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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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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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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미래에셋자산운용 2008년 배당금을 포기했다. 펀드 손실로 인한 투자자들의 고통 분담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같은 결정에는 작년의 '구설수'가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10월 박 회장은 "지금은 100년에 한 번 있을 만한 절호의 투자기회일 수 있다"는 발언으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전국지점장회의에서 나온 말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 거센 비난이 일어났다. 코스피지수 1000선이 무너지고 펀드수익률이 폭락하는 상황이었으니 무책임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허나 박 회장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다수의 시각'이었을지 모른다. 박 회장이 이제까지 성공을 거듭한 바탕에는 '소수의 시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면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박 회장의 이력, 소수의 시각 '승승장구'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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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회장은 1958년생으로 광주에서 태어났다. 중농의 집안에서 자라나 전라도의 명문 광주일고를 거쳐 1978년 고려대에 입학했다. 흥미로운 것은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주식투자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집에서 부쳐준 생활비를 밑천으로 명동 증권가를 돌아다니며 '실전 경험'을 쌓았다고 한다.

루머나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분석에 기초하는 그의 투자는 '승률'이 높았고 그에 따라 '고객'들도 늘어났다. 1984년 서울 회현동 코리아헤럴드 빌딩에 내외증권연구소를 설립하고, 한국 자본시장에서 일하겠다는 꿈도 무르익는다.

1986년 '큰 물'로 옮긴 것도 그 때문이었다. 당시 업계 최고의 스타로 꼽히던 이승배 상무에게 '한 수'를 배우기 위해 박 회장은 동양증권 영업부에 입사한다. 여기에서 박 회장은 예의 뛰어난 성과를 거뒀고, 그가 속한 영업부는 전국 약정순위 1등이었다고 한다.

얼마 후 박 회장은 동원증권으로 일터를 옮긴다. 그곳에는 당시 동원증권 인사담당 임원이었던 김정태 전무(전 국민은행장)가 있었다. 김 전 국민은행장이 박 회장의 맏형 태성씨의 광주일고 동기동창이었다는 점도 이직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동원증권 중앙지점장으로 발탁되면서 '박현주 신화'는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그때 나이 33세, 최연소 지점장이었다. 2년 만에 중앙지점을 전국 1등으로 올려놨고, 압구정 지점장으로도 혁혁한 성과를 거둔다. 이런 '전과'를 바탕으로 1995년에는 이사로 승진한다. 역시 최연소 임원 승진 기록이었다고 한다. 

그는 2007년 자서전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를 통해 "대학 2학년 때 주식투자를 하면서, 나는 '소수의 시각'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남들처럼 군중심리에 휘말려 다수가 투자할 때 같이 투자하면, 수익보다는 손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런 투자 경험이 자연스레 비즈니스에도 이어졌다"고 회고하고 있다.

미래에셋 성장사에도 드러나는 '소수의 시각'

미래에셋 성장사를 살펴보면 역시 '소수의 시각'이 드러난다. 창업 초기, 미래에셋캐피털 시절 다음커뮤니케이션에 24억원을 투자해서 1000억원을 번 것부터 그랬다. 여기서 번 돈을 '종잣돈' 삼아 박 회장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하는데, 이때 자산운용이란 개념을 국내에 처음 도입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보인 상품이 바로 국내 최초의 뮤츄얼 펀드인 '박현주 1호'다. 다수의 투자자가 돈을 모아 거대 자금을 자본금으로 납입하는 형태로 '폐쇄형 펀드'에 속한다. 일정 기간 돈을 찾을 수 없어 고객들 반응이 신통치 않을 것이란 게 당시 업계의, '다수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투자자가 곧 주주가 되는 상품이고 따라서 투명성을 크게 높일 수 있어 이런 특성이 당시 고객들의 시대적 요구와 부합할 것이라 내다봤다. 이런 분석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판매 2시간 30분만에 500억원 한도가 모두 팔려 나가는 놀라운 성과를 거둔다.

'소수의 시각'은 부동산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외환위기 당시 현재 미래에셋그룹 본사 건물인 한국유리빌딩을 매입한 것이 대표적인 예로 회자된다. 주위에서 부동산 경기가 어렵다고 대부분 말렸지만, 지금 시세는 그때보다 3∼4배 이상 올라간 상태다. 이런 식으로 매입을 결정한 연수원도 600∼700억원 이상 자산가치가 올라갔다고 한다.

이처럼 '소수의 시각'에 기반한 경영성과는 그 외에도 다양하다. 미래에셋하면 떠오르는 적립식펀드를 통해 펀드 대중화를 이끌었고, SK생명을 인수해 투자형 보험인 변액보험을 주력상품으로 하는 보험회사로 탈바꿈시켰다.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 해외현지법인을 설립한 것 역시 미래에셋이 최초다.

