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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녀의 여러 사유의 편린들이 드러나 있는 여러 점의 드로잉이 걸린 제1전시실을 지나 좀 더 아담한 제2전시실로 들어섰습니다.

 

버티컬 블라인더가 바깥 빛을 차단하고 백색의 공간을 만든 그 방의 가운데 한 점의 조각이 놓여있었습니다.

 

좀 거칠긴 하지만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이 분명했습니다.

 

 

국보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머리에는 소박한 삼면관(三面冠)을 쓰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우리나라 불상 조각 가운데 최우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국내 최대의 금동제 반가상입니다. 살며시 감은 눈뿐만 아니라 고개와 등을 살짝 숙인 자태로 오른 팔이 뺨을 받치고 있는 이 조각은 그 심오한 사유의 세계를 유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반가부좌의 자세로 사색에 잠긴 이 모습은 우리의 민족의 정신세계를 상징합니다.

 

이 반가사유상은 이 모습 그대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국보 제1호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옛 수도인 교토의 고찰인 광륭사에 안치되어 있는 목조 반가사유상인 광륭사상(廣隆寺像)이 그것입니다.

 

이처럼 한·일 양국의 정신적 사유체계를 대변하고 있는 이 반가사유상 앞으로 한 발을 다가갔습니다.

 

 

순간, 경악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 사유상이 놓인 아크릴 큐브 속에는 수많은 쥐들이 이 자유상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희고 검은 쥐들은 쉼 없이 이 사유상을 오르내리며 눈을 갉고 뇌를 파고, 가슴을 뜯었습니다. 이미 군데군데 구멍이 난 사유상은 걸레보다 더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가라앉히고 한 발 더 다가가 자세히 살폈습니다. 쥐가 갉아먹어 구멍난 반가상의 사이로 철제프레임이 보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프레임을 감싸고 있는 반가상의 피부는 쇠고기였습니다. 

 

 

그 쇠고기는 나중에 작가의 설명을 통해 미국산 홍두깨살임을 알았습니다. 쇠고기 중에서 가장 싼 부위에 들어가는 다리 근육의 일부인 홍두깨살을 이 설치조각의 피부로 사용했지만 30만 원치의 쇠고기가 소요되었습니다. 쥐는 수입된 애완용 11마리이며 그중의 두 마리는 이 맛난 쇠고기를 포식하면서 임신까지 했습니다. 실험용 쥐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너무 비쌌습니다.

 

이 11마리의 쥐는 잠시도 쉼 없이 미륵의 전신을 오르내리며 그 예리한 이빨로 이 반가상을 구멍 내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는 앙상한 철 프레임만 남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지금까지 대한 어떤 작품도 저를 이처럼 공포스럽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인간 얼굴의 피부를 벗기고 인간의 본모습을 푸줏간의 고기 덩어리로 표현하는 한효석 작가의 작품은 차라리 부드러움이었습니다. 전시장에 개를 묶어두고 혀가 닿지 않은 바로 앞에 고깃덩어리를 두고 개를 굶어죽게 한 비정한 죽음의 작가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제가 직접 본 작품은 아닙니다.

 

이 시대 물질의 허영을 쫒아, 권력의 단맛에 현혹되어 내팽개친 우리의 정신은 이처럼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쥐로 상징되는 무수한 이권의 하이에나(hyena)들에 의해 뜯기고 찍기고 있는 것입니다. 야금야금 의식을 갉아먹힌 우리는 영혼까지 잃게 될 것이 자명합니다. 훗날 뇌는 소멸되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자아상을 마주하는 이 순간이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영혼이 빠진 이 시대의 문화와 문명이라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이 쥐에 뜯기는 반가사유상을 통해 정신을 잃은 이 시대를 일갈하고 있는 작가는 김성래입니다.

 

 

그녀는 10년 전에 등록금이 들지 않은 곳을 찾아 체코로 갔고 프라하 국립예술 아카데미(AVU)에서 모뉴멘트 전공으로 석사를 마쳤습니다. 우리나라보다도 더 가난한 동구의 이 나라는 될 성싶은 작가에게 단 한 푼의 등록금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외국 유학생을 뽑는 해도 있고 뽑지 않는 해도 있습니다. 인터뷰를 바치고 합격증을 받고도 취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난했지만 마음으로 충분히 풍요로웠던 그 프라하에서의 7년 생활을 마치고 2006년에 귀국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체코에서의 치열함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3년 만에 5회의 개인전을 갖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녀의 또 다른 설치조각인 '광우병시대의 사랑' 또한 발길을 놓지 않습니다.

