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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 잘 가세요, 이 딸년 이제야 소리 내어 불러 봅니다"

 

하얀 모시옷 한 벌과 하얀 고무신을 고운 분홍색 보자기에서 풀어 제단 앞에 바치면서 박귀덕(69) 할머니는 그렇게 목놓아 울부짖었다.

 

그녀는 10살 때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한이 맺혀서 옷 한 벌 해왔어요"라고 말하는 그녀는 59년을 삼켜 온 '아버지'를 부르며 큰 절을 올렸다.

 

"헌병이셨던 아버지는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여순사건으로 붙잡혀 1년 동안 소식을 모르다가 대전 형무소에 수용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리고 6·25전쟁이 일어났고, 당시 아버지는 미결수이셨는데 그렇게 억울하고 비참하게 돌아가셨다니..."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제59주기 10차 대전산내학살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1일 오후 대전 중구 문화동 기독교연합봉사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임영호(자유선진당, 대전 동구) 국회의원과 장준표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상임대표, 홍성수 제주4·3희생자 유족회장, 김종현 대전민간인희생자대책회의 회장, 대전산내학살희생자 대전·제주·여수순천 유족회 회원 및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위령제는 민족예술단 '출'의 진혼무로 시작됐다. 흰 국화와 흰 와이셔츠를 든 무희는 흰 삼베천을 온 몸으로 가르며 억울한 희생을 당해 구천을 떠도는 영혼을 위로했다.

 

이어 '축문'이 낭독됐다. 산내사건희생자 유족들은 축문을 통해 "억울하게 참살당한 7000여 영령들께서 정권에 의해 억울하고 원통하게 가셨는데도 저희 남아 있는 자들은 59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도록 당신들의 죽음을 해원해 드리지 못했다"며 "여기 모인 우리는 삶이 다 할 때까지 억울함과 원통함을 해원하는 그 날까지 싸우고 또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위령제는 산내사건이 일어난 지 59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규탄하고, 이러한 진상규명과 유골발굴에 소극적인 정부와 해당 자치단체에 대한 성토의 장이 됐다.

 

 

추도사에 나선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장준표 상임대표는 "누가 부모나 형제도 없이 자란 서러움을 알아주겠습니까, 누가 빨갱이라는 주홍글씨를 이마에 새기고 살아가야만 했던 모진 세월을 알아주겠습니까"라면서 "총칼을 들이댄 가해자들이 참회와 용서의 첫발을 내딛는 그날, 영령들의 뜻을 받들어 새 세상을 위해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오원록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 공동대표는 "대전 산내학살사건은 현재 국가차원으로 진실화해위원회에서의 진상규명이 진행 중에 있고, 일부 유해발굴 사업도 진행됐지만, 현 정부와 집권여당이 다방면에서의 민간인학살사건의 진실규명작업을 탄압하고 있다"며 "심지어 이번 위령제에도 해당 지역 자치단체장 한 사람마저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임영호 국회의원도 "우리는 오늘, 분단과 냉전이 불러온 불행한 역사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하고도 60년 가까이 편히 잠들지 못하고 계신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면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권력에 의해 자행된 학살의 진실을 반세기가 넘은 지금까지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야 한다, 억울하게 고통 받은 분들의 상처는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한다"면서 "그것이 바로 참혹하게 희생당한 영령들과 가혹한 삶을 견디고 계신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유족대표로 인사말에 나선 김종현 대전민간인희생자대책회의 회장은 "다시 한 번 국가와 대전시에 요구한다"면서 "대전산내학살사건은 우리 시대가 밝혀야 할 아픔이다, 정치적인 논리로 영원히 역사 속에 묻혀질 사건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해까지 활발하게 추진되어온 한국전쟁 당시의 민간인학살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이 중단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정치인들의 정쟁거리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면서 "국가와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정치권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추도사에 이어서는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두 편의 '추모시'가 낭송됐다. 대전산내유족회 전숙자씨는 '또 다시 찢어진 상처는'이라는 추모시를 통해 "이 나라의 공권력은 죄 없는 백성 인권 없이 죽여/ 유기할 때만 필요하고/ 반세기 지난 오늘 해원으로 가는 길은/ 지켜야할 법이 이다지도 많아/ 뼈아픈 상처에 또 다시 칼질을 하는가"라면서 울부짖었다.

 

또한 신순란 회원도 '눈물의 술잔'이라는 추모시를 통해 "갓난 아기였던 자식들과 / 코 흘리개 형제들/ 악몽 같은 세월들/ 바뀌고 또 바뀌어/ 흰머리 노인 되어/ 울분과 터질 듯한 가슴안고/ 여기 왔소/ 눈물 술잔 들어/ 큰 잔의 한잔 술이지만/ 가득 올리오니/ 골령골에 잠드신 아버지 형제들이시여/ 오셔서 목이라도 축이소서"라고 가신님들의 혼을 달랬다.

 

 

위령제의 마지막 순서로는 헌화와 분향의 시간으로 마련됐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유족들은 집에서 가져온 음식물을 제단에 올린 뒤 큰 절을 하기도 하고, 부모와 형제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을 하기도 했다.

 

한편, 대전산내학살사건은 1950년 7월 초부터 중순경까지 제주 4·3 및 여수순천 사건 관련자 등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대전·충남·북 일원의 보도연맹원 등 최고 7000여 명이 한국 군경에 의해 집단 학살된 사건이다.


태그:#산내학살, #민간인학살사건, #산내사건희생자위령제, #진상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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