박현주 2호는 '소수의 시각'에 집중된 영향력이 부른 화

여의도에 있는 미래에셋 사옥
 여의도에 있는 미래에셋 사옥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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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지점에서 '소수 시각'의 그늘을 확인할 수 있다. 미래에셋이 해외투자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 계기가 바로 2000년 '박현주 2호'의 실패였기 때문이다.

일단 박 회장은 스스로 "펀드를 청산하는 날, 폭음하고 통곡했다"고 하면서도 "이를 통해 국내 증시의 위험이 곧바로 투자자들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탈피할 필요를 느꼈다"는 말로 미래에셋의 해외진출을 앞당긴 전화위복의 계기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머니투데이> 기자들이 2007년 발간한 <박현주 미래를 창조하다> 평가는 다르다. "박 회장이 펀드매니저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직접 운용에 개입하면서 빚어진 실패"라고 그 실패 성격을 좀 더 분명히 한다. "미래에셋이 한동안 통신주와 IT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봤던 적이 있는데, 이것이 박 회장 한 사람에게 집중된 과도한 영향력 때문에 부른 화"란 설명이다.

당시 박현주 펀드를 운용했던 김영일 환화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장도 이 책에서 "통신주와 IT 주식 등 주가가 너무 올라 추격매수에 부담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서 박현주 펀드2호를 모집하려고 할 때 처음에는 펀드운용을 맡지 못하겠다고 했다"면서 "결국 최현만 사장과 박현주 회장 설득으로 펀드운용을 맡기로 했지만, 그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한 것도 사실"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래에셋의 의사결정이 '소수의 시각'을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에 기반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2000년 IT 버블 당시 라이코스 코리아와 인젠 등에 투자해서 수 백억원의 손실을 입었을 때 박 회장 결정에 반론이 표출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지적한다. 또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미래에셋투신운용의 합병 결정에 대해서도 고위 임원들이 이를 알았던 것은 며칠 전이었다"는 사례도 전하고 있다.

"한 미래에셋 계열사 사장은 90도 각도로 인사"까지

이 때문에 미래에셋 경영구조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국내에서 펀드박사 1호로 꼽히는 우재룡 동양종합금융증권 자산관리컨설팅연구소장은 일찍이 경제 일간지를 통해 "미래에셋 성장을 폄훼할 이유는 전혀 없다"면서도 "박 회장 중심의 독주 체제가 지금까지는 효과적이었지만, 글로벌 운용사로 크기 위해서는 보다 분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국회에서도 미래에셋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특히 작년 국감에서 조문환 한나라당 의원은 "펀드 광풍을 일으킨 인사이트 펀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투자기준도 없는 '묻지마' 투자와 마찬가지였다"면서 미래에셋 지배구조를 "1인 재배 체제"로 규정했다.

이와 관련하여 <한겨레21>은 "한 미래에셋 계열사 사장은 박 회장에게 90도 각도로 인사를 한다. 사장이 그렇게 하니, 다른 임원들도 엉겁결에 따라 한다. 사장이란 사람이 박 회장의 승용차 문을 열어주더라. 거의 조폭 같은 문화"라는 미래에셋 직원의 말을 통해 박 회장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전하기도 했다.

물론 미래에셋은 1인 지배체제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각 계열사로 책임과 권한이 철저하게 분산되어 있고, 각 계열사 대표들이 각각 공식적인 의사결정기구를 관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개인의 창의성이 강조되는 자산운용업 특성상 오너체제를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가 없다"는, "다양한 수준의 리스크를 감당하기에는 개인회사 체제가 낫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래에셋 그룹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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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리스크 최소화하는 경영구조 구축해야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래에셋은 이제 한국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회적 기업'이란 사실이다. 창립 12년 만에 미래에셋자산운용, 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생명 등 계열사가 8개에 이르는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최근 펀드 설정액 부문에서 1위를 탈환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 설정 총액은 60조원을 넘는다. 펀드 시장의 최강자로 꼽히는 미래에셋증권의 증권업계 시장점유율은 22%, 퇴직연금자산규모만 2000억원에 이른다. 2007년 기준으로는 미래에셋 보유 고객자산은 71조4171억원으로 전체 개인 금융자산의 5퍼센트가 넘는 규모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이란 말은 박 회장이 동원증권 중앙지점 시절 내건 지점훈이다. 이제 미래에셋은 '바람개비'가 아니라 국내 자본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태풍의 눈'이 됐다. 일각에서 박 회장을 금융계의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비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귀기울여야 하는 '당위'가 바로 여기에 있다.


태그:#박현주, #미래에셋, #펀드, #증권, #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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