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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시국선언이 전국 각계각층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8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정진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전교조 회원들이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변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시국선언이 전국 각계각층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8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정진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전교조 회원들이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변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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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대 교수 124명의 시국선언으로 시작된 시국선언 릴레이는 중앙대, 서강대, 연세대를 비롯해 고려대와 이화여대 등 많은 대학들로 이어졌고 10일엔 '배운 대로 행동한다! 민주주의를 지켜내자!'란 플래카드를 앞세운 청소년들까지 시국선언 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불교계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비롯해 대한예수교장로회, 한국기독교장로회 등 개신교 목회자들도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현 정권의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이 가득 담긴 시국선언은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대학 교수 120여 명이 시국선언을 했고 일본 도쿄에서는 재일교포들도 시국선언 대열에 동참했다. 또 각 대학 총학생회의 시국선언이 줄을 잇고 있고, 박찬욱 감독 등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시국선언을 했다.

급기야 18일엔 전교조 교사 1만7천 명이 국정기조 전환과 자율형사립고 등 MB 교육정책 폐지 등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이젠 몇 명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는지 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상황이 커져버렸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잘못 던진 한 표가 민주주의에 얼마나 큰 위기를 가져오는지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각계 시국선언을 바라보고만 있던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는 전교조 교사들이 시국선언을 준비하자 곧바로 학교에 공문을 내려 보냈고, 교사들의 시국선언 참여는 '국가공무원법 제56조 성실의 의무, 제57조 복종의 의무, 제63조 품위유지의 위무, 제66조 집단행위의 금지 등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사들 서명, 언론출판집회 등 표현 자유에 해당

교과부는 교사들이 시국 선언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명령을 학교장에게 내려 보냈고, 시국선언이 현실화되자 이번에는 참가자를 파악하고 불법 사례를 수집하라는 지시를 했다. 그리곤 이번 시국선언의 내용이 근로조건과 관련이 없는 정치 상황에 대한 것이므로, 정치활동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교원노조법에도 위반된다면서 형사고발 하겠다고 나섰다.

광장 히스테리로 드러난 정권의 소통 장애는 시국선언에 대한 노이로제 반응으로 이어져 교사들에 대한 처벌과 징계 협박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협박으로는 결코 시국선언으로 표출되고 있는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다. 이미 교사들의 서명은 언론출판집회 등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이를 집단행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대법원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시국선언을 이유로 징계를 할 수도 없고, 형사처벌 할 수 없다는 점은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들은 또 다른 의도가 있다. 서울광장을 차벽으로 가로막아 국민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경찰력을 앞세워 집회 시위를 가로막았던 것에서 보는 것처럼 공권력을 앞세워 국민에게 공포감을 조성하여 이런 목소리를 협박하고 위축시키겠다는 것이다.

MB정부는 말로는 법치를 외치지만 국민 대다수가 현 정권 들어 법치가 후퇴되었다고 느낀다. 시국선언을 공권력을 앞세워 가로막아보겠다는 이 상황 또한 그들이 그토록 부정하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교사들의 시국선언에서 정부가 드러낸 태도 말고도, 이미 정부는 후퇴한 민주주의의 모습을 지금껏 많이 보여줘 왔다. 일제고사에 대한 선택권을 줬다는 이유로 10명이 넘는 교사를 파면 또는 해임했으며 일제고사 반대 서명을 해당 교육청에 낸 울산의 선생님들은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게 생겼다.

시간이 지날 수록 후퇴하고 있는 민주주의

앞서 지난해 촛불 집회에선 한 여대생이 전경들의 군홧발에 무차별적으로 머리를 짓밟혀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고 지난 5월 명동에서는 골목까지 무장한 전경들이 뛰어 들어와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을 연행해 가기도 하고 일본인 관광객을 연행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또 지난 10일 노무현 대통령 추모행사를 마친 시민들은 목과 머리를 향하여 날아드는 경찰의 방패와 쇠곤봉에 무방비로 당해야 했다. 가끔은 고등학생도, 중학생도 가리지 않고 연행되기도 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다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를 할 때에도 "군홧발에 밟히고, 방패에 목을 찍히고, 쇠곤봉에 머리를 맞을 각오"를 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는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구속되었다. 그는 천신만고 끝에 법원에서 무죄 판결 받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러나 대한민국 검찰을 비롯하여 어느 누구도 그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인터넷에 글을 쓸 때도 구속될 각오를 하고 글을 써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아니 이것도 모자라 인터넷모욕죄라는 것을 만들어 당사자 고발이 없더라도 경찰이 직접 나서서 친절하게 알아서 처벌해 주겠단다. 

