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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무정히 흘러 어느덧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까지 치렀다. 속설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영혼이 이승에 머물다가 49일째 되는 날에 저승으로 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도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 미래를 알 수는 없는 거지만 다소간의 세월이 흐른 후, 그는 민주주의를 실천한 탁월한 정치 지도자로 역사에 길이 살아남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사과 겸 해명의 글을 올린 것은 지난 4월 7일이었다. 이로부터 47일 후인 5월 23일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47일은 인간 노무현으로서 도저히 감내할 수 없이 괴로운 시간이었을 터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세상을 버릴 수밖에 없다고 여겼겠지만 그의 죽음을 접한 우리는 마른벼락 같은 충격을 받아야 했다.

 

김구가 죽었을 때 한국인들의 통일 의지와 반 이승만 감정은 뜨겁게 달아올랐었다. 하지만 세월과 함께 그의 부재는 결국 반통일 세력과 이승만 집단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노무현의 죽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를 추모하는 분위기가 여간해서 식지 않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대한 여론 지지도가 하강했다고 하지만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노무현의 부재는 한국의 민주주의 진행에 막대한 손실로 작용할 것이다.  

 

노무현의 최종적인 유산과 업적을 규정하는 것은 이제 학자와 사가들의 몫이 되었다. 다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가 남긴 숙제가 무엇인지를 사색하는 것이 화급한 일로 대두했다. 이 숙제를 푸는 것이야말로 그가 소망하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일 터이고 아울러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이후는 어떻게 되어야 하나? 어떻게 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까?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이런 것들을 사색하고 대처하는 작업은 우리들의 화급한 현안이 되었다.

 

 

500만 조문이 대수인가? 1150만이 MB 찍은 국민인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죽인 것은 우리, 즉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만일 노 전 대통령이 그렇게 고초를 겪을 때 500만 명 문상객 중 10분지 1인 50만 명이라도, 그럴 수는 없다, 전직 대통령에 대해 이럴 순 없다, 매일 같이 혐의 흘리면서 정신적 타격을 주고, 스트레스 주고, 그럴 수는 없다, 50만 명만 그렇게 나섰어도 노 전 대통령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부끄럽고, 억울하고, 희생자들에 대해 가슴 아프겠습니까."

 

노 전 대통령은 4월 7일 절절한 사과와 함께 나름대로 합리적인 자기 해명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도덕적 비판과 사법적 응징을 구별해야 하는 우리의 이성은 작동하지 않았다. 왜 그때 우리는 짐짓 침묵하거나 애써 그를 경원시했던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조중동을 선봉으로 하는 언론 보도에 마취되어 버렸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반 후인 5월 23일을 기점으로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말 그대로 운니지차(雲泥之差)로 달라졌다. 물론 이것은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 후에 얻어진 만시지탄의 결과였다.

 

아무튼 노무현은 '뇌물을 수수하고 여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파렴치한 준범법자'에서 일약 '감동적인 영웅'으로 환생했다. 그런데 이런 경천동지할 표변은 부끄럽게도 이른바 진보 언론이건 진보 인사건, 말 그대로 오십보백보 수준으로 나타난 것이 사실이다.

 

무엇이 노무현으로 하여금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일까? 이것은 그가 정작 두려워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것과 관련된다. 지금도 몹시 안타까운 것은 그가 4월 7일 사과 및 해명의 글을 올렸을 때, 어느 누구도 그 사과의 진정성과 해명의 객관성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한겨레>가 기사 제목을 '노 전 대통령, 권씨 관련되자 전격 사과문'이라고 뽑았을 정도이니, 세간의 다른 여론들은 더 말해 보아야 입만 아프다.

 

노무현이 진정 두려워했던 것은 비록 권력의 압박이 부당하다고 해도, 그 부당한 압박에 저항할 자기 명분을 잃었다는 점 아니었을까? 그로 하여금 자기 명분을 상실하도록 만든 사람들이 누구였던가? 가슴 아프더라도 냉정하게 말하기로 한다. 노무현의 명분을 축낸 사람들은 바로 그의 측근들, 이른바 친노세력이었다. 그들 중 상당수가 불법적인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그가 정말 어려웠을 때는 그를 두둔하지 않았다.

