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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딕스의 그림으로 전쟁으로 여성들이 겪는 고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여성반신상 오토 딕스의 그림으로 전쟁으로 여성들이 겪는 고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 오토 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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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남편이 살해되고 어린 딸은 강간당했으며 잠시 후 자신도 강간을 당한 뒤 죽임당할 것을 알고 있는 여성의 표정을 혹시라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오토 딕스는  <여성반신상>에서 공포와 절망으로 파랗게 질린 채 가슴을 드러내고 서 있는 여성 반신상에서 짓밟히고 유린당한 한 인간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 그림을  모티브로 삼은  '독일, 파랗게 질린 어머니'라는 영화가 1980년 서독에서 제작되어 일본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서경식의 전쟁과 폭력을 응시한 화가를 찾아 담아낸 서양 근대미술 기행 에세이집이다.
▲ 고뇌의 원근법 서경식의 전쟁과 폭력을 응시한 화가를 찾아 담아낸 서양 근대미술 기행 에세이집이다.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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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교수의 미술 수필집 <고뇌의 원근법>에는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응시한 화가의 그림들이 생생한 언어와 함께 소개되어 있다. 서경식 교수는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유럽 전역에 걸쳐 전시되어 있는 전쟁과 폭력을 고발하는 그림과 삶의 고뇌를 생생하게 반영한 그림을 그린  작가를  찾아다니는 순례를 계속하고 있다. 그가 결코 아름답거나 화려하지 않은 그림과 사진에 매달리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 온 시대가 결코 아름답고 화려하지만은 않다는 진실을 알기 때문이다.

미술도 인간의 영위인 이상 인간들의 삶이 고뇌로 가득할 때에는 그 고뇌가 미술에 투영되어야 마땅하다. 추한 현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인간이 창작하는 미술은 추한 것이 당연하다. 조선 민족이 살아온 근대는 결코 '예쁜' 것이 아니었을 뿐더러, 현재도 우리의 삶은 예쁘지 않다. 뒤러, 그뤼네발트, 카라바조, 고야, 렘브란트, 피카소. 고흐, 이 거장들은 예쁜 작품을 그려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하지 않았다. 진실이 아무리 추하더라도 철저하게 직시해서 그리려 했다. 그것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거기에서 '추'가 '미'로 승화하는 예술적 순간이 생긴다. 그들의 힘으로 우리는 그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공유하고 있던 통념으로서의 미의식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새로운 미의식을 개척해 온 것이다.

그는 미에 대한 관점이, 인간이 인간에게 행한 잔혹한 행위들과 이권 유린, 전쟁으로 삶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신음하던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작품들을 통해 양심을 일깨우고 진실을 마주보게 하는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세 번째 미술 에세이집인 <고뇌의 원근법>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는 통일독일 미술 기행, 너의 눈을 믿어라!(오토 딕스와 그의 시대), 증언으로서의 예술( 누가 펠릭스 누스바움을 기억하는가) 3장을 통해 전쟁의 참혹상을 고발하는 역사적인 작품들을 생생하게 소개한다.

제 2부는 문을 열어젖히는 자(토마스의 불신에 관하여), 고뇌의 원근법(고흐에 관한 명상), 학살과 예술(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리사르의 천사들) 편에서 인간이 지닌 원초적 삶의 고통, 학살의 잔인한 현장을 직시하고 당당하게 대면하여 예술로 승화시킨 이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미에 관한 관점이나 미적 추구가 지니는 의미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작품을 만드는 이에게도, 작품을 평하는 이에게도,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조차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누구에게든 진실이 갖는 울림은 전달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고흐의 까마귀가 있는 보리밭에서 꽉 찬 텅 빔을 경험한다거나 눈부신 햇살만큼 화려한 노란색에서 푸른색보다 더 깊은 슬픔과 고통을 느끼는 것, 그저 바라만 보아도 작가가 느꼈을 고통이나 슬픔, 절망이 고스란히 가슴으로 감지되는 것, 바로 그것이 진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예술가가 '추'를 '미'로 승화시켜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예술적 아우라를 만들어낸 비결이 된 것이리라.

공공 공간의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과테말라에서 위험을 감수하며 작품을 통해 진실을 전달하는 다니엘 살라사르의 생각은 광장을 빼앗긴 우리에게 많은 일깨움을 준다.

공공 공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 공공 공간이 공공 공간으로 불리는 이상, 모든 시민에게 열려 모든 시민이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제게는 어떤 공간을 사용하기 위해서 허가를 얻는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 공간에 가서 그 공간을 사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게르니카, 우우슈비츠, 바비야르, 관동대지진, 남경, 제주도 4.3, 타이완 2.28. 솜미, 캄보디아, 사브라, 샤틸라, 코소보, 르완다. 제닌, 끊임없는 학살로 피 흘리며 쌓아 온 인간 역사의 추악한 현장들이다. 그  역사 현장을 고발한 이들은 기억을 간직하여 어떤 형태로든 기록으로 남긴 이들이다. 과테말라에서는 내전이라는 이름으로 36년 간 '학살'이 이어졌다고 한다.  일본 역시 36년간 조선에서 '학살'과 압제를 했다. 서경식 교수는 그들과 우리는 무엇이 다른지를 깨우쳐 주려 애쓴다. 서경식 교수는 그의 조국인 조선(그의 국적은 대한민국이지만 그에게 조국은 그저  남과 북이 합쳐진 조선일 뿐이다)에 고난과 고통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근대 미술과 민중  미술 작품이 없음을 매우 안타까워 한다.

과테말라에서는 36년간 '학살' 현장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긴 이들이 있었고, 그 기억들을 상기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공공 장소에 전시한다. 그러나  우리는  36년 압제와 학살의 현장에 대한 기억을 기록으로 담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정신대 문제처럼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우리는 직시하지도 않고 치유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기억을 일깨우는 기록이 없고 기억을 일깨우는 훈련이 없는 탓에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140인의 에술행동이 사람들의 기억을 일깨우는 소중한 기록이 될 것이다.
▲ 용산 참사 현장을 기억하는 작가들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140인의 에술행동이 사람들의 기억을 일깨우는 소중한 기록이 될 것이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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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다섯 달 전 용산에서 불타 죽은 이들조차 우리는 기억으로부터 밀어내려 하고 있다. 이제라도 그 현장을 직시하는 이라면 누구든 글로, 그림으로 영상으로 그 현장의 진실을 담아 광장 한가운데서 펼치자. 그 순간 "여기 사람이 있다! 여기 삶이 있다! 여기 진실이 있다! 와 보라! 진실의 현장을!"이라는 메아리가 사람들의 무뎌진 양심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고뇌의 원근법>은 서경식 교수의 세번째 미술 에세이로 돌베개에서 발간되었습니다.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돌베개(2009)


태그:#고뇌의 원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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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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