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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판타지 책을 읽는다

- 글 : 가와이 하야오

- 옮긴이 : 햇살과나무꾼

- 펴낸곳 : 비룡소 (2006.5.4.)

- 책값 : 13000원

 

 

 (1) 사람들이 생각하는 힘이란

 

 자전거를 함께 타는 벗이자 인터넷신문 기자인 ㄱ아저씨가 제 책을 소개하는 글을 하나 써 주었습니다. 바쁜 가운데 이런 글을 써 주니 고맙다고 느끼고 있는데, 오늘 낮 ㄱ방송국(라디오)에서 전화가 옵니다. 저녁에 전화로 '생방송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방송작가는 "아직 선생님 책은 읽지 않았는데요……" 하고 말합니다. 아마 오늘이나 어제 인터넷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오늘 저녁에 모실 손님이 없어 애먹고 있었는데 마침 잘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책 하나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정작 그 책을 읽지 않고도 어떻게 '생방송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지식 사회 '상상력'은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힘이 있지 않을까 하고 느낍니다.

 

.. 병 때문에 오랫동안 쉬어야 할 때, 환자는 자신이 손해를 많이 본다고 생각한다 … 안타깝게도 병을 앓는 봉인들은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 병은 마리안느의 성장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 병은 인간의 눈을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게 한다 … 타인의 눈을 의식할 때 우리의 정체성은 '나의' 것에서 '모두'의 것이 되고 복제 인간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 죽은 자의 눈앞에서라면 우리는 잔걱정을 하거나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훨씬 깊은 곳에서, 또는 훨씬 높은 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 어머니를 잃는 것은 어린이의 성장에 큰 타격을 주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성장하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평범한 사람은 지닐 수 없는 능력이 발달하는 것이리라 ..  (33, 35, 138∼139, 283쪽)

 

 어제 경기도 파주로 자전거 수업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5월부터 다음 7월까지 모두 아홉 차례 하는 '야외 실습 교육'으로 하는 특별강좌를 맡았고, 저는 이 자전거 수업을 할 때면(한 시 반부터 세 시 반까지 합니다), 집부터 자전거를 타고 파주로 갑니다. 그러나 새벽 두어 시부터 깨어나 하루치 글을 미리 쓰고 아기 죽과 어른 두 사람 먹을 밥을 하고 빨래를 하고 뭐를 하고 챙기다 보면 금세 열 시가 가까워지는 바람에, 구로까지는 전철을 타고 자전거로 달린다든지, 그냥 대화역까지 전철을 타고 간 다음 자전거를 타고 파주로 들어가든지 합니다. 어제는 구로부터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자전거도 찻길에서는 똑같은 '차'입니다. 법으로는 그렇습니다. 자전거 또한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끝쪽 찻길 하나를 차지하며 달릴 '권리'가 있습니다. 법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러나 찻길 하나는커녕 갓길 이십 센티미터나 내어주고자 마음을 쓰는 자동차는 그리 안 많습니다. 버스는 더욱 짓궂습니다.

 

 생각해 보면, 자전거를 지켜 주는 법을 자동차 모는 사람이 안 지킨다 하여 어느 누가 붙잡거나 딱지 붙이거나 벌금 매기는 일이란 없습니다. 민증에 빨간줄 그어지는 일 또한 없습니다. 너무 짓궂은 짓을 하느라 자전거 탄 사람이 삿대질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삿대질을 해 본들 미안해 하는 얼굴빛을 하는 자동차꾼은 아직 없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멀리 에돌아 다닙니다. 예전에는 '저 사람한테도 동무와 식구와 이웃이 있을 텐데, 자전거를 탄 사람이 동무나 식구나 이웃이었어도 이렇게 몰았을까?' 하고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는데, 아무래도 이런저런 걱정과 안타까움으로 바라볼 만한 값어치 하나 없는 분들이 아니랴 싶습니다.

