 일주일동안에 병실을 세 번을 옮길 정도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한 그날부터 다른 환자들에게 기피대상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선 의사가 MRI 소견상 치매가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말도 어눌하고 발음이 분명치 않아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고, 눈동자도 거슴츠레하고, 이따금 엉뚱한 말을 하기도 하고, 아무도 때나 간호사와 간병인을 큰 소리로 불렀는데 금방 안 오면 또 안 온다고 화를 내고 나를 무시했다고 불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도 소리를 질러서 병실 환자들에게 왕따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간병인 간호사들의 시선도 곱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제 아내는 어머니가 입원한 그날부터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매달렸습니다. 아침에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병원엘 가면 저녁 5시가 넘어서 집에 돌아오곤 했습니다. 집안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어머니에게 얼마나 시달렸던지 집에 돌아 오기만하면 아무 일도 하지 못할 정도로 녹초가 되곤 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어머니 병수발을 들었습니다. 아파 죽겠다고 하시는 어머니를 붙들고 운동을 시켰습니다. 누워서 다리 들어 올리기, 몸을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 가며 옆으로 눕기, 침대에서 침대 손잡이를 잡고 일어서기 등등 그러면 어머니는 아픈 사람 운동시킨다고 아내에게 때론 듣기 거북한 말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타지에 사는 동생들과 누나들이 병원에 와서 어머니의 상태를 보고, 곧 돌아가실 것 같다며, 장례절차를 의논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랬던 우리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 아내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표현합니다.

 

병원 침대에서 일어나 앉지도 못하시고, 몸을 왼쪽 오른쪽으로 눕지도 못하셨던 어머니가 지금은 워커를 잡고 병실 복도를 자유롭게 다니시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도 거시고, 잠도 잘 주무시고, 식사도 하나도 남기지 않으시고, 누워서 요가를 배운 사람처럼 유연하게 90도 이상 다리를 번쩍번쩍 드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입에서 아프다는 말이 쏙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입에서 남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말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도 더 하십니다. 병실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으셨습니다.

 

잠자리에 드시기 전,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과 병원 의료진들을 위해서 큰 소리로 기도를 하십니다. 낮에는 환자들이 심심해하는 것 같아 보이셨는지 어머니가 다른 할머니들에게 노래를 시키십니다. 병실 환자들에게 기피 대상자이셨던 어머니가 이제는 제일 인기 있는 할머니로 바뀌셨습니다. 전에는 의료진이나 간병인 간호사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짜증을 부리고, 욕도 하고 그러셨는데 지금은 이들을 만나기만 하면 "고맙습니다"하면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너무너무 친절하다고 "짱"이라고 하십니다.

 

새로 들어온 어느 간병인이 말씀하길, 우리 어머니가 병원 입원 환자들 중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 같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어제는 병원 의사가 회진을 도는 중에 제 아내에게 말하길 212호는 원래 중환자실이어서 분위기가 무겁고 칙칙했었는데, 요즘 들어서 우리 어머니 때문에 병실 분위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활짝 웃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너무너무 부족해. 하나님 은혜 정말 감사해. 좋은나무교회 교우들이 기도해 주고, 아들 며느리가 나를 위해 기도해준 덕분이야. 내가 전에는 왜 그랬는지 몰라. 며느리가 운동을 시키면 다 죽어가는 사람 운동시킨다고 욕하고 그랬었는데, 내가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몰라. 내가 제 정신이 아니었나 봐. 착한 며느리가 나를 이렇게 살렸어."

 

저는 우리 어머니를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불평이나 원망이 들어가면 사람이 공격적이 되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인만 괴로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괴로움을 가뎌다 준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사람의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들어가면, 사람이 너그러워지고, 남을 배려할 줄 알게 되고, 조심스럽게 행동을 합니다. 본인만 기쁘고 감사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에게도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토요일.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내가 병원에 다녀오겠다며 나갔고 조금 있더니 딸마저 친구집에 간다고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집을 나서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은빈아 아빠 점심밥 먹어야 되는데 아빠 밥은 누가 차려 주냐? 네가 차려주면 안 될까?"

"아빠, 누굴 의지하지 말고 이제부터 아빠 스스로 할 생각을 하세요. 아빠 잘 하시잖아요. 아빠가 차려 잡수세요."

 

우리 집 두 여자가 집을 나가고 집에는 나 혼자 덜렁 남았습니다. 그래도 싫지는 않습니다. 어머니의 쾌유 하나만 생각해도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세 여자 모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태그:#어머니, #장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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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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