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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입양인들이 지난 27일 토요일 경복궁 옆 한 카페에서 올해에 저작한 문학작품 낭송·발표회를 열었다. 까닭도 모르고 혈육과 조국을 떠나야 했던 이들이 어른이 돼 그 이유를 찾으려고 돌아와 생채기를 치유하려고 작은 모임을 마련한 것이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TRACK, 이하 입양인모임, 사무총장 제인 정 트렌카)의 회원 40여 명이 지난 27일 오후 4시 경복궁 옆에 있는 카페 '커피 한잔'(A Cup of Coffee)에 모여 시 등 문학작품 낭송회를 했다.

국내외 3명의 시인이 자작시 여러 편을 골라 직접 낭송했으며, 제인 정 트렌카 등 작가와 교수가 자신의 저술 작품 중 일부를 역시 낭송했다. 토요일 오후 한적한 도심에 모인 입양인과 가족들은 고향·혈육을 노래한 시와 저작품을 읽고 들으며 아픔을 나눴다.

해외 입양인 40여명이 27일 오후 4시 경복궁 옆 한 카페에서 만나 회원들의 시 등 문학작품을 낭송하는 행사를 가졌다.
 해외 입양인 40여명이 27일 오후 4시 경복궁 옆 한 카페에서 만나 회원들의 시 등 문학작품을 낭송하는 행사를 가졌다.
ⓒ 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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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준 시인이 '광우병' 관련 시를 낭송하고 있다. 조 시인은 9/11 사건 직후부터 저작활동을 시작했으며, 렙과 유사한 낭송으로 이른바 '힙합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조성준 시인이 '광우병' 관련 시를 낭송하고 있다. 조 시인은 9/11 사건 직후부터 저작활동을 시작했으며, 렙과 유사한 낭송으로 이른바 '힙합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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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분위기의 카페 '커피한잔'에 앉아 포도주 한 잔을 따라놓고 시를 감상하는 트렉 회원들.
 고즈넉한 분위기의 카페 '커피한잔'에 앉아 포도주 한 잔을 따라놓고 시를 감상하는 트렉 회원들.
ⓒ 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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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채기 치유, 진실·화해 향해

이날 모임에서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는 신순봉 시인이었다. 그는 입양인은 아니지만 이 모임의 집행위원을 하면서 고향과 귀향을 소재로 쓴 시 '방생(放生)을 소개했다. 신 시인이 먼저 원작시를 낭송했고 이어 트렉 회원 한 명이 영역본을 읽었다.

방생(放生)
신순봉 시(詩)

추석. 고향이라고 집에 돌아오니
미루나무 버드나무 쓰러져 나뒹구는 개울가처럼
온몸 구석구석이 아프다
몸은 아직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는 거다
無爲徒食. 이것도 삶이며
이것 또한 인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 행동임을…
어머니는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너도 어떻게든 남들처럼 살아야 할 게 아니냐
이 말보다 늙은 어머니가 나를 더 아프게 했지만
술 취해 쓰러져 눕던 밤마다
스스로도 얼마나 부질없는 다짐들을 되풀이했던가
고뇌는 제 몸을 달군다
불 나간 전등에서 막 빼낸 뜨거운 전구알을
얼른 방바닥에 내려놓으며
나는 이제 내가 나를 놓아 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이어 미국으로 입양됐던 제인 정 트렌카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커서는 연구해 만들어 낸 '해외 입양인' 관련 책 한 페이지를 읽고 저작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이어 테미 코 로민슨과 서길승 교수가 자신의 저작품 중 일부를 읽고 소개했다.

다음으로 일명 '힙합 시인'으로 불리는 조성준(미국 입양)씨가 자작시 4편을 낭송했다. 시카고 태생이며 현재는 뉴욕에 거주하는 그는 9/11사건을 전후해 미국의 대테러 전쟁, 한국의 이라크 파병 논란을 보며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미국에서 사회활동을 하는 한국인 모임 '노둣돌' 회원이다.

해외입양인 모임 사무총장인 제인 정 트렌카(오른쪽)와 그의 친구.
 해외입양인 모임 사무총장인 제인 정 트렌카(오른쪽)와 그의 친구.
ⓒ 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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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시를 낭송하고 있는 제니퍼 권 답스 미국 세인트올래프대학 조교수이자 시인. 원주 태생으로 어려서 미국으로 입양된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 있는 제니퍼 권 답스 미국 세인트올래프대학 조교수이자 시인. 원주 태생으로 어려서 미국으로 입양된 아픈 과거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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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 낭송회'에 모인 트렉 회원들.
 '시문학 낭송회'에 모인 트렉 회원들.
ⓒ 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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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밝혀, 아님 구경만하든지"

그는 또 지난해부터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미FTA 가부 논란과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유해성 시비를 지켜보며 쓴 시도 이날 소개했다. 그는 영어강사와 한국어학교 수학을 하며 최근 4년여간 한국에 머물고 있다.