 

이런 언론 풍토에서, 그리고 이렇게 안목이 좁은 인사들이 진보와 개혁을 이끄는 한, 노무현이 소망했던 '사람 사는 세상'은 요원할 따름이다. 이제 와서 진보개혁 측에서는 500만 명 이상이 노무현을 문상했다고 내세운다. 하지만 사람 죽고 나서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500만 명이 문상한 것이 뭐가 그리 대수라는 말인가. 1150만 명이 이명박을 찍었던 국민 아닌가.

 

 

진보개혁 진영의 일대혁신이 필요하다

 

노무현의 죽음으로 인해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은 지금과 같은 리더십으로는 이룰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무언가를 이루기는커녕 속수무책으로 계속 당하기만 할 뿐이라는 점을 우리는 냉연히 깨우쳐야 했다. 노무현은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진보개혁 진영에 노무현과는 다른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해야 한다는 숙제를 주고 떠났다.

 

이명박 정권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새삼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 얼마나 유용한 10년이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불길한 말이기는 하지만 지난 '잃어버린 10년'은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의 처음이자 마지막의 전성기였는지 모른다. 냉연히 말해서 앞으로 '잃어버린 10년' 같은 세월이 영영 도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다. 그것은 차기 선거에서 보수·  수구 세력에게 정권을 주지 않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과업이 수행되어야 한다. 먼저 시민사회가 각성해야 하며 이에 맞추어 진보개혁 세력이 단일하게 뭉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진보언론] 뒷북 말고 제대로 의제 선점해야

 

시민사회나 시민들이 움직이는 데에는 미디어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진보 미디어를 대표한다는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등은 한국 사회의 의제를 주도하는 데에 줄곧 타이밍을 놓쳤거나 소극적이었다.

 

그들은 한사코 조중동의 뒷북이나 치는 식의 보도를 일삼아왔다. 다시 말해서 일단 조중동이 보도한 의제에 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식의 기사는 쓸지언정 조중동의 반대를 이끌어낼 만한 기사를 선제적으로 생산해 내는 데 태만하거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이 중시한 것은 창조가 아니라 상식이었다. 그들은 진화에 성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면상 두 가지만 예로 들기로 한다.

 

첫째, 흔히 노무현 정부의 실책 중 하나로 부동산정책을 들었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볼 때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헌법재판소의 '수도 서울 사수 결의'에 잇닿아 있다. 서울·경기도가 영원한 수도권으로 확정되자 수도권부터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것이다. 이럴 경우에 안목이 있는 진보언론이라면 부동산 폭등 책임을 노무현 정부에 물을 것이 아니라 수구적인 헌법재판소에 묻는 의제를 선제적으로 더 명확하게 발주했어야 한다.

 

둘째, 지난 대선 정국에서 조중동은 보수세력의 단합에 초점을 두는 보도 태도를 견지했다. 그들은 이명박과 박근혜 두 세력의 분열을 경계하고 만약 당을 쪼개거나 경선에 불복할 경우 거의 폐인이 될 것임을 경고하는 기사를 생산했다. 아울러 그들은 이회창의 출마를 비난했다. 그리고 박근혜가 경선 승복을 선언하자 침이 마르도록 그를 칭송해 주었다.

 

이때 진보언론들은 무얼 했나. 그들은 조중동의 보도 태도를 제대로 비판하거나 새로운 의제를 내세우지 못했다. 진보 세력의 단일화에는 최종적인 단계에서나 관심을 보였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의 진보 언론이 처한 경영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면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대로라면 한국의 진보언론들은 주류 언론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것은 진보 언론 스스로 일대혁신을 통해 거듭나서 제 역할을 다할 때에라야 가능하다.

