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함세웅)가 지난 3월(78호) 소식지 <희망세상>에 김주열(金朱烈, 1943~1960) 열사에 대한 글을 실었다가 4개월만에 '정정보도문'을 냈다. 사업회는 <희망세상> 7월호(82호) 13쪽 전면에 걸쳐 정정보도문을 실었다.

사업회는 "<희망세상> 78호 연재물 '다시 보는 역사의 현장-마산 3․15의거 현장을 찾아서' 제하에 김주열 열사와 관련된 '무학초등학교 옆 이모할머니 댁에서 시위를 구경하러 나왔다가 변을 당했던 것이다'(11쪽) 기사가 실렸다"면서 "이 기사에 대하여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의 문제제기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확인을 거쳐 정정 보도한다"고 밝혔다. 정정보도문은 다음과 같다.

"김주열은 형 광열(19세, 당해 고교졸업)과 함께 시위대에서 경찰과 대치하여 투석전을 벌이는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피격되어 현장에서 산화했다."

그러면서 사업회는 참고 문헌도 같이 제시했다. 1961년 9월 30일 혁명재판소 심판부 1부 재판장 심판관(고영보)의 '마산발포사건 재판기록'에 보면 "시위 중이던 군중의 일원인 김주열 눈 부위"라는 대목이 나오고, 민주화기념사업회에서 2003년에 펴낸 <김주열>에 보면 "김주열의 눈에 박힌 최루탄의 피격부위와 파입상태"라는 대목이 나온다.

홍중조 선생이 엮은 <3.15의거>(1992년)에 보면 김주열 열사의 형인 광열의 증언(나는 앞장서 한참 투석전을 벌이고 있는데 마침 티셔츠바람으로 길 한복판에서 설치고 있는 동생을 목격하고 '주열아! 뒤로 물러서라!'고 외쳤다. 이 한마디가 동생과의 마지막 작별 인사일 줄이야!)이 기록되어 있다.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권찬주)가 1960년 5월 8일 쓴 "마산시민들과 전국의 어머니들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에 보면 "그 당시 김주열의 형 광열이(19세)가 (동생과 함께 데모에 적극 가담한 사실을) 빨갱이로 모는 바람에(행방불명 당시에는) 말을 못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사진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과 마산 중앙부두 앞 바다.
 '4·11민주항쟁 49주년 김주열 열사 추모 기념식'이 11일 오전 마산 중앙부두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 앞에서 열렸다. 사진은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표지석과 마산 중앙부두 앞 바다.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김주열 열사 오해·왜곡 심해"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마산․남원)는 마산 등지에서 김주열 열사를 오해·왜곡하거나 잘못한 주장들이 공공연하게 거론되었다고 보고, 바로잡기에 나섰다. 이 단체는 지난 4월 11일 마산에서 '4·11민주항쟁 49주년 기념식'과 학술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소식지에 실렸던 글에 대해, "그동안 김주열을 끊임없이 폄하해온 사람들이 박수로 환호할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마산에는 3.15의거와 관련해 3.15의거기념사업회 등 5개가 있는데, 다른 단체들이 잘못된 보도에 대해 바로 잡으려고 나서지 않자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가 나섰던 것이다.

"정정보도문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소식지 <희망세상> 7월호 표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소식지 <희망세상> 7월호 표지.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이번 정정보도문에 대해,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대표인 백남해 신부는 "먼저 정정보도문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면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보수수구언론들의 관행에 비해 우리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에 대해 과연 민주화기념사업회는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가 제자리를 꿋꿋이 지켜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영만 전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대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왜 이런 기사가 민주화기념사업회에 실렸다고 보는지?
"최근 마산에서 김주열 열사 폄훼하는 수준이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도를 넘었다. 그냥 '데모 구경하다 죽었다'에서 '파자마 바람에 구경하다 죽었다'는 이야기가 마치 역사의 진실인양 퍼져나가고 있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에 이런 글까지 실리게 되어 우리는 너무 놀라고 당황했다. 이는 마산 3.15의거 관련 기획기사를 취재하러온 기자가 마산의 이런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고 또한 자신의 미성숙한 주관적 역사의식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그런 폄하 발언을 직접 들어 본 일이 있는가?
"물론이다. 최근엔 마산의 보수적인 여론형성층에서 노골적으로 폄훼한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올해 4.11행사(김주열 시신인양일, 4월 혁명 촉발일)에 해마다 축사와 연대사를 하던 마산시장과 3.15관련단체들이 참가하지 않았다."

- 3.15기념사업회에 대해서는?
"그때 김주열의 시신을 목도한 시민들이 아직 다수 살아있고 당시 기자들이 취재한 사진과 여러 증거물이 있음에도 이런 황당무계한 소문이 마산시민들에게 먹혀 들어가는 것은 마산의 수구보수적인 정치성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일을 자기 일로 받아 안아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야 할 의무가 있는 3.15기념사업회가 마치 남의 일처럼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다. 바로 자신들을 취재하고 간 기사에서 이런 황당한 글이 실렸다면 우리보다 먼저 3.15기념사업회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수정,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나서야 하는 것이 도리이고 의무이다."

- 마산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당시 김주열은 국민의 아들이었고 마산시민들에게는 더 없는 은인이요 자랑이었다. 지금도 전국에서는 마산 3.15는 몰라도 김주열 열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60년 3.15 이후 열사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마산시민들은 모구 빨갱이요, 폭도로 몰려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런 마산시민들을 단숨에 민주화투쟁의 영웅으로 만들었고 마산을 민주성지로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김주열이 했기 때문이다. 일부 마산시민들이 지금 김주열에게 하는 짓은 마산을 배신의 도시라는 오명을 남기게 될 것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소식지 <희망세상> 7월호에 실린 정정보도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소식지 <희망세상> 7월호에 실린 정정보도문.
ⓒ 윤성효

관련사진보기



태그:#김주열, #3.15의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