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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표준형 가로판매대 설치 전후. 오른쪽이 한화빌딩 앞에 새로 설치된 B타입.
 서울시 표준형 가로판매대 설치 전후. 오른쪽이 한화빌딩 앞에 새로 설치된 B타입.
ⓒ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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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만 기다려요."

종로 2가에서 가로판매대(가판대)를 운영하는 김아무개 할머니의 말이다. 김 할머니의 가판대는 지난 3월에 디자인이 새롭게 바뀌고 나서 매출이 절반 이상 줄어서, 이제는 하루 매출이 2만 원을 넘기기 어렵다. 취재 전날인 7월 1일에도 아침 11시부터 밤 11시까지 12시간 동안의 매출이 1만8천 원이라고 밝혔다. 비 오는 날은 그래도 우산이 제법 팔려서 요즘 김 할머니는 비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특히 김 할머니처럼 담배, 로또 등을 판매할 수 없는 가판대 운영자는 매출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담배와 로또는 허가를 받은 가판대에서만 판매할 수 있고, 현행법상 50m 이내에 담배 판매업소가 있으면 담배판매 허가를 받을 수 없다. 도시경관을 위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도록 만든 새 가판대 디자인은 이런 상인들에게 치명적이다.

서울시 표준형 가로판매대. 광고만 도드라질 뿐 옆에서 봐도 상품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서울시 표준형 가로판매대. 광고만 도드라질 뿐 옆에서 봐도 상품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 정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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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로또를 판매할 수 있는 가판대라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단성사 앞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정기호(남·60·가판대연합회 회장)씨는 "옆에서 보면 문을 열었는지 안 열었는지도 알 수 없고, 상품을 밖에 진열할 공간이 줄어서 디자인이 새로 바뀌고 나서 매출이 70% 이상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멀리서도 상품을 볼 수 있어야 와서 뭔가를 살 텐데, 안에다만 진열할 수 있도록 하니 장사가 어렵다"고 했다.

종로의 가판대는 대부분 상황이 비슷했다. 가판대의 매출 감소에는 경기가 안 좋은 점, 편의점의 증가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종로 3가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는 박아무개(여·51)씨는 "경기가 나쁜 것도 원인이겠지만, 가판대 새로 바뀌고 갑자기 매출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든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약 276억 원의 예산을 들여 서울시 가판대 2800여 개(구두 수선점 포함)의 디자인을 모두 바꿀 예정이다. 디자인을 결정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도시 경관과의 조화다. 가판대의 색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색인 기와색을 선택했다. 시민의 보행권을 위해 상품을 최대한 안으로 넣고 밖에 진열할 수 있는 공간을 없앴다. 시민에게는 좋을 수 있지만, 가판대로 밥벌이하는 상인들에게는 가혹한 면이 있다.

"부속시설물이기 때문에 가급적 튀지 않고 도시경관에 묻힐 수 있게 만들었다"는 서울시의 새 디자인 목적을 생각하면 가판대의 매출 급감은 당연한 결과다. 이병준 서울시 공공디자인 담당관은 "매출이 줄어든 것은 예전에 법을 어기면서 과도하게 거리를 사용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심각하게 보행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운영자들의 입장을 차츰 반영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새 가판대에 대한 상인들의 불만이 높다.
 서울시 새 가판대에 대한 상인들의 불만이 높다.
ⓒ 정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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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은 가판대 뒷면과 한쪽 옆면에 커다랗게 붙은 서울시 광고에도 불만이 있다. 담배를 판매하는 가판대를 운영하는 최아무개(남·70)씨는 "원래 쓰던 담배판매 광고판은 도시경관을 위해 붙일 수 없게 하고는, 이렇게 자기들 광고만 대문짝만하게 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서울시는 가판대 뒷면과 한쪽 옆면의 3분의 1 이상을 시의 정책 홍보를 위해 이용한다. 도시 경관에 묻히기 위해 사용한 기와색이 형형색색의 광고판을 더욱 눈에 띄게 한다는 것도 문제다. 이렇게 눈에 잘 띄는 홍보 광고판은 최대한 가판대를 눈에 안 보이게 만들겠다는 애초의 가판대 디자인 의도와도 맞지 않는다. 크기도 문제지만 그 내용도 문제가 됐다. '서울시가 청렴도 1위를 했다'는 등 서울시의 치적을 알렸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시의 치적이나 사업계획을 광고물에 포함하는 것은 오세훈 시장의 선거법 위반 소지가 될 수 있다"며 수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광고에 대해 정기호씨는 "도시경관을 위해 디자인을 바꿨는지, 광고를 달기 위해서 디자인을 바꿨는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태그:#가로판매대, #디자인서울, #매출감소, #서울시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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