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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가 여는 집회를 현장에서 직접 본 것은 처음입니다. 6월 23일 오후 3시 40분경, 상이군경회 경남지부 회원들이 주최한 집회가 마산MBC 앞에서 열렸습니다. 경남도내 각 시군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온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경남지부 회원 500여 명이 마산MBC 진입로를 점거하고 약 1시간가량 시위를 한 후 자진해산하였습니다.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MBC가 좌파방송이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준비해 온 현수막과 피켓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더군요.

 

"국민기만 편파방송 MBC는 자폭하라."

"친북좌파 선동 MBC."

"좌파방송 MBC는 좌경국가 북한으로."

"국론분열 조장하는 MBC는 국민들께 사죄하라."

 

MBC를 겨냥한 주장 외에 좌파 척결을 주장하는 현수막과 피켓도 많았습니다.

 

"사회혼란 조장하는 친북좌파세력 뿌리 뽑자."

 

마산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보수단체 집회라 일부러 가까이 가서 지켜보았습니다. 6.25에 참전했던 상이용사들 모임이라 나이 드신 노인들이 많았습니다. 할머니들도 여러분이 계셨는데, 아마 상이용사 가족들인 듯하였습니다.

 

왜 하필 MBC 앞에서 집회를 하고, MBC를 규탄하는지 궁금하여 집회에 참가하신 분들에게 여쭤보았습니다.

 

"어르신 날씨도 더운데 왜 여기 오셨어요? MBC가 뭘 잘못 보도하였나요?"

"나도 몰라. 가자고 하니까 왔지..."

 

제복을 갖춰입은 또 다른 분에게 똑같이 물어보았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그늘에서 쉬고 있는 집회 참가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했지만... 누구도 MBC가 뭘 잘못했다고 구체적으로 지적하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집회참가자 사이를 다니면서 계속 질문을 했더니 어르신 한 분이 전단지를 내밀었습니다. 시민들이 많은 곳에서 열리는 집회가 아니기 때문인지 어렵게 전단지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전단지를 살펴보니 이런 내용과 주장 그리고 질문이 씌어있더군요.

 

"상이군경은 호국보훈의 달에 더욱더 좌편향방송에 치중하는 MBC의 작태에 분노하며 강력히 규탄한다."

 

"왜 MBC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이때에 안보관련 보도는 최소화하면서 전임대통령 국민장 기간에 248건이나 자살 관련 보도에 집중했는가?"

 

"핵실험과 전쟁위협으로 되돌아온 6.15 남북 선언이 뭐 그렇게 중요하다고, NLL상에서 10년 전에 북한이 도발하여 교전한 제1연평해전보다 비중있게 방영했는가?"

 

"왜 일부 사회지도층이라 자처하는 자들이 무분별하게 시국선언을 하여 국론을 분열시키는 작태를 집중 보도하여 사회불안을 조장하는가?"

 

전단지 마지막에는 국민들을 향한 호소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의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고 부강한 자유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일어납시다."

 

 

요약하자면, 이분들이 주장하는 MBC가 좌편향 방송을 하고 있다는 근거는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방송을 많이 한 것(많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6.15선언 9주년 보도를 자세히 다룬 것, 그리고 무분별한(?) 시국선언을 집중보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1시간쯤 지난 후 지부장이라는 분이 내려와서 마산MBC 사장을 면담하고 온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상이군경회 경남지부장은 마산MBC 사장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고 하면서 해산을 하자고 하더군요.

 

마산MBC 사장이 편파보도 중단 요구를 반영하기로 했다고?

 

제가 보기엔 참 우스운 이야기였습니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요구사항은 마산MBC 사장이 들어주고 말고 할 수 있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MBC 엄기영 사장한테 요구해야 할 사항을 마산MBC 사장에게 요구하고서는 요구사항을 적극 반영해주기로 하였다고 선언하니 어찌 우습지 않겠습니까?

 

참 답답한 마음으로 집회를 지켜보고 돌아왔습니다. '공안통' 검찰총장을 임명한 이명박 정부가 '공안통치'를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전국적으로 보수단체 집회를 조직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경남도내 각 시군 지회별로 버스를 대절하여 마산MBC 앞으로 몰려오는 일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닐 테니까요.

 

그뿐이 아니겠지요? 어제 집회는 청와대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일제히 '엄기영 사장 퇴진'을 주장하고 있는 것과도 무관해보이지 않았습니다. MBC에 대한 조직적인 공격이 시작되었고, 그 공격의 일환으로 지방에 있는 MBC 계열사 앞에까지 몰려가 시위를 벌이는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전국 16개 상이군경회가 동시에 'MBC 편파보도 척결 궐기 대회'를 개최하였더군요. 이분들 주장대로 MBC가 '친북 좌파 방송'이라면, 국민들로부터 대대적인 시청료 거부 운동을 해야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KBS는 무슨 방송일까요?

덧붙이는 글 | 조금 다른 기사가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공안통치, #엄기영, #MBC, #상이군경회, #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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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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