 

.. 소중한 것은 자기 힘으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 요나탄의 용기는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힘 속에서 나온다. 요나탄은 인간의 운명을 존중하는 한 아무리 악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연장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 '쓸쓸함'이라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히 따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필요한 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  (38, 101, 148쪽)

 

 대안학교 아이들하고 자전거 수업을 하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 보았습니다. "친구들 가운데 집에 자가용 없는 사람 있어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면, 친구들 가운데 집에 자가용 두 대 있는 사람은?" 하니까 거의 모두 손을 듭니다. 친구들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로따로 차를 몰아야 하기 때문이라는데, 아이들을 집부터 대안학교까지 데려다 주자면 차에 태워야 할 터이나, 집부터 당신 일터까지도 언제나 자가용을 몬다는 이야기로구나 싶습니다. 친구들이 하는 말도 그렇습니다.

 

 열세 살부터 열일곱 살까지인 이 아이들이 운전면허를 딸 나이는 얼마 안 남았습니다. 열아홉이나 스무 살쯤 되면 으레 운전면허를 따려 할 테며, 운전면허를 딴 다음에는 아버지나 어머니 차를 물려받게 될 테고, 그러면 한 집에 자가용이 석 대가 되겠지요. 웬만큼 있는 분들은 한 집에 자가용 서너 대쯤은 아무렇지 않게 굴리고 있는 오늘날 우리 나라이니까요.

 

 하루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 봅니다. 우리 나라처럼 한 집에 자가용 두어 대, 또는 서너 대를 굴리는 나라는 몇이나 될까 하고. 기름 한 방울 안 나면서 이렇게 자가용을 많이 몰아대고 있는 나라는 어느 나라가 또 있을까 하고.

 

 자가용을 굴리면서 기름 걱정을 해 보기나 할는지 궁금합니다. 기름 걱정 없이 돈만 부지런히 벌어대는 사람들이 당신 이웃이 겪는 아픔과 고단함을 어느 만큼 헤아릴 가슴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물건'에 생명은 없지만 영혼은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 않을까? … 토티는 마음의 교류를 통해 아이들과 관계를 맺어 간다. 그에 비해 마치페인은 화려한 겉모습이나 옷이나 아름다움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한다. 물론 둘 다 사람을 매료시키는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마치페인이 아름다워지고 아이들이 소중히 다룰수록 마치페인은 점점 더 놀이를 싫어하고 오히려 박물관의 장식품이 되고 싶어 한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사람도 훌륭해지고 남들로부터 중요한 존재로 대접받기 시작하면, 남들과 접촉하기 싫어하여 일종의 '박물관'(때로는 '원로원'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에 들어가고 싶어 한다 ..  (48, 71∼72쪽)

 

 

 아기를 낳기 앞서부터 옆지기하고 곧잘 찾아가는 신포시장 야채치킨집에는 할아버지 술손이 많이 찾아듭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낄는지 모르지만, 우리들은 이곳에서 만나는 할아버지 술손이 퍽 살갑다고 느낍니다. 할아버지 술손은 거의 날마다 출근하듯 이곳을 찾아오시는데, 가볍게 꼭 알맞게만 술잔을 기울이고는 집으로 돌아가시고, 옆지기가 아기를 배었을 때에는 피우던 담배를 하나같이 끄고, 정 피우고 싶으면 밖으로 나가 피우시곤 했습니다.

 

 지난주에는 아직 손님이 들지 않던 때라 우리들은 느긋하게 앉아서 '우리 때문에 담배 안 태운다는 걱정을 안 해도 되겠구나' 생각하며 있는데, 삼십 분이 되지 않아 한 분 두 분 찾아드셨고, 슬슬 찾아드는 손님들은 언제나처럼 "아기가 있는데 담배 태우면 안 되지" 하고 말씀하며 아기 앞에서 그 나이에 재롱을 떨어 줍니다. 저번에는 "괜찮아요. (아기가 여기에 있는) 덕분에 우리도 담배 끊고 있는 거지. 이런 기회에 담배 안 피워도 되니 좋아요." 하면서 웃으셨는데, 조금 뒤 보니 밖에 나가서 피우시더군요.

 

 그렇지만, 이렇게 마음써 주는 할아버지가 있는 가운데, '동네사람들 으레 찾는 닭집'에 아이들하고 찾아온 손님이 바로 당신들 옆에 있는데에도 뻐끔뻐끔 담배 연기 내뿜는 젊은이나 늙은이가 있으며, 아기를 안거나 업고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바로 곁에서 담배 연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뿜는 양복쟁이들이 있습니다.

