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월 2일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와 충남최저임금연대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최저임금 인상하라!'고 쓴 손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6월 2일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와 충남최저임금연대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최저임금 인상하라!'고 쓴 손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 윤평호

관련사진보기


지난 6월 30일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75% 인상된 4110원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안은 7월 중 노동부 장관에 의해 고시되며 10일간의 이의 제기 기간을 거쳐 별다른 일이 없으면 8월 5일 확정되게 된다.

한편 이번 결정에서 당초 노동계는 기존보다 28.7% 인상한 5150원을, 경영계는 5.8%를 깎은 3770원을 각각 제시하는 등 큰 이견차를 보이며 이례적으로 조정기간을 넘기는 진통을 겪었다. 2010년 한국의 경제 빈약층에게 주어질 최저 시간급 4110원. 노동계와 경영계의 팽팽한 입장 대립 이외에도, 최근 여당과 청와대가 '서민' 코드로 급선회하는 분위기에서 정해진 결과라는 점에서 '4110원'이 시사하는 의미는 한층 크다.

'한 자' 자란 물가에 '한 치' 자라는 최저임금

한국은행에서 제공한 '전년 대비 물가인상률'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제공한 '최저임금 상승률'.
 한국은행에서 제공한 '전년 대비 물가인상률'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제공한 '최저임금 상승률'.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노동계는 최저임금위원회의 2.75% 인상안에 분노했다. 분노한 이유는 "물가상승률과 비교했을 때 실질적인 삭감"이라는 이유였다. 실제로 2010년 최저임금 책정에 고려해야 하는 지난 2008년 물가상승률은 4.7%. 내년 최저임금 인상분보다 1.95%포인트 높다. '근로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최소 한도의 임금'이라는 본디 취지가 무색해진 셈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6월 30일 발표한 논평에서 "최저임금 4110원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지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역시 같은 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민주노총은 2010년 적용될 법정 최저임금액이 경제위기의 고통이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의 실질적인 생계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란 점에서 크게 실망하고 분노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실제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은 4.7%보다 훨씬 크다. 현실과 수치의 이러한 괴리는 현재의 물가상승률이 가정에서 자주 소비하는 품목의 물가를 잘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실제로 지난 2월 26일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식료품의 전년 동월과 비교해 곡물과 육류는 각각 10.3%, 14.1% 올랐고 낙농품은 23.9%, 유지류는 24.1% 상승했다. 그밖에도 김밥은 21.6%, 라면(12.7%)과 삼겹살(11.6%)도 전년 동월대비 10% 넘게 상승했다.

7월 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식품 물가 상승률은 OECD국가 중 2위. 여전히 압도적이다. 지난해 5월과 비교해 11.0% 상승했다.

최저임금 4110원, 한 시간 일해 밥 한 끼 해결 안돼

굳이 직접 최저임금을 받지 않더라도 비슷한 생활필수품을 쓰는 같은 사회에 살고 있으니 시급 4110원으로 생활을 어떻게 꾸릴 수 있을지는 대충 '견적'이 나오기 마련. 대학 휴학생인 이고임(26)씨는 이번 인상안에 대해 "말도 안 되는 거 같다"며 입을 열었다.

"요즘 서울이건 경기건 그 어디에서도 4천 원으로 한 끼 식사 해결 안 되죠. 요즘 삼계탕은 한 그릇에 만 원이고 갈비탕은 8천 원이에요. 그렇게는 못 먹더라도 서민 위한 나라라면 한 시간 일해서 최소한 한 끼는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회사원 정경식(32, 가명)씨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 정씨는 "물가도 높아졌는데 이건 아닌것 같다"며 "결국 노동자 임금 낮춰서 위기 극복하자는 건데 당장 나도 임금 깎이고서 소비를 줄였다"고 말했다. "학자금 대출 이자가 한 달에 2만 원쯤 나온다"는 대학생 김익근(25, 가명)씨는 "최저임금 4110원이면 대출 이자 값는 데만 매달 편의점 아르바이트 5시간 해야 하는 셈"이라며 "밥먹고 차비 대려면 휴학말고는 답이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번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최초 5.8%를 삭감한 3770원을 제시했던 경영계측의 논리 중 하나는 "최근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올랐다"는 것. 그렇다면 '가파르게 오른'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 수준일까.