2007년 1월 2명의 교사가 학생들에게 친북교육을 하였다는 혐의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고 직위해제되면서 학생들과 가족들에게서 강제로 헤어졌다. 그러나 2009년 1월 이 두 교사가 법원에서 모두 무죄를 받았다. 그런데 서울교육감 공정택은 이런 법원의 판결도 무시하고 이들을 아이들 곁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여전히 직위해제를 유지했다. 2심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자신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당선 무효형을 받았으면서 항소와 상고를 이유로 여전히 교육감직을 수행하고 있는 것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부산에서 북한 현대사를 공부하는 모임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4명의 교사들은 1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고 모두 해임되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1심 선고를 이유로 해고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교육감은 1,2심에서 모두 당선 무효의 유죄 선고를 받고도 계속 교육감직을 수행하고, 교사들은 무죄 선고를 받고도 직위해제를 당하고, 어떤 교사들은 1심 선고만으로 해고를 당하여 학교에서 쫓겨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메일도, 내부 비판도 할 수 없는 2009 대한민국

메일은 지극히 사적인 개인 생활이다. 그런데 이것도 2009년 대한민국에서는 뒤집어졌다.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 후보와 주경복 후보는 피를 말리는 접전 끝에 공정택 후보가 당선되었다. 낙선한 주경복 후보를 지원한 혐의로 전교조 교사들 23명이 기소되었는데 검찰은 무려 7년 치의 메일을 열어보았다. 이 사건뿐 아니라, 검찰은 PD수첩 광우병에 관한 수사에서도 담당 작가의 메일을 열어보고, 언론에 공개까지 했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7년치 메일을 검찰과 경찰에게 모두 보여줄 각오를 하고 메일을 써야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관련 프로를 만들었던 'PD수첩' 제작진들은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수사를 받더니 결국 5명이 기소를 당했다. YTN의 기자들은 MB의 대선특보를 지낸 사장을 반대하다가 해고를 당하고 고발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정권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으로 낙인찍힌 KBS <시사투나잇>은 프로그램 이름을 바꾸었고, YTN <돌발영상>은 한동안 제작이 중단됐다가 최근에야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기자와 PD들은 정부에 비판적인 프로 만들 때는 길거리 또는 감옥 갈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계기가 되었던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수사는 끝났지만 박연차 사건에 대한 의혹은 아직도 여전하다. 정권에 줄을 대기 위하여 제계 600위권의 지방 중소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서울 국세청에서 직접 하고, 대통령에게 독대를 하여 보고를 하였다는 의혹이 언론보도를 통하여 제기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성이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그 화살은 한상률 국세청장에게 집중되었다. 이런 국민적 의혹과 비난에 대해서 국세청의 한 직원이 국세청장을 비판하는 글을 국세청 직원들만 볼 수 있는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결국 이 직원은 파면당했고, 형사고발 당했다. 이제 공무원들은 내부 게시판에 비판적인 의견을 올리려면 고발과 파면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민주주의의 후퇴에 대한 징후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시국 선언은 이런 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최소한의 분노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 정권은 여전히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있다. 특히 이번 교사 시국선언에 대한 징계와 처벌 방침은 도를 한참 넘었다.

이런 서명 교사들에 대한 처벌 방침은 전두환 노태우 군사 정권 시절에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다. 지금까지 전교조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건에 대하여 수많은 교사들이 선언문을 발표하고, 서명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6월 광우병 정국 때도 전교조 교사 6천여명이 시국선언을 발표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시국선언을 중단시킬 유일한 길은 귀를 여는 것

교사들의 시국선언이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하여 처벌과 징계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제일 먼저 시국 선언을 하고 나선 서울대 교수들을 비롯하여 고려대, 연세대, 중앙대 등 사립대 교수들부터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교과부는 대학 교수들의 시국 선언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불법 운운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교사들의 시국선언에 이르러 공권력을 들고 나왔을까?

2005년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었을 때 그들이 느닷없이 들고 나온 구호가 "전교조에게 우리 아이 못 맡긴다"였다. 그리고 지난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궁지에 몰린 공정택이 마지막 순간에 서울 전역을 도배했던 현수막의 문구가 "전교조에 휘둘리면 우리 아이들이 망가집니다"였다.

전교조를 희생양으로 하여 이번 시국선언 국면을 타개해 보겠다는 얄팍한 정치 술수인 것이다. 마치 북의 핵개발과 미사일 국면에 편승하여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DJ의 '독재자 발언'을 연일 공격하며 반DJ 정서로 국면을 타개하려는 것과 같은 의도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런 얕은 술수에 넘어가지 않는다.

전교조 교사들이 1500명이 해직되면서 전교조를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에 1만7천 명을 다 해고시킨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시국선언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MB정부는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이제 한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열고, 감았던 눈을 떠야 한다. 이것이 시국선언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한 사람만 모르는 것 같다.


태그:#시국선언, #이명박, #전교조,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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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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