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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앙불락(怏怏不樂)'

 

매우 마음에 차지 않을 뿐 아니라 야속하게 여겨지는 것을 말한다. '앙앙불락'을 바라보는 상대방의 마음 또한 즐거울 리 만무하다. 작금의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편치가 않다. 말 그대로 '앙앙불락 정치' 때문이다. 

 

미국의 미디어 연구자 토드 기틀린(Todd Gitlin)은 일찍이 "권력은 TV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 권력은 최근 들어 광장에 몰입돼 있다. 광장이 TV를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이미지를 포장하고 정교하게 생산할 수는 있는 정치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치 권력은 광장에서 나온다고 할 정도로 광장정치가 붐이다. 이 때문일까. 광장 쟁탈전이 치열하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광장은 여전히 정쟁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그러나 도심 광장은 민심이 천심으로 바뀌는 신성지역이다. 오랜 민주주의의 역사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MB정부, '앙앙불락 정치' 하기로 작정한 것일까?

 

광장정치의 효과를 일찍이 간파한 때문일까. 이명박 정권은 걸핏하면 광장을 폐쇄조치하려 든다.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듯. 그러나 그