그는 특히 '힙합 시인'으로 알려져 있어 궁금했는데, 낭송하는 걸 보니 짐작할 수 있었다. 각종 몸짓과 운율을 활용해 시를 읽는데, 얼핏 힙합음악의 랩과 유사했다. 다른 시인에 비해 그는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 게 낭송이 끝나고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광우병 관련 작품
/조성준 시(詩)

자기 나라를 선처해달라고 통사정하는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게 될 수 있다는 데 난 정말 참을 수 없다
정부가 신뢰를 잃고 정치적 고립으로 조용해지기를 바라고 있을 때도
중요한 이름을 빠뜨리고 있는 셈
미국, 한국, 미친소와 FTA 이웃사촌
...

제길, 미제국이 우리 차와 자신들의 쇠고기를 교환하는 것이며 장난이 아니라고 하는 걸 들었겠지
대북 작전권 연장 카드를 들고서
...

국민의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고 미제국의 길들여진 거짓말에 자기만족만 확산되고.
우리의 식민지 역사를 잊어버리려고 결과가 미스테리 한 것처럼 연기할 필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연기자만 미워하는 게 아니라 제로섬게임도 미워한다
신자유주의 제국주의 정책이 우리를 판에서 날려버리면 우린 어떻게 버티지
...

난 어리석은 풋내기지만 다른 길이 있다고 믿는다.
치욕을 날려버리고 진실을 알리려면, 대가를 치르는 게 유일한 방법, 그렇지 않으면 가만히 뒤로 물러나 죽는 모습이나 지켜봐

"엄마는 몸파는 직업여성이었고..."

시문학 낭송회를 마치고 트렉 진행팀이 몇 몇 특별 게스트를 소개하고 있다.
 시문학 낭송회를 마치고 트렉 진행팀이 몇 몇 특별 게스트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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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인 모임 회원들. 가장 가까이 보이는 여성이 이날 시 낭송을 했던 제니퍼 권 답스 미국 세인트올래프대학 교수 겸 시인.
 해외입양인 모임 회원들. 가장 가까이 보이는 여성이 이날 시 낭송을 했던 제니퍼 권 답스 미국 세인트올래프대학 교수 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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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인모임'이 지난 27일 시문학작품 낭송회를 연 경복궁 옆 한 카페로 들어가는 계단길.
 '해외입양인모임'이 지난 27일 시문학작품 낭송회를 연 경복궁 옆 한 카페로 들어가는 계단길.
ⓒ 최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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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입양인 출신으로 미국으로 입양돼 이제는 미네소타주 세인트올래프대학 영어과 조교수로 근무하는 제니퍼 권 답스도 이날 자신의 시 4편을 낭송했다. 그녀는 입양의 아픈 기록을 노래한 시집 '종이 전시장'(Paper Pavilion) 영문판을 내기도 했다.

그녀의 시는 '5AM', 'CrazyHorse', 'Cimarron Review', 'Cream City Review', 'Poetry NZ'에 실렸으며, 명시 선집인 '메아리 속 메아리'와 , '동방세계에서 들려오는 동시대인의 목소리'에도 선정돼 수록되기도 했다.

기록(Face Sheet)
/제니퍼 권 답스 시(詩)

공자는 대나무 회초리로 나를 때릴 수 없다. 난 너의 행운을 위해 종이학을 접고 있으며 강사로부터 한글을 배우고 있어 너에게 인사할 수 있게 됐다,

아버지 이름: 기록 없음. 어머니 이름: 기록 없음
아버지 거주지: 기록 없음. 어머니 거주지: 기록 없음

엄마, 거울을 보고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고-조각 맞추기를 해보니: 납작한 코와 뾰쪽한 턱은 엄마 닮았고; 이 우뚝한 광대뼈와 눈썹은 아빠를 닮은 듯 해.

어린이를 위한 기록: 적자 ___  서자 ___ 버려진아이-_X_
구별되는 특징: ____ 까다롭다. 우유 500cc를 마신다.

엄마는 내가 벽으로 돌진해 머리가 깨지고 눈초리가 올라갔다고 했다죠.
엄마는 몸을 파는 직업여성이었고, 내가 방해였다고 했다죠.

그녀는 목을 가누고 배변을 잘 가림. 버린 이는
아버지: _X-_ 어머니: _X_ 이곳 후견인의 태도와 속셈으로 파악

나는 엄마와 같이 매춘부가 되거나 죽지 않은 건 다행으로 보인다고. 이름을 짓지 않았고,
그래서 난 계약되지 않았다.

어린이 내보냄: 김 사장이 이 아이를 좋은 가정에 보내기를 바람.
450달러 지불, 1976년 12월.  표기/파일 번호 ___ 어린이의 태도: N/A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입양인모임'은 지난 해 8월 국내외 한국핏줄 입양인 1백여명이 '20만명 고아수출'의 진실을 밝히고 이들이 국내의 혈육과 만날 수 있게 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는데 정부가 나서도록 하자는 취지로 결성됐다. 지난 5월 10일 '입양의 날'을 하루 앞두고 서울 종로2가 보신각 앞에서 '미혼모와 입양아동의 인권'을 소재로 한 초대형 인형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저널에도 오릅니다.



태그:#해외입양인모임, #트렉, #시낭송회, #진실과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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