 

.. 부모와 자식, 보수와 혁신 사이에는 항상 대립이 존재한다. 우리는 둘 중 어느 쪽이 옳다고 쉽게 결정 내릴 수 없다. 자칫하면 어느 쪽이 이기느냐로 변질되어 둘 다 파멸하고 만다 … 아버지는 여태껏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아이들의 고통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어쩌면 조금만 늦었어도 바니가 미칠 지경에 이르고, 가족들은 바니를 정신병원으로 보냈을지 모른다 ..  (196, 227쪽)

 

 보리술을 사러 가끔 동네 '마트'에 가곤 합니다. 마트에 간다 한들 보리술 한 병이나 두 병을 살 뿐이고, 천 원짜리 재활용비누를 사야 할 때에나 가는데, 이렇게 사들고 셈을 치를 때 보면, 꼭 끼어드는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있습니다. 길어야 1분이 되지 않는 틈을 기다리지 못하고 새치기를 하는 분들은 혼자일 때도 있으나 아이를 데리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언제 한 번 '새치기를 해서 당신이 아끼는 시간이 몇 초인가?'를 속으로 세어 보니 20초쯤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새치기는 동네 마트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탈 때에는 언제나 이루어집니다. 다른 자리에서도 으레 일어납니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이 대학교 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지식 사회에서 일하는지, 또는 공직 사회에서 일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틀림없습니다. 모두들 '한 어머니와 아버지'한테서 태어났고 가르침을 받았다는 대목. 그리고 모두 다는 아니지만 웬만한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은 '한(또는 둘이나 서넛이나 여럿)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와 아버지' 자리에 있다는 대목.

 

 

 (2) 나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이따가 저녁에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ㄱ방송국 작가가 쪽지 하나를 보내 옵니다. 모두 일곱 가지 물음을 적었는데, "언제부터 자전거만 고집하게 됐나요?" 하는 물음과 "자전거뿐 아니라 일상 생활도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고 들었습니다" 같은 말이나 "신발도 고무신을 신으신다구요?" 같은 물음이 껄쩍지근합니다. 같은 물음이라 하여도 "언제부터 자전거를 즐겨타고 있나요?"라든지 "요즈음 사람들처럼 돈벌이에 미친 채 살지는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라든지 "운동신이 아닌 고무신을 신으면 자전거 탈 때에 발이 아프지 않나요?"처럼 물어 보면 얼마나 좋았으랴 싶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좀더 깊이 헤아리려는 눈길이요 가슴이었다면 다른 이야기를 물어 보려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를테면, "저는 아직 자전거를 못 타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자전거를 좋아하게 될까요?"라든지, "남들뿐 아니라 저 스스로도 입으로는 지구자원이 어떠하느니 걱정하는 소리를 하지만, 정작 자가용을 못 버리고 텔레비전 안 버리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든지, "농사짓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구두나 운동화를 안 신고 고무신을 신거나 맨발인데, 우리들은 땅을 잃거나 잊으며 신발이며 옷이며 살림살이며 모두 소비문명으로만 치닫고 있구나 싶은데, 이런 가운데 도시에서 즐겁고 옳게 사는 길이란 있을까요?"라든지 하면서.

 

..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은 과연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자유 의지를 지니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에밀리와 샬럿은 인형의 집을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이것은 두 소녀의 의지일까 아니면 인형들의 바람 때문일까? … 쉽게 남을 웃기는 방법을 거부했을 때 자기가 만들어 낸 존재의 개성이 발휘되는 것이다. 앞에서 인형과 작중 인물의 유사성을 이야기했지만, 문학작품 속의 작중 인물도 단순히 독자의 흥미에 얽매이기를 거부했을 때 비로소 개성이 발휘되는 법이다 ..  (63, 112쪽)

 

 저는 자전거를 즐겨타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자전거를 즐겨타기 앞서 즐겨 걸어다니는 사람입니다. 예닐곱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걷고, 인천에서 서울로 또 서울에서 인천으로 걸은 적이 있으며,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을 때에는 늘 걸어다녀야 합니다. 아기를 안고 다니자면 또 걸어야 합니다.

