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으로 지구는 병들어 가고...
▲ 바다 오염 으로 지구는 병들어 가고...
ⓒ 송유미

관련사진보기


                                           
                                                      <1>

벌써 일주일째나 빈 그물만 올라왔다. 아무리 남포 연안의 어군들의 씨가 말랐고, 물때가 좋지 않다지만, 이럴 수가 있는가 싶다. 밤낮  없이 그물을 끌지만, 어창에는 돔과 뱅어 서른 상자, 아리카와 쥐치 따위가 오십 상자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도 수철은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점점 바다에 어군이 없는 것이, 남포 하천에서 흘러나오는 하수구 오염 때문인 거 같았다. 인간들 사는 게 어쩔 수 없는 쓰레기 만들기지만, 바다의 오염은 생각지 않고 마구 갖다 버린 폐기물과 인간이 생산해 내는 오염이 아무래도 언젠가 남포의 바다를 문 닫게 할 것 같았다.

도대체 이런 식이라면 어부들의 월급과 기름 값, 어구재료비와 주부식 값을 제외하면, 이익금은 고사하고 막대한 손해를 볼 판이다. 남포 연안은 이제 더 이상 희망이 없다…….새삼 옛날이 그리웠다. 20년 전의 남포바다. 그 눈부시게 하얀 모래사장은 간 곳이 없는 것이다. 포구의 해안을 둘러만 봐도 오염은 심각하다. 그 시절은 사람 구하기 힘들어 고기를 못 잡았지, 어군이 없어서 고민한 적은 없었다. 어군들이 대체 어디로 이동해 갔단 말인가. 이제 어부들의 얼굴을 대하기도 민망스럽다.

어군이 없는 것이 누구의 죄도 아니지만, 어획량이 없으면 무능한 선장이 되고 어부들은 모든 원망을 선장에게 퍼 붓는다. 어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욕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그는 브리지의 키에 팔을 턱 걸치고 갑판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시나브로 피어나는 담배 연기는 허공에서 잘게 흩어졌다. 벌써 한 시간째 일손을 놓고 있는 그의 속은 마치 연탄불 위에 올려놓은 대합조개처럼 타들어 갔다. 갑판에는 손 씨가 너부러져 있는 그물을 느릿느릿 챙기면서도 담배를 입에 물고 틈틈이 바다에 시선을 놓고 있었다. 전 같으면 당장 담뱃불 끄라고 호통을 쳤을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 전과 또 다른 불안한 위치다. 그래도 그렇지 잘못 하다가 담뱃불이 떨어져 그물을 끊어 놓으면 어쩌려고 저러느냔 말이다……. 그렇게 누누이 일렀건만 손 씨는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었는지, 돌아서면 무슨 말이든 까먹고 마는 것이다.

그는 피가 잔뜩 묻어서 응고된 빈 고기나무상자가 나뒹구는 것을 쳐다보며, 그것들이 남포의 죽은 바다를 담아서 저승으로 띄워 보낼 관짝처럼 보였다. 며칠째 세수도 하지 않는 턱에는 수염이 보기 흉하게 자라 있었으나 면도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

걸치고 있는 검은 작업복에서 마치 생선 썩는 악취가 끔찍하게 났지만, 그는 자신의 체취에 코가 마비되어서 그걸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작업복을 빨지 않은 지가 두 달이 넘었다는 사실도 그의 기억에는 이미 없었다.

마냥 햇볕을 쨍쨍 받아서 바다의 반사파에 그을린, 둥근 호박같이 생긴 까무잡잡한 얼굴에는 웬만해서는 감정 표현이 나타나지 않지만, 핏발이 선 눈빛에 초조한 기색은 숨길 수 없었다.
잔이 넘칠 때
▲ 바다의 잔이 넘칠 때
ⓒ 송유미

관련사진보기


                                                   <2>

그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한번 씻듯이 쓸어내리고 레이더 탐지기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유유히 그물을 끌고 있는 쌍끌이 어선 한척이 눈에 환히 잡혔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가 또렷하게 보였다.

문명의 이기로 세계 저편의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작은 배도 무슨 일을 하는지 이 레이더 하나로 다 아는 세상이 된 것이다. 대체 고기를 잡는 뱃놈에게 이따위 것이 왜 필요한지 NLL(군사분계선)과 MDL(군사분계선)은 왜 필요한지, 온통 불만스러웠다.

그가 피우는 줄 담배로 브리지실 안은 너구리 잡는 듯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폭풍주의보가 내렸지만, 바다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몇 개의 먹장구름만 빈 하늘을 가로 질러 흘러갔다. 이번에는 꽁초가 된 뜨거운 담뱃불을 손가락으로 힘껏 눌러 껐다. 그런 그의 손가락에는 담배 인이 누렇게 배어 있었다.

그는 NLL(군사 분계선)을 의식하며 예망하고 있었다. 
"저 거 저거, 정말 겁도 되게 없제…….개자식……."

그의 입에는 '개 XX'란이 접착제처럼 입에 붙었다. 욕설이라도 씹지 않으면 화가 삭혀질 것 같지 않았다. 어로작업이 이토록 부진한 이유는 남포 앞바다에 고기가 없다는 사실이지만, 두 번째 원인은 바로 맹 석출 개XX 때문이다 싶었다.

여느 날처럼 오늘 아침 교신할 때 맹석출은 연안 12마일 경계선에서 1마일 정도 벗어나 그물을 끌면 그럭저럭 작업이 된다고 구렁이 담 너머 가는 소리를 하더니, 번질번질한 대머리 같이 듣기 거북한 블랙유머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거기다가 영숙이 이야기를 꺼내서 사람 허파를 뒤집어 놓았다. 영숙이란 이름은 너무 흔해서, 길을 가다 부르면 열 명 여자 중에 한 여자는 돌아보는 이름……. 그 영숙이는 온갖 항구의 뜨내기 뱃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남포 다방 레지의 이름이다. 그 영숙의 얘기를 한 번도 아니고 심심풀이로 입질했다.

일찍이 그는 맹석출이 영숙에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한번은 그 복수의 도끼질하리라는 것을 간파했다. 물장사하는 여자에게 기둥서방도 아닌 이상, 그러나 맹석출에게 한 소리를 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영숙의 흔한 이름처럼, 그녀의 몸뚱이가 서 너 개라면 모르지만 말이다.

영숙은 사실 까놓고 이야기하면 도망 간 아내에 비하면 예쁜 축에 끼지도 않는다. 그러나  티켓 다방 여자치고는 함부로 몸을 굴리는 것 같지 않고, 웃을 때마다 움푹 볼 우물이 팬 귀여운 보조개 웃음에, 그의 마음의 꽉 닫힌 문이 자신도 모르게 열린 것이다.

요즘 들어서는 상사병을 앓는지 그녀의 얼굴이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주책인가 싶었다. 된통 아내에게 당한 이후 여자라면 기피했지만 세월이 지나니, 적적하기 이를 때 없고, 홀아비 생활도 지겨운 것이다.

사실 영숙이 아니라도, 여생에 마음에 맞는 여자 하나 얻어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 그녀에 대한 연모의 감정으로 변한 것이다.

-계속-

덧붙이는 글 | 월간, '법연원'에도 송고하였음.



태그:#온난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