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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이 죽었대애애애!!"
6월 25일 오후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이미 알고 있어. 포털에 다 떴잖아."
나의 시큰둥한 반응에 남자친구는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냐는 거였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너무 아깝다."
유명인사의 돌연한 죽음에 남자친구가 단순히 놀란 것일 뿐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에 진심으로 쇼크를 받은 듯했다. 짧은 통화였지만 수화기 저편에서는 슬픔과 아쉬움이 역력히 느껴졌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평소에 마이클 잭슨에 관심도 없었고, 그의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팝의 황제'라는 것, 그리고 지금은 성형수술 후유증과 엄청난 빚, 아동 성추행 스캔들과 같은 가십거리로만 언론에 알려지곤 하는 '흘러간 옛스타'라는 것 정도였다.

그러니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는 소식에 좀 놀라기는 했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밖에... 나는 오히려 남자친구에게 되물었다. "너 마이클 잭슨 팬이었어?"

"슬프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능력이 너무 아깝다"

남자친구는 어린 시절 한때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 심취한 적은 있었지만, 그의 열렬한 팬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특히 최근에는 스캔들 이외의 소식은 듣기도 힘들어 거의 잊고 지내다시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잭슨의 돌연한 죽음을 접하자,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 죽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단다. 이를 계기로 '마이클 잭슨'이라는 가수가 그의 인생에서 지닌 특별한 의미를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방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마이클 잭슨 음반을 찾아서 다시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마이클 잭슨에 관한 기사와 거기에 달리는 댓글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있다. 또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방문해 과거 마이클 잭슨의 영상을 보기도 한다.

남자친구는 요즘 마이클 잭슨의 음악를 다시 듣고 있다.
 남자친구는 요즘 마이클 잭슨의 음악를 다시 듣고 있다.
ⓒ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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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특별한 의미"

너무 궁금했다. 마이클 잭슨의 열렬한 팬도 아니면서 '인생'과 '의미'라는 단어를 들먹이다니! 그리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의 죽음이 그렇게도 안타깝다는 것인지!

나는 며칠 후 다시 만난 남자친구와 함께 마이클 잭슨에 대한 얘기를 나눠 보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 마이클 잭슨을 언제 처음 알게 되었나?
"초등학교 6학년 때 누나가 중학생이었다. 누나가 마이클 잭슨의 팬이었기 때문에 집에 그의 앨범이 많았다. 이때는 마이클 잭슨이 성추행에 휘말리기 전, 얼굴이 완전히 하얘졌을 때다. 그러니까 전성기라기보다는 이미지가 추락하기 직전이라고 할까. 누나가 사온 앨범을 듣기 시작했는데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땐 CD가 없고 테이프였으니까 돌려서 다시 듣고, 돌려서 다시 듣고를 계속했다. 나중엔 테이프가 늘어나기도 했던 것 같다."

- 스물일곱이면, 과거의 한때 마이클 잭슨 음악을 즐겼을 만한 나이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 우리보다는 열살 정도 나이가 많아야 소위 '마이클 잭슨 세대'가 아닐까. 전성기 때 나는 유치원생이었으니까. 내 주변에도 마이클 잭슨을 알거나 좋아하는 친구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음악 쪽에 관심이 아주 많았던 한 명 정도가 그의 팬이었다. 나는 누나의 영향이 컸다. 누나 말을 잘 듣는 편이었는데, 누나가 열광하니까 덩달아서 그의 음악을 듣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을 좋아하는데 세대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 잭슨은 젊은이들뿐만이 할아버지들도 좋아하는 가수다. 물론 미국 할아버지들이겠지만..."

- 마이클 잭슨과 관련한 자료 수집도 했나? 가령 그에 관한 기사나 브로마이드 같은...
"그런 적은 없었다. 그 당시에 집에서 타임지를 봤는데, 맨 뒤편에 연예인 가십거리가 나왔다. 가끔씩 마이클 잭슨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거 봐, 이거 봐' 하면서 반가워했었다. 언론을 비판적으로 볼 줄은 몰랐던 시절이어서, 점점 성추행 얘기가 나오는 걸 보고 '이놈 나쁜 놈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 마이클 잭슨의 죽음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
"아침에 밥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는데, 아버지가 '마이클 잭슨 죽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장난치시는 줄 알았다.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안 이후에도 믿기지가 않았다. 어딘가 붕 뜨는 느낌이라고 할까. 난 마이클 잭슨이 너무 아깝다.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인물이니까. 그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도 안타까운 것이지만, 능력이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다시는 그런 걸작들을 볼 수 없다는 게, 혹은 기약할 수 없다는 게 진심으로 안타깝다. 또 외롭게 죽었다고 하니까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잭슨은 완벽주의자, 그를 모방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그의 어떤 점이 그렇게 아까운가?
"무엇보다 음악이지... 잭슨은 완벽주의자다. 다른 가수들은 앨범에 있는 곡들 중에 한두 곡만 좋고 나머지는 별로인 경우가 많다. 잭슨 음반은 그렇지 않다. 첫곡부터 마지막곡까지 다 좋다. 만들 때 신경을 많이 쓴다는 느낌이 든다. 나중에는 4-5년에 한 번씩 정도만 앨범을 낸 것만 봐도 그렇다. 큰 공을 들여 앨범을 제작한다는 얘기다."