 

 돈이 없으니 자가용을 안 굴리지 않느냐 물으실 분이 있을 텐데,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환경책 내는 출판사를 돕는 데에 쓰거나 조그마한 환경모임 살림에 보태도록 돕는 데에 쓸 테니, 돈이 있어도 자가용을 굴릴 겨를이 없습니다.

 

 제가 동네에서 만나는 이웃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여느 때에 걷기를 즐기는 분들이 자전거를 즐깁니다. 자전거를 즐기는 분들은 즐겨 걷습니다. 그러나, 자가용을 즐기는 분들은 걷지를 않습니다. 걷지를 않으니 자전거를 안 즐깁니다. 어쩌다가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며 '뱃살 뺀다'고 할 뿐인데, 이렇게 '운동한' 다음에는 어김없이 삼겹살에 소주를 걸치거나 튀김닭에 맥주를 걸치시더군요.

 

.. 나는 스위스 취리히에 갔다가 어린이책 전문서점에 들러 좋은 책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가게 점원이 당장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표지에 《레욘예타 형제》라고 씌어 있었다. 순간 '아니, 이런 책도 있었나?' 싶었지만, 이내 그것이 《사자왕 형제의 모험》의 원제임을 떠올리고 이 책은 이미 일본에 번역되어 있어서 읽어 보았다고 말했다. 점원은 "그래요? 역시 좋은 책은 어디서나 즐겨 읽히죠." 하며 아주 기뻐했다 … 머리로 생각한 '꾸며 낸 이야기'는 진정한 의미의 판타지가 될 수 없는 것과 대조적으로, 영혼과 관련된 '현실 이야기'는 판타지와 한없이 가까운 것이 아닐까 ..  (81, 255쪽)

 

 

 우리 살림에 자가용을 굴릴 겨를은 없지만, 굳이 억지를 써서 굴리려고 한다면 굴릴 수야 있습니다. 그런데 자가용을 굴리면 우리한테 무엇이 좋을는지는 아직 하나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면서 사들이는 책을 다리 허리 등짝 팔 안 아프도록 나를 수 있어서? 아기 데리고 먼 나들이를 하기에 힘이 안 들어서?

 

 우리 식구는 빨래하는 기계를 안 쓰고 손으로 빨래를 합니다만, 기계를 쓸 줄 모르기도 하지만(저 혼자) 쓸 줄 알아도 맡기고 싶지 않아요. 내 땀과 내 품과 내 시간과 내 사랑을 담아서 빨래를 하고 싶습니다. 내 모두를 바친 빨래하기로 말끔하게 빨아 놓은 옷을 우리 식구가 함께 입고 싶습니다.

 

 팔이 떨어지건 등짝이 떨어지건 허리가 휘건, 내 마음에 담을 책이기 때문에 내 가방이 실밥이 터지도록 장만해서 용을 쓰며 집으로 나릅니다. 요즈음은 아기를 가슴에 안고 가방을 등에 메고 나릅니다. 아기를 안고 골목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고 돌아오면 온몸은 땀으로 젖습니다. 그래도, 아빠 가슴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기를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칠 때 보람은, 맨몸으로 자전거 타고 휘휘 온 동네를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난 다음 느끼는 보람하고는 견줄 수 없습니다.

 

.. 이 책의 9장에 따르면 이 중학교 학생들은 '누구나 청바지밖에 입지 않았다.' 게다가 '엉덩이에 걸쳐 입는 나팔바지에 닳아서 빛바랜'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또 '그해에 남들과 다르다는 말을 듣고 싶으면 원피스를 입고 교회에 가면 된다. 그것도 다림질한 원피스를.' 획일화된 제복도 없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보장되는 문화 속에서 복제 인간이 만들어진다. 인간은 무서운 존재다 … 중요한 것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라 논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치열하게 대결하면서 양쪽이 얼마나 서로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  (133, 146쪽)

 