 

폼페이(Pompeii)는 상하수도까지 갖추어진 첨단도시로 풍요 속에 환락이 넘실대던 도시였습니다. 제정로마 초기에는 로마 귀족들의 피서 및 피한의 별장이 즐비한 곳으로 세계 최대의 영화를 누렸던 도시였지요. 79년 8월 베수비오(Vesuvius) 화산의 폭발은 이 바둑판같은 계획도시의 우아함과 그 속의 환락과 음란함을 한순간에 화산재로 묻어버렸습니다. 15세기까지 잊힌 도시였던 그 폼페이가 16세기 말부터 시작된 발굴로 그 영화와 비극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갑자기 불덩이에 덮인 아비규환의 모습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박제한 타임캡슐이 되었습니다. 아기를 감싸 안은 어머니, 보석을 움켜쥔 부자, 성교의 체위를 보여주는 벽화뿐만 아니라 남녀의 성교하던 그 모습이 그대로 화석처럼 발굴되었습니다.

 

김 작가는 이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시멘트로 재현했습니다. 의식이 실종된 쾌락의 종말을 보았던 것이지요. 해면상뇌증으로 미친 소처럼 행동하다가 죽어가는 광우병, 이것은 영화가 극에 달했던 한 도시의 종말처럼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도덕과 사유를 잃고 있다고 판단한 우리의 동시대에 대한 작가의 불길한 예감에 대한 경고인 듯싶습니다.

 

 

관람자들이 지나치기 쉬운 구석에 세워진 작은 모뮤멘트가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라디오로 듣던 날, 그녀는 하던 작업을 중단하고 이 작은 비석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아무 정신도 가지지 않은 이 시대'를 발버둥치며 살다간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그분이 살던 고향에도 가지 못하고 서울의 분향소도 찾지 못했던 김 작가 나름의 조문이었습니다. 아니, 전직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하는 막장 세상에 대한 외로운 외침이었습니다.

 

 

그녀와 밤늦도록 술을 마셨습니다. 제게는 불 꺼지지 않는 욕망의 도시라고 여겨지는 라스베가스을 닮은 듯한 성동사거리의 한 포장마차에서 그녀는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연거푸 소주를 쏟았고, 담배를 물었습니다. 소주가 그녀의 위를 채우고 넘쳐 그녀의 청바지를 적셨지만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약손가락과 새끼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담배는 재가 그녀의 살에 닿을 만큼 타 들어갔습니다.

 

새벽이 가까워진 시각, 타오의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타오는 냉장고를 열고 캔 옥수수를 내왔습니다. 김성래 작가는 마요네즈나 치즈로 버무리는 대신 옥수수 알맹이 위에 고춧가루를 뿌렸습니다. 테이블에도 함께 뿌려졌습니다. 그녀는 테이블위의 고춧가루를 양손으로 쓸어 모아 옥수수 그릇에 부었습니다. 함께 했던 블랙라이트로 작업하는 나인주  작가는 그녀의 행위에 손사래를 치며 말렸습니다. 김성래 작가가 말했습니다. "고춧가루를 뿌리면 옥수수가 매워요."

 

 

그녀의 흔들림에 저의 마음도 함께 흔들렸습니다. 그녀가 그 밤에 보여준 야릇한 흔들림의 행위는 '정신을 잃은 이 시대'의 증후(證候) 같았습니다. 그녀는 시대가 앓고 있는 병의 사회적 예후(社會的 豫後)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새벽이슬이 물방울을 만들만큼 이슥해진 시각에 술자리를 작파하고 함께 하늘틈의 불규칙한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저는 취기로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잡았지만, 그녀가 예단하고 있는 이 사회의 흔들림은 누가 손을 내밀어 잡아줄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의 사상을 도난당하고 있는 이승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전시장 한 벽에는 일군의 부조가 장식하고 있습니다. '함께하는 아크로바틱', '고양이가 되고 싶어', '닭이 된 천사', '고향을 지다'가 그것입니다. 이 작은 조각들의 가운데 여성의 국부를 꽃으로 조형한 '나는 꽃이다'가 걸렸습니다.

 

저는 이것을 통해 바늘구멍같이 열린 희망을 봅니다. 그 바늘구멍 속으로 들어오는 가는 한 줄기의 빛이 구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성의 새로운 생산을 통해 이 세상은 새롭게 구원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꽃이 만개한 초원의 평화처럼……. '어쩌면' 말입니다. 작금(昨今), 쥐들이 그 모습을 갉아도, 초연하게 도솔천에서 그 모습을 내려 보시다가 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후에 세상에 나타나셔서 중생을 구제하기로 예정된 미륵보살이 오시면 말입니다. 혹(或)…….

 

 

결코 누구도 돈과 바꾸어 가지 않을 작품을 고집하고 있는 김성래 작가는 돈과 명예에 연연하는 대신 시대를 일깨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함께 작품을 감상했던 박돈서교수님은 전시장을 나서면서 혼잣말로 말했습니다.

 

"숙연하다!"

 

 

그녀의 다섯 번째 개인전인 '광우병 시대의 사랑'은 헤이리의 공갤러리에서 7월 25일까지 계속 됩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과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1.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김성래, #광우병시대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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