 

 

[정치권] 정권을 다시 잡을 생각이 있다면

 

흔히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 준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국민들이 권력을 누리고 있는가? 권력은커녕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박탈당하고 있다. 이것은 노무현 정권이 정권 방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무현은 권력을 국민이 아닌 한나라당에게 되돌려 준 것이라는 견해도 일면 타당성을 가질 수가 있다고 본다.

 

정권을 내준 두 번째 이유는 범여권이다. 지난 대선 정국에서 이른바 범여권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다가 뒤늦은 시간에 일부만 겨우 감동 없이 통합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영락없이 대패로 나타났다. 

 

깨놓고 말해서 과연 친노와 구 민주당 세력은 전혀 다른 세력인가? 한쪽에서는 '노빠'라고 손가락질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난닝구'라고 비웃지만 과연 정말 다른가? 또, 민노당과 진보신당은 서로 다른가?

 

김대중이 정권 교체에 성공한 것은 김종필과 연대했기 때문이고, 노무현이 이회창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호남의 지지를 받은 영남인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민봉기로 정권을 타도하지 못할 바에야 정권을 되찾는 길은 선거밖에 없다.

 

물론 선거 때마다 제기되는 후보 단일화 요구가 오히려 진보개혁세력의 입지를 좁히는 부작용을 초래한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선거 막판의 단일화 논의는 실패할 경우 더 큰 역풍을 맞는다. 그러므로 단일화는 일찍부터 서둘러 이에 따르는 문제점을 미리 노출시켜야 성사될 수 있다. 당연히 선거는 표를 많이 얻는 세력이 이긴다. 다소 혼탁해지더라도 합치는 일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선거운동이 된다. 통합은 선거에서 정책이나 인물 면보다 우세한 승리의 관건이다.

 

야권 총 통합에는 지역감정이라는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하지만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건드릴수록 덧나는 성질을 띠고 있다. 특정 지역을 함부로 거론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누구는 호남에서 출마하면 안 된다는 논리, 비호남인이라야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 등은 기실 지역감정에 불과하다. 지역감정은 아예 싹 무시해버리고 언급조차 안 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이다.

 

현대정당은 이념의 스펙트럼이 넓어야 성공한다. 그래야 유권자를 많이 포섭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는 원희룡부터 김용갑까지 포진해 있었다. 미국 민주당의 40%는 공화당이고 공화당의 40%는 민주당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과연 친노와 구 민주당, 그리고 민노당과 진보신당 등은 살림을 따로 차려야 할 정도로 다른 점이 있는 정치세력들인가? 혹여 자기만 선명하다는 식의 주장은 제발 펴지 말라. 당신들은 모두 똑같이 선명하거나 아니면 모두 똑같이 선명하지 않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야권의 전면적인 통합 없이는 정권 탈환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반MB연대 가동하되 2010년까지 염두에 두어야

 

이명박 정부 들어 민주주의가 손상되고 남북관계가 파탄났으며 서민의 삶은 한층 피폐해졌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국정 기조를 전환할 의사가 추호도 없어 보인다. 당장 목전의 현실이 너무도 급박하여 차기 대선까지 염두에 둘 여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의 전횡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우리의 현안이기는 하다. 만약 비정규직법이나 미디어법이 이명박 정부의 의도대로 관철된다면 서민경제와 민주주의는 다시 한 단계 추락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장의 현안에 대하여 정당과 시민단체를 망라한 반 이명박 연대가 즉시 가동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열정이 식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의 투쟁과 동시에 내일을 내다보는 전략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금의 진보개혁세력은 한편으로 투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창조해야 하는 이중의 과업을 떠안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이명박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그는 투쟁의 대상은 될지언정 경쟁의 상대는 아닌 것이다.

 

반 이명박 연대를 가동하되, 그것이 지금의 현실을 개선함은 물론 차기의 승리를 위한 발판이 되도록 해야 한다. 투쟁과 창조, 이 두 가지 과업을 이루어야만 하는 당위적 부담에서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모든 정당은 물론 시민단체와 시민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고 본다. 우리는 앞으로 3년 반, 범상치 않은 시간을 맞이할 각오를 다져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태그:#노무현, #진보개혁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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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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