 제가 고무신을 처음 신은 때는 2003년 겨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골사람은 누구나 고무신을 신으니, 저도 고무신을 신은 셈인데, 그무렵은 충주 산골자락에서 이오덕 님 글을 갈무리하면서 지냈습니다. 이오덕 님 글과 책은 산더미 같아서 이 원고뭉치와 책덩이를 갈무리하느라 바쁘니 농사일을 거든 적은 얼마 없지만, 시골에서 일하며 지낼 때에 어느 누구도 저한테 "고무신을 신네?" 하고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운동신이나 가죽신 차림으로 논이나 밭에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시골에서 도시로 나와 책방마실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면 모두들 한결같이 "고무신이네? 게다가 깜장고무신? 요새도 깜장고무신을 파나?" 하면서 눈이 휘둥그래집니다. 학교옷을 말끔히 차려입은 중고딩 아이들은 "저 봐, 고무신이야? 깜장고무신!" 하면서 키득거립니다.

 

 오일장이든 칠일장이든, 시골 저잣거리에서는 모두 고무신을 팝니다. 농사짓는 시골 읍이나 면에 있는 신집에서도 고무신을 팝니다. 도시에서도, 제가 사는 동네에서 가까운 화수시장 신집에서도 고무신을 팝니다.

 

 값싸고 질긴 고무신이 좋으면 고무신을 신습니다. 조금 비싸도 여러 해 오래 신는 샌들이 좋으면 샌들을 신습니다. 십만 원을 주고 열 해를 신는다는 가죽신이라면 이런 가죽신을 신어도 될 테지요. 다만, 저는 삼천 원(시골에서는)이나 오천 원(도시에서는)을 치르고 한 해에 한 켤레씩 신는 고무신이 돈을 가장 적게 들이는 신발이라고 느끼며, 제 발바닥도 땅을 좀더 가까이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느낍니다.

 

.. 할머니가 장황하게 늘어놓는 옛길의 장점에 비해 현대의 도로는 얼마나 밋밋하고 멋이 없는가? 현대인은 빨리 목적을 이루려는 일에만 사로잡혀 과정을 음미하는 일을 잊고 있다. 그러나 옛길을 걷는 것은 여간 힘들지 않다 … 할머니가 기억하고 있는 옛집과 가게들은 이미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 마르틴 할머니의 '고향'은 황폐해져 있었다. 그러나 파스칼레는 할머니의 마음의 고향에 한 소녀가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  (270∼273쪽)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책까지 다로 쓰고 읽고 배워야 할 만큼 '자연을 생각하며 자연스레 사는 길'을 잃거나 버렸습니다. 자연을 생각하며 자연스레 사는 길이란, 오늘날 우리들 거의 모두가 잃거나 잊은 일이지만, 조금만 거슬러 생각하면 우리 어버이 또래에, 또 어버이를 낳아 기른 어버이 또래에는 모두 '그와 같이' 살면서 아무도 '생태적으로 사는'이라 하지 않았어요. 더 쓰거나 덜 쓰거나가 아닌 알맞게 쓰며 알맞게 나누며 지냈습니다. 나한테 더 있으니 남한테 더 덜어 줍니다. 나한테 더 없으니 남한테 더 얻습니다. 있을 때 나누고 없을 때 받습니다.

 

 딱히 '느림'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굳이 '천천히'를 외치지 않아도 됩니다. 따로 '적게'를 들먹이거나 '가난하게'를 따지지 않아도 됩니다. 내 마음과 생각과 매무새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 돌아보면서 '나한테는 돈과 집과 땅과 물건이 얼마나 있으면 될까'를 짚어 나가면 됩니다.

