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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일상을 박차고 떠나기 쉽지 않아 대부분 일상에 갇혀 평생을 살아간다. 어쩌다 그 일상을 과감히 탈피하고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놀라고 부러워한다. 

특별한 사람들의 특별한 여행기 두 권이 출간됐다. 한 권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8개월 동안 세계로 봉사여행을 떠난 18세 소녀의 깜찍 발랄하고 당찬 이야기. 다른 한 권은 34일간 배낭 메고 산티아고 2000리 길을 34일간 걸었던 땀 냄새 물씬 풍기는 이야기.

일상을 떠난 여행길이지만 두 여행기의 주인공들이 바라보는 관점은 아주 다르다. 18세 소녀는 '로드스쿨링'을 위해 길을 떠났다. 70대 노부부(남편은 71세, 부인은 67세)는 차 없는 한적한 흙길을 한없이 걸어보기 위해 길을 떠났다.

학교 밖에서 삶을 배운다

<길은 학교다>
▲ 표지 <길은 학교다>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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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간혹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있다. 가출도 하고 사고도 치다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도 있고, 학교보다는 혼자 공부하는 편이 수능 성적 올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며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도 간혹 있다. 또 다른 쪽에서는 더 넓은 세상에 가서 영어를 완벽하게 공부하겠다며 학교를 그만두고 영어권 국가로 떠나는 아이들도 있다.

학교를 떠나 길바닥에서 한 움큼 외로움을 참아내며 한 움큼 자유로움을 통해 끊임없이 파도 일렁이는 상황에 맞서 대응하면서 얻었던 수많은 성취감, 그 이상으로 많았던 어려움을 내면화시키면서 세상이 어떤 곳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18세 보라의 이야기는 이제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이야기였다.

보라 또래의 대부분 아이들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정규수업, 보충수업, 자율학습에 독서실까지 가서 공부 또 공부에만 매달려 살고 있다.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점수를 받아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보라는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똑같이 차려 입은 초록 체크무늬 교복 사이에서 까만 머리 귀 밑으로 정갈하게 자른 아이들 틈에서 시험 대비용 영어 단어 외우는 데 급급했던 보라.

그러던 보라가 고모의 도움을 받아 다니던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여행을 떠났다. 가방 대신 40리터짜리 커다란 배낭을 메고, 인도, 네팔, 태국을 거쳐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를 거처 티베트, 중국까지 8개월 동안 길바닥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접하면서 삶을 배우며 로드스쿨러가 되었다.

여행이 끝난 뒤 보라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양한 로드스쿨러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양한 인연의 끈 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살고 있다. 다함께 느릿느릿 길을 걷고 있다.

황혼에 떠난 2000리 흙길 걷기

<느림과 침묵의 길 산티아고>
▲ 표지 <느림과 침묵의 길 산티아고>
ⓒ 문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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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의 배낭여행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2년 봄 전라남도 해남 땅끝 마을에서 강원도 춘천까지 25일을 걸었다. 이름하여 아내 환갑 기념 국토 종주 걷기 여행.

하지만 이 여행이 끝난 뒤 갈증처럼 밀려들던 아쉬움이 앙금처럼 남아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던 딱딱한 아스팔트 길의 메마름과 지루함, 무시무시하게 질주하는 차량들과의 피 말리는 전쟁, 이런 아쉬움은 강원도 24일 걷기 여행, 제주도 한 바퀴 돌기 걷기 여행에서도 어김없이 찾아들었다.

'흙길'이 걷고 싶었다. 메마른 아스팔트도 없고 무한 질주하는 차량도 없는 흙길을 원 없이 걸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길을 떠났다. 스페인 북쪽에 있는 산티야고 가는 길 2000리 길을 부부가 함께 걸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매일 산을 오르며 체력 훈련을 하고 각종 자료를 모아 분석하며 일정을 짜고, 주위 도움을 받아 각종 예약을 하며 준비를 한 뒤 길을 떠났다. 가족, 친지들의 걱정과 친구들의 만류를 뒤로 한 채.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음식도 다른 2000리 길을 34일간 걸으면서 노부부가 겪었던 절절한 마음이 여행기 곳곳에 묻어난다. 무섭도록 엄습해 들어오는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었던 정신적인 어려움,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

그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이 부부가 함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회상한다.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매몰차게 몰아붙이면서도 끝까지 희생적으로 보살펴준 아내의 덕이 크다고 고마워하는 남편, 가이드도 없이 두 늙은이 단 둘이서 그 먼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남편의 정확한 계획 덕분이었다고 자랑하는 아내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

18세 소녀와 70대 노부부의 여행기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한 이야기들이다. 누구나 선뜻 뛰어들거나 시도해보기 쉽지 않은 길을 떠나 몸으로 부딪치고 가슴으로 느낀 이야기들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두 여행기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당연한 일이다. 이제 막 세상을 향해 뛰어드는 발랄한 소녀와, 세상 이치를 두루두루 겪으며 살아온 황혼기의 부부가 바라보는 세상이 꼭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 다른 두 여행기를 읽다보면 "어! 저 책에서도 읽었던 이야기 같아!"란 느낌이 불쑥불쑥 솟아날 때가 있다. 여행 경험을 통해 본 빛나는 문화유산과 눈부신 자연경관보다는 함께 고생하고 더불어 함께했던 사람들의 고마움을 더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내게 그랬어. "보라, 넌 참 많은 것들을 가졌지만 그중에서 가장 빛나는 건 너의 사람들인 것 같아." "응, 맞아 고마운 사람들이, 고마운 기억들이 내겐 참 많아. 기억의 한 조각과 한 마디 말로 나는 종종 일어서곤 했지." (<길은 학교다> 중에서)

여기가 종착지점이다. 우리는 800㎞, 2000리 길을 34일 동안 걸어서 도착한 것이다. …(중략)… 왜 여기까지 그렇게 고생하며 걸어왔느냐 하는 물음은 나오지 않는다. 옆에 서 있는 아내의 어깨를 가만히 감싸 안아줄 뿐이다. 아내도 감개가 무량한 모양이다. 아무 말 없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어 온다. 끝없이 뻗어나간 붉은 흙길이 눈앞에서 흐른다.(<느림과 침묵의 길 산티아고> 중에서)

덧붙이는 글 | 길은 학교다/이보라/한겨레출판/2009.5/10,000원
느림과 침묵의 길 산티아고/이원상/문화통신/2009.5/13,000원



길은 학교다 - 열여덟 살 보라의 로드스쿨링

이보라 지음, 한겨레출판(2009)


태그:#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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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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