- 나처럼 관심 없는 사람들도 마이클 잭슨 하면 그의 독특한 춤부터 떠오른다. '문워크'라고 하는 것 같던데...
"그래, 문워크! 정말 독창적이지 않나. 그런 것들을 어떻게 생각해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이런 말을 하기는 했다. 자신의 춤은 항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아니고 빈민 지역에 사는 흑인 아이들의 춤을 보고 영감을 얻기도 한다고. 무엇보다 마이클 잭슨의 춤은 너무 멋있다. 같은 동작을 해도 백댄서들이 하면 그저 그런데 마이클 잭슨이 하면 멋있다. 절제와 강도 조절 이런 것들이 잘 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따라 해도 안 되는 거지. 잭슨을 모방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영어로 'hit the spot'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감정을 만족시키거나 가슴을 후련하게 해 준다는 말이다. 마이클 잭슨의 춤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춤을 출 때는 딱 그 부분을 건드려줘야 만족스러운 부분, 거기에서 조금만 모자라도 안 되고 지나쳐도 안 되는 핵심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 부분을 해 줘야 모양새가 좋은 춤이 된다. 마이클 잭슨은 바로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마이클 잭슨을 빼놓고 백댄서들이 하는 것만 보면 도무지 그 느낌이 안 난다."

- 마이클 잭슨의 죽음이 그리도 안타까운 이유는 결국 그의 음악과 춤이 대단하기 때문인가.
"음악과 춤만이 대단한 게 아니다. 마이클 잭슨이 처음으로 시도한 게 많다. 가령 요즘 우리가 많이 보는 뮤직비디오 형식, 스토리가 있는 뮤직비디오 형식은 그가 맨 처음 창조한 것이다. 그 전에는 그냥 기타치고 노래 부르는 것을 보여주는 정도였다. 마이클 잭슨은 특허도 냈다. 마이클 잭슨 춤에서 몸을 굽히지 않고 45도 이상 기울였다가  다시 올라오는 게 있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춤이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케이블로 몸을 감아서 특수효과로 가리는 방법으로 이 장면을 연출하는데, 그걸 공연에서도 한다. 말뚝처럼 신발이 무대 바닥에 고정이 되는 원리를 활용해서 가능한 것이었는데, 그는 이 독특한 신발을 만들어서 특허까지 냈다. 보통 가수들이 이런 걸 하나? 마이클 잭슨을 가수라고만 부를 수는 없다. 창조가, 혁신가, 예술가다. 그러면서도 상업성과 대중성을 놓치지 않는 철저한 비즈니스맨이다."

"마이클 잭슨은 혁신가, 덕분에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혔다"

- 마이클 잭슨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내가 음악을 듣기 시작하도록 해준 관문과도 같다. 마이클 잭슨이 나를 음악의 세계로 인도한 거지. 그의 음악을 들은 이후로 락도 듣고 재즈도 듣게 되었다. 잭슨 덕분에 세상을 보는 안목도 많이 바뀌었다. 워낙 스케일이 크니까... 뭐랄까, 기준이 높아졌다고 할까.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느낌을 주더라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 욕심이 많아진 것 같다. 또 혁신이라는 것은 보통 회사라든가, 기업에서만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혁신은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 것도 마이클 잭슨이다. 자기가 사랑하는 분야가 있으면 그 분야 있어서 뭐든지 창조를 할 수 있다는 생각. 하지만 한편으로는 잭슨이 성공했다고는 하나 개인적인 삶은 불행했다. 반쪽짜리 성공이라고들 하지. 때문에 성공의 기준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다."

- 마이클 잭슨의 불행한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언론의 희생자라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잭슨이 성형수술을 많이 했고, 그리고 여기서 한층 더 비약을 해서 자신이 흑인인 것을 싫어했다고 말했다. 언론에서 그렇게 얘기를 했고, 소문이 그랬다. 하지만 잭슨이 그렇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는 자신은 백반증을 앓고 있다고 말하면서, (질병은) 자기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까 힘들다고 한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것에 대한 소문이 많은데, 나는 얼굴이 하얘지는 성형수술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고, '언론이 계속 거짓말을 하면 사람들이 믿기 시작한다. 나는 어떤 사람을 실제로 대면하지 않는 이상 절대로 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잭슨의 죽음 앞에서 허전함을 감출 수 없는 이유

나와의 인터뷰에서 남자친구는 마이클 잭슨의 '혁신'과 '창조'를 유독 힘주어 말했다. 그는 마이클 잭슨의 음악성이나 춤 자체보다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했던 잭슨의 혁신가로서의 면모에 반한 듯했다. 마이클 잭슨의 완벽주의, 혁신성, 창조성, 천재성을 닮고,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마이클 잭슨의 죽음 앞에서 허전함을 감출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한국 출신의 또 한 명의 가수이자 혁신가, 박진영은 마이클 잭슨 사망 소식을 듣고 그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적어도 내 자신의 50%는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박진영뿐 아니라 수많은 네티즌들도 인터넷에 추모의 글을 올리고 있다. 그 글들을 살펴보면, 단순한 슬픔과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마치 자신의 일부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는 마이클 잭슨이 죽고 나서 처음으로 그의 공연이 담긴 동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봤다. 마이클 잭슨! 그는 정말 대단했다. 관중의 영혼을 앗아가 버릴 듯한 공연을 펼치는 이 슈퍼스타는 앞으로 누구에게도 쉽게 황제의 자리를 내어줄 수 없을 것이다.

아~ 나 역시 "마이클 잭슨이 죽다니...아깝다, 정말 너무 아깝다"를 외치게 될 줄이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blog.naver.com/wien30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마이클 잭슨, #문워크, #특허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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