 

 예배당에 바지런히 나간다고 믿음이 꼭 깊은 사람이 아니듯, 예배당에 안 나간다고 믿음이 꼭 없는 사람이 아니듯, 사회나 모임에 돈을 많이 바친다고 꼭 나눔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듯, 사회나 모임에 돈 한푼 바치지 못한다고 꼭 나눔을 못하는 사람이 아니듯, 우리는 우리 길을 알차게 다스리면서 지킬 슬기를 얻으며 스스로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3) 《판타지 책을 읽는다》라는 책을 읽는 가슴

 

 심리치료사이기도 하고, 일본 문화청 장관이기도 했던 '가와이 하야오'라고 하는 일본사람이 있습니다. 지난 2007년에 세상을 떠난 이이는 1928년에 태어났으니 여든 해라는 삶을 꾸려 나간 셈인데, 나라안에 이분 책이 꽤나 많이 옮겨져 있습니다. 처음에는 심리학과 철학을 다룬 책이 옮겨졌고, 한 해 두 해 갈수록 심리학책보다는 '어린이문학을 말하는 책'이 옮겨졌는데, 지난 2008년 9월에는 《울보 하야오》라는 책을 펴내며 당신이 보낸 어린 나날을 수수하게 들려주면서 따스한 아름다움을 베풀어 줍니다.

 

 뭐랄까요, '심리치료는 이렇게 한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까요. 어쩌면, 가와이 하야오 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책을 읽는다》며 《그림책의 힘》이며 《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며 《어린이 책을 읽는다》며 한결같이 심리치료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굳이 심리치료를 한다는 책이라기보다 '살아가는 모습'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로 꾸미거나 덧보태지 않으면서 나 스스로 내 삶을 돌아보도록 한달까요. 《어린이 책을 읽는다》나 《판타지 책을 읽는다》나 매한가지인데, '이런저런 책을 읽어야 좋다'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습니다. 그저 '이런저런 책을 읽다 보니 내 눈이 트였고 내 마음이 열렸으며 내 생각이 깨쳤다'고 털어놓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나라 지식인들은 '수준이 낮다'며 건드리지 않는 '애들 책이나 읽으'면서 비평을 하는 '한갓진 놀음놀이'나 할 뿐이라 여길는지 모르나, 가와이 하야오 님은, 다른 어느 철학이나 심리학이나 문학보다도 '어린이책'에서 빛을 보고 느끼고 껴안습니다. 이 빛을 남김없이 받아먹으며, 냠냠짭짭 즐겁게 받아먹은 다음, 기쁘게 이야기 한 자락을 남깁니다.

 

.. 이것은 참으로 무시무시한 일이다. 뭔가 '유익한 것', 특히 '건강에 유익한 것'이 발견되면 그것이 전체로 퍼져 클론을 제조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사람들은 '남과 똑같은'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유지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과연 진정하게 유지되는 것일까?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인 나 자신이 과연 그런 것에 만족해도 좋을까? … 현대인은 일상생활 속에서 바쁘게 움직일 '시간'은 있어도, 영혼에 관심을 보일 '여유'는 없다 … 충분한 '보호'를 뱓는 존재는 영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법이다 ..  (144, 165, 235쪽)

 

 어린이책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읽는 책입니다. 어린이책은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기에, 어린이책을 어린이한테만 읽히는 사람은 아주 잘못된 일을 하는 셈일 뿐 아니라, 당신 스스로 좋은 마음밥을 내팽개치는 셈입니다. 어린이책을 어른이 찬찬히 훑고 살피면서 아이한테 '가려서 건네지 않는다'면,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부모나 교사) 크게 잘못하는 셈입니다. 다만,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아이 스스로 읽을 책은 스스로 골라야 하는데, 어버이나 교사 된 사람이 먼저 마음이 뭉클하다고 느낀 책을 보여주면서 건넬 수 있습니다.

 

 《판타지 책을 읽는다》는 어린이책 가운데 '판타지를 다룬 책'이면서 여러모로 손꼽히는 책을 하나하나 파헤치면서, 이 책을 쓴 사람이 얼마나 깊은 마음과 생각을 담았는지 들려줍니다. 이 마음과 생각이 아이들한테 얼마나 아름답고 기쁘게 스며드는 마음과 생각으로 다시 태어나는가를 곰곰이 짚고, 이러한 마음과 생각을 아이들만 받아먹게 하기보다는 우리 어른부터 받아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 이 세상에서 쉴 새 없이 일하는 어른들의 눈에는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사실 어린이나 노인은 그저 존재하고 있는 것,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이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을 해내는 것이다 … 옛날에는 인간보다 훨씬 더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과학의 힘에 밀려나서 잊혀지고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의 영혼이 아닐까? … 교사나 부모 같은 어른들이 어린이를 시험 점수만으로 평가한다면 '모든 것이 잿빛'으로 보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어린이들의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려 하지 않고 O와 X의 수만 헤아리는 교사가 있다면, 그는 '물감의 하늘색과 진짜 하늘색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  (177, 201, 342쪽)