2008년 GDP기준 주요국의 최저임금(2008)과 빅맥 가격(2009. 2. 4).
 2008년 GDP기준 주요국의 최저임금(2008)과 빅맥 가격(2009. 2. 4).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위 표는 2008년도 GDP기준 세계 주요국가의 최저임금 및 해당 국가의 빅맥 햄버거 가격을 나타낸 것이다. 간단히 비교해서 한국과 GDP수준이 비슷한 호주와 네덜란드의 경우 1시간 일해서 받는 최저임금으로 햄버거 2개 이상을 살 수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현저히 구매력이 떨어지는 임금수준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벨기에의 GDP수준은 한국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구매력은 한국을 훨씬 앞서고 있다.

그나마 '최저임금'도 제대로 못 받기 일쑤

"최저임금이라도 주면 다행이에요."

성남 사는 대입수험생 김대현(20)씨의 말이다. 그는 '4시간 서서 일하면 30분 쉬게 해주는' 햄버거 체인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2달간 일하다가 너무 힘이 부쳐 비교적 일이 쉬운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옮겼다. 고등학생 등 경제, 사회적으로 기반이 취약한 사람들이 많이 구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그러나 그는 옮긴 편의점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잘 사는' 동네에 있는 본사 직영 편의점이거든요. 근데 시급을 3800원 주는거예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본사에 전화했더니 안 준 200원 준다고 해놓고 아직 연락 없어요."

고등학생 등 사회적 약자는 최저임금 제대로 받기도 쉽지 않다.
 고등학생 등 사회적 약자는 최저임금 제대로 받기도 쉽지 않다.
ⓒ 김동환

관련사진보기


그나마 직영점은 최저임금제가 잘 지켜지는 편이다. 박나리(20)씨가 일했던 인천의 한 편의점은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박씨는 올해 5월,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시간당 3300원을 받으며 하루 평균 6시간씩 일했다.

"인천 I대 부근에는 육체적으로 힘든 고깃집도 딱 4천 원 주거든요. 제가 일했던 편의점도 사장님이 원래 지방은 시간당 2천 원, 3천 원 준다고 하면서 시급을 그것밖에 안 줬어요. 황당해도 할 수 없어요. 그 일대가 다 그래요."

편의점뿐만이 아니다. PC방, 분식집 할 것 없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주는 사례는 빈번하다. "김밥○○이라는 체인점에서 두 달 일했는데 시급은 3500원이었다"는 대학생 이성희(25, 가명)씨. "사장이 6개월이 지나면 200원 올려주겠다고 선심쓰듯 말하는데 정말 어이없었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다.

노동부에서도 이런 사례를 적발하고 시정시키기 위해 최저임금 위반이 의심되는 사업장을 중심으로 실태를 점검하지만 실제 적발 사례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김대현씨나 박나리씨처럼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은 경우 노동부에 방문하거나 전자 민원을 넣으면 못 받은 돈을 돌려 받을 수 있다.

만약 최저임금 위반으로 적발될 경우 사업장은 25일간의 시정기간을 거치게 되고, 그 후에도 지시사항이 시정되지 않으면 사업주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이나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지게 된다.

서민부터 살려야 결국 경제도 살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떡볶이 가게에서 어묵을 먹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25일 서울 이문동 골목시장을 찾아 떡볶이 가게에서 어묵을 먹고 있다.
ⓒ 청와대브리핑

관련사진보기


2010년 최저임금의 큰 폭 인상을 반대한 경영계측의 가장 큰 논리는 "최저임금 상승은 곧 일자리 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프린스턴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http://blog.ohmynews.com/heaneye/286424). 최저임금을 상승시켰을 때 노동자는 더 열심히 일했으며 이는 신규채용비용 감소를 가져와 오히려 고용이 느는 효과를 낳았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예상한 올해 최저임금액 수혜 근로자 수는 약 208만 5천 명. 내년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또한 정부 발표에 따르면 현행 비정규직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100만여 명의 비정규직이 해고될 위기라고 하니 정말 그 말이 맞다면 최저임금 대상자는 곧 300만여 명에 육박하게 될 예정이다. 국민의 6.6%가 최저임금으로 살아가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이 '서민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뭘 해야 하는지 명확해지는 셈이다. 지금은 재래시장가서 어묵 사먹는 일이 중요한 시기가 아니다.

서민 경제를 살리려면 물가를 안정 시키고 물건을 살 수 있는 구매력 강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식'에 가깝다. 그리고 닫힌 지갑을 여는데 서민에게 직접 돈을 더 쥐어주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다. 부디 정부와 여당 안에도 '상식'적인 사람들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태그:#최저임금, #물가, #서민 정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