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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일주문의 멋

 
모(某) 스님이 "이 세상 사물은 내가 있어 존재한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의 사물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적은 글을 어디선가 본 것이 기억난다. 그 스님의 말씀을 곰곰히 되새겨 보면, 원효 스님의 '일체유심조 사상'과 일맥상통하다는 생각이 얼핏 든다.
 
정말 범어사에 오면 범어사는 나를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없으면 이 범어사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는 엉뚱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올 때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범어사는 나에게 이처럼 엉뚱한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 일까. 몇 달 찾지 않으면 범어사가 멀리 있는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부산의 범어사는 너무나 유명한 절이다. 너무 알려져 있어서 그 가치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그런 느낌도 드는 절이다. 범어사의 절이름에 대한 유래는, '동국여지승람'에 동래현 북쪽 20리에 있는 금정산 산마루에는 금빛을 띤 우물이 항상 가득 차 있으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샘속에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고 하여 '금샘'이라고 하였다고 전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고기와 황금우물 그리고 산 이름을 따서 금정산 범어사라고 지었다고 전한다. 
 
연등을 밝힌 숫자만큼 세상이 밝아지길...
 
6월 7일 오후 2시쯤 범어사에 도착하니 마침 '금강경 1250제자 수기 성불등'행사로 사월 초파일처럼 화려하고 곱다. 많은 불자들이 밝힌 연등 아래 적힌 이름들을 읽으며 나도 연등을 발원하고 싶은 마음이 덩달아 생겼다. 이 많은 연등을 밝힌 사람들 수만큼 이 세상이 밝아지길 합장했다.   
 
범어사의 창건주는 의상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의상스님도 범어사만큼 유명하다. 의상 스님은 통일신라 전후 전쟁에 오래 시달린 대중들의 마음을 화엄수행과 신앙으로 달래준 한국 불교사에 가장 빛나는 고승…
 
신라 흥덕왕이 왜구의 침입을 걱정하고 있을 때, 임금의 꿈에서 의상대사를 불러 금정산에 가서 화엄신종을 외우고 기도하면 왜적을 물릴 칠 수 있다고 하자, 왕이 그렇게 하여 왜적을 물리쳤다는 데서, 범어사 창건설화는 유래한다. 
 

 
범어사 대웅전 보물 제 434호
 
범어사는 창건 이후 고려와 조선 중엽에 이르기까지 그 면모를 유지해 오다가,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의 병화을 만나 모두 소실되어 10여년 동안 거의 폐허나 다름이 없었는데 선조 35년(1602년)에 관(觀) 선사가 중건하였으나 얼마 있지 않아 또 다시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다고 한다. 
 
광해군 5년(1613)에 묘전(妙全) 스님 등이 대웅전, 용화전, 관음전, 나한전, 일주문, 심검당(현 원주실)을 건립하였고, 1684년에는 해민(海敏) 화상이 비로전을, 1700년에는 명학 화상이 팔상전, 종루, 불이문, 보제루, 천왕문을 건립하였다. 1966년 2월 28일에는 대웅전 건물이 보물 제434호로 지정되었으며, 1969년에는 대웅전의 일부 목부가 교체되고 마루는 고쳐졌다. 
 

 
범어사의 멋, 그 천개의 대숲 바람소리
 
범어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불자뿐만 아닐 것이다. 범어사에 오면 꼭 듣고 가는 것이 법당 안에서 흘러나오는 스님의 염불소리도 좋지만, 나는 범어사 일주문 넘어서면 대웅전 올라가는 계단의 청대숲 사각거리는 소리가 좋다. 그리고 모두들 다 알고 있었는데 나만 너무 늦게 안 범어사 청룡암에 이안눌 동래부사가 직접 새긴 시를 손끝으로 더듬어 보는 것이다. 오랜 비 바람에 새긴 글씨를 알아볼 수 없지만, 그래도 시인의 마음은 더듬더듬 읽히는 것 같다. 
 

 
돌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
 
덕수이거사(德水李居士)덕수 사람 이 거사
내산정상인(萊山晶上人)동래 사람 혜정상인
연하일고사(烟霞一古寺)안개 속 한 옛 절에
구학양한신(丘壑兩閑身)산수 즐기는 한가한 두 사람
소석태극점극(掃石苔粘屐)바위 밟으니 신발에 이끼 푸르고
관송로숙건(觀松露塾巾)소나무 보느라 두건에 이슬 젖는다
창애백천겁(蒼崖百千劫)수만 겁 내려온 푸른 바위에
新什是傳神(신십시전신)이제 새로이 문장을 새기네
- 청룡암에 새긴 이안눌 '오언율시'
 
이안눌 청룡암시 목판은,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5호이다. 동악 이안눌은 1608년 2월부터 1609년 7월까지 동래부사를 역임했다. 이안눌 동래부사는 '청룡암시'와 '범어사증도원산인' 시를 자필로 쓴 것을 판각한 것. 이안눌 부사는 재임시 범어사를 자주 찾았는데, 당시 범어사의 혜정장로가 이안눌부사에게 바위에 훗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시를 한 수 지어 새길 것을 요청했고, 이에 이안눌이 시를 지어 바위에 새긴 것이 '청룡암시'이다. 범어사 지장 전 옆에 있는 청룡 암 전면에 새겨져 있다.
 
 
범어사는 모든 것이 문화재이다. 범어사 삼층 석탑은 신라 말기 석탑이다. 이 석탑은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과 같은 계열의 탑. 기단 면석 상하에 탱주를 대신하여 안상을 새겨 넣은 점이 특이하다. '범어사사적기'에 의하면 이 삼층 석탑은 신라 흥덕왕이 세웠다고 한다.
 

 


태그:#비경, #범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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