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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얼공원에 세워진 이희복 용사 동상
 한얼공원에 세워진 이희복 용사 동상
ⓒ 최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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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에 불타던 형형한 눈빛. 속달동 새벽길을 달려 송악산 적진을 향해 생명을 불사른 이희복 용사여. 고향의 숲속에 아카시아향이 짙네요. 언제 오시려고 소식이없나요? 뜨거운 애국심 강산에 묻었으니 평화통일의 나무로 자라 조국강산을 영원히 지키소서. - 육탄 이희복 용사 추모시(김용하 씀)

1949년 5월 4일 송악산 전투에서 81mm 박격포탄을 안고 적 토치카로 뛰어들어 전사한 육탄 10용사 중 한분으로 군포출신인 이희복 용사 동상이 그가 전사한지 59년만에 지난 19일 그의 고향인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산 11번지에 자리한 한얼공원에 세워졌다.

故 이희복(李凞福) 용사는 군포시 속달동 출신으로 지난 1949년 5월 개성 송악산 일대 3개 고지를 탈환하는 전투에서 전우들의 희생을 줄이고, 진지를 북한군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폭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바친 육탄 10용사 중 한분이다.

군포시에 따르면 이희복 용사의 동상은 가로 6m, 세로 5m, 높이 4.6m 청동작품으로 조각가인 장을봉씨가 제작했다. 동상 건립비에는 국비 2천100만원, 시비 3천만원이 지원되고 군포시 재향군인회가 2천만원을 들여 마련했다.

군포시 관계자는 "재향군인회 군포시지회와 군포출신 이희복 용사의 영령을 추모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안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난 4월 20일 동상건립 착공에 나서 6월 19일 준공해 이날 제막식을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재향군인회 군포시지회 주관으로 진행된 이날 동상 제막식에는 노재영 시장을 비롯 유희열 재향군인회장, 박승오 기념사업회장 및 재향군인회원 등 200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노재영 시장은 인사말을 통해 "송악산전투에서 목숨바친 육탄10용사 중 이희복 용사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잘 지켜야 한다. 오늘 제막식을 시작으로 한얼공원의 아카시아 수종도 향토 수종으로 바꿔 심고 시민들이 그 뜻을 기리고 되새겨 볼수 있는 소중한 곳으로 보전하겠다"고 말했다.

 이희복 용사 동상 제막식
 이희복 용사 동상 제막식
ⓒ 군포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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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꽃다운 나이로 산화, 가족으로는 조카뿐

1949년 5월 말, 이희복 용사의 속달동 집에는 막내아들의 전사소식을 담은 전보 한 장과 하얀 보자기에 싸인 오동나무 상자가 집으로 배달된다. 당시 22세의 꽃다운 나이로 산화한 이 용사가 살았던 집에는 현재 조카 이완기씨(70·농업)가 거주하고 있다.

"1948년 겨울, 삼촌이 군대에 간 후 1년 만에 시신으로 돌아왔을 때 제를 지내줄 자식이 없어서 장조카였던 내가 상복을 입었어. 가슴이 착잡했어. 하지만 삼촌 이야기가 교과서에도 실리고, 사람들이 기억해주니 괜찮았어."

이완기씨는 "삼촌이 폭탄을 껴안고 총알이 빗발치는 산을 올라가 순국한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요. 삼촌이 전사한 지 60여 년만에 삼촌의 고향에 동상이 세워져 너무 감격스러운 일"이라며 "관심을 갖고 애써준 재향군인회와 군포시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해병대 복무중이었던 사촌동생도 사고로 잃은 이씨는 "삼촌을 기리는 동상 건립을 추진해준다고 전해들었을 때 나라가 못해준 일을 우리 고장에서 해 준다니 기쁘고 너무 고마웠다"며 "삼촌을 단지 기억만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희복 용사 약력
 이희복 용사 약력
ⓒ 최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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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복 용사는 군포 출신... 지역신문 취재로 발굴

한편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게재되고, 군인의 표상으로 추앙받는 육탄 10인의 용사 중 한 명인 故 이희복(李凞福) 용사의 고향이 군포시 속달동이던 사실은 오랫동안 간과해 오다가 지난 2005년 지역주간신문인 <군포신문>의 취재로 55년만에 발굴되면서 밝혀졌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군포시재향군인회(회장 유희열)가 지난 2008년 10월 14일 '이희복 용사 기념사업회 발기인 모임'을 가진데 이어 12월 5일 군포시청 대회의실에서 '이희복 용사 기념사업회' 창립총회를 열고 이희복 용사를 추모하는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기념사업회는 육탄 10용사 이희복 상사의 동상 건립과 더불어 매년 6월 호국정신을 강조하는 백일장을 비롯한 다양한 기념사업을 개최하는 등 본격적으로 이 용사를 기리는 기념사업에 나선다는 계획으로 군포시를 호국보훈의 모범도시를 만들겠다는 다짐이다.

1949년 5월 개성 송악산에서 산화한 육탄 10용사

"님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 이 아닌가 생각하니, 숙연한 마음 금할 수 없었습니다. 아! 육탄 10용사! 님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육군소위 서부덕, 육군상사 황금재, 육군상사 윤승원, 육군상사 김중해, 육군상사 윤옥춘, 육군상사 이희복, 육군상사 오재용, 육군상사 박창근, 육군상사 박평서, 육군상사 양용순 등 '육탄 10용사'를 기리는 글로 부사관의 상징이다.

육탄 10용사는 6.25동란 발발 1년전인 49년 5월 4일 북한에게 점령당한 개성 송악산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스스로 포탄이 돼 적진에 뛰어들어 산화한 10명의 국군을 말한다.

국군 전사에 따르면 6.25가 발발하기 이전에 전면전을 예고하는 소규모 전투가 38선 일대에서 수시로 일어났고 특히 6.25가 일어나기 1년 전인 1949년에는 그 횟수가 잦았다.

1949년 4월 남천점(南川店)에 주둔하고 있던 북한군은 인민군 1사단 제3연대 병력 1천여명을 개성 송악산 후방에 집결시켰다가 5월 3일 새벽 송악산 능선을 따라 기습 남침, 38선 남방 일대의 고지를 순식간에 점령했다.

한국군은 빼앗긴 송악산 고지 재탈환을 수십차례 시도했으나 피해만 늘어갔다. 결국 국군 제1사단 제11연대는 송악산에 버티고 있는 북한군 토치카(지하 참호) 10개소를 파괴하는 것만이 38선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 적진에 폭탄을 안고 뛰어들 용사를 모집했다.

이에 서부덕 이등상사를 공격대장으로 9명의 군인들이 박격포탄과 폭약을 안고 스스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앞서 낮 12시경 중화기소대 분대장 박창근 하사가 단신으로 수류탄 7개를 들고 돌진하다 전사해 9용사에 박하사를 합해 '육탄 10용사'라 부르고 있다.

육군은 장렬히 산화한 서부덕 이등상사 등 10명의 용사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01년 전투부대 중,상급 모범 부사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육탄 10용사상'을 제정해 참모총장 상장과 기념패 전달하며 희생정신을 추모하고 호국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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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알권리 알릴권리 운동을 펼치는 안양지역시민연대에서 활동하며 군포.안양.의왕.과천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발로 찾아다니며 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