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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병 중이신 어머니를 뵈러 빛고을을 다녀 왔습니다. 연초에 엉덩이뼈를 다치셔서 고생이 심했는데 조금 나아지려는 판에 다시 넘어지셨다는 겁니다. 거동이 수월치 않지만 그래도 다행히 얼굴색은 좋으시더군요.

젊어서 '녹두장군' 소릴 들으실 정도로 움직임이 활발한 분이셨는데, 여든을 넘긴 나이탓에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떼시는 걸 보니 속이 상하기도 하고, 인생의 무상함과 세월의 잔인함이 새삼 폐부에 꽂히더이다,

마침 군에서 휴가나온 아들 녀석과 여름방학 중인 딸(대학생)을 데리고 간 터라, 짜투리시간을 이용해 역사탐방을 시킬 겸, 5·18 묘역(신묘역과 구묘역)을 둘러 보았습니다. 얘들도 이곳에 가자고 졸라대기도 했구요.

신묘역은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기념식이나 공식적인 행사무대로 전락한 듯한 느낌 때문인지 구묘역 쪽에 더 마음이 가더군요. 오리지날한 현장감이라든가 소박.질박한 투쟁성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라서 그럴까요?  

 

과연 구묘역에 들어서자마자 "5월정신 계승하여 MB독재 박살내자" "열사정신 계승하여 비정규악법 저지하자" 등의 문구가 새겨진 여러 장의 플래카드가 우리를 맞습니다. 신묘역에선 결코 보지 못했던 광경입니다.  

플래카드에도 쓰여있듯이, 구묘역을 관통하는 중심단어는 '계승'입니다. 5·18의 항쟁이 빛바랜 역사 속의 한 사건으로 끝나선 안되고, 오고 오는 세대에 올곧은 비판정신과 '사즉생'의 기개로 늘 되살아나야 한다는….

5·18의 원혼들을 처음에 받아들인 구묘역에 이한열, 박선영, 이용석, 박종태 열사 등이 나란히 자리하는 것도 필경 그 때문일 겁니다. 여기에는 단절이 없습니다. 탸헙도 없습니다. 시대를 격한 날선 저항만 번뜩일 뿐!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부르짖다 산화한 이한열과 박선영, 비정규직의 차별을 온 몸으로 고발했던 이용석, 박종태 열사의 주검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때나 다를 바 없는 오늘이 생각나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저들이라고 제 한 목숨 아깝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자신을 민주와 평등의 제단에 제물로 바친 것은 자신들이 겪은 그 아픔과 슬픔이 후대에서는 결코 반복되거나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순정에서 그리했을 겁니다.

그런 그들이 살인적인 비정규직 대량해고와 MB독재의 검은 그림자가 너울거리는 오늘의 풍경을 본다면 뭐라 말할까요? 아니, 박정희.전두환의 시대로 회귀한 듯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들에게 뭐라 말해야 할까요?

기막히고 처참한 심정으로 잡풀 우거진 구묘역을 한참 둘러 보았습니다. 문득 2001년 태평로 조선일보 본사 앞에서 진행됐던 조선일보반대 일인시위 현장에서 만났던 선영이 어머니(오영자 여사)가 생각나더군요.

 

그때 들었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목숨보다 귀한 자식을 가슴에 묻고 나니, 그 이후부터 집에 가만 누워 있을 수가 없더랍니다. 숨을 쉴 수가 없어서. 거리에 나와서 부대껴야만 겨우 숨통이 트인다나요?

그를 떠올리면서 결국 절실함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과연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가?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내 문제처럼 소중히 다루고 있는가? etc...

구묘역에 누워있는 이들에게 민주주의와 인권은 멀리 있는 무엇이 아니었을 겁니다. 바로 옆에서 피흘리며 쓰러져가는 이웃들에 대한 연대감에서 우러난 절박한 행동이었을 뿐. 5·18은 그 대동의 산물이었던 셈이지요.

망월동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MB집권 1년여만에 7080으로 되돌아 간 대책없는 시대상황이 그렇고, 그 앞에서 부글부글 속만 끓이고 있는 무력한 소시민의 초상이 또한 못내 부끄러워서...


태그:#5·18 구묘역, #MB독재 , #민주주의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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