 

 

 그러면 '판타지 책'이란 무엇일까요. 무엇이 판타지라 할 만할까요. 글쓴이 가와이 하야오 님도 책에 밝히지만, 한자말로 해서 '상상'이나 '공상'이나 '환상'이 판타지가 아닙니다. 생각을 넓히고 넓힌다 하여 판타지라 할 수 없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을 다룬다'고 판타지문학이라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습니다.

 

 고양이가 하늘을 날든 사람이 하늘을 날든 판타지문학이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꿈나라를 헤매든 옛날이나 앞날로 날아가서 지낸다고 판타지문학이 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꿈'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곳이 있기 때문에 꾸게 되고 생각하게 되고 바라게 됩니다. 현실이 없는 판타지란 없습니다. 현실을 떠난 판타지란 있을 수 없습니다. 현실 때문에 판타지를 빚어내고, 현실이 있기에 판타지를 문학으로 일구며 나눕니다.

 

 생각날개라 하면 어울릴까 모르겠고, 생각바다라 하면 어울릴까 모르겠습니다. 생각나무나 생각숲, 생각꽃, 생각하늘, 생각나라, 생각구름, …… 또는 꿈날개, 꿈바다, 꿈나무, 꿈숲, 꿈꽃, 꿈하늘, 꿈나라, 꿈구름, ……을 떠올려 봅니다. 터무니없는 일을 바라는 내 삶이 아니라, 나 스스로 바라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길을 여는 내 삶인 판타지를 떠올려 봅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는 누구나 내 삶에 환한 등불이 될 판타지 씨앗을 하나쯤은 품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처 못 느껴서 그렇고, 우리가 제대로 안 알아채서 그러하며, 우리가 스스로 안 돌보기에 그렇습니다만, 우리 마음과 몸에 깃든 판타지는 튼튼히 자라날 밑땅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들 삶은 몹시 돈에 매이고 이름값에 얽히고 권력에 끄달리기 때문입니다. 판타지란, 그러니까 참된 판타지란 나 스스로 홀가분해지는 삶을 깨닫도록 하는 이슬떨이입니다. 나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며 아름다움을 찾고 느끼고 누리고 나누자고 하는 길동무입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승이 가르쳐 줄 수 없다. 제자 스스로 체험을 통해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 '○○장관'이나 '○○부장' 또는 '○○교수' 등은 물론 모두 가짜 이름이다. 그것들은 머지않아 덧없이 사라진다 … 그러나 오랫동안 가짜 이름이 지나치게 강한 힘을 발휘하는 바람에 진짜 이름으로 보내는 인생은 사라져 버린 것이다 … 생각해 보면, 결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려운 것은 남녀의 진정한 결합이다. 그 점을 잊고 결혼만 하면 '완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말썽이 끊이지 않고, 결국 이혼하게 되는 것이다 ..  (287, 318, 328쪽)

 

 가와이 하야오 님은 당신이 태어나 살았던 일본에서 슬기롭고 빛나는 판타지 씨앗이 자라나기를 꿈꾸었고, 고운 선물을 하나 남기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와이 하야오 님이 아니더라도 일본에서는 싱그럽고 애틋한 씨앗 하나 남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쉽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 스스로 우리 이웃과 우리 아이들한테 고운 씨앗 하나 남기려는 분보다는 큰 돈벌이를 남기려는 분이 많은데, 모쪼록 이러한 책 하나라도 곁에 두면서, 참맛을 알아보고 참멋을 갈고닦을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쁘랴 싶습니다. 판타지 문학은 사랑이며 믿음이며 나눔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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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책을 읽는다 - 심리학자가 읽어 주는 판타지 문학

가와이 하야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2006)


태그:#어린이문학, #어린이책, #판타지, #문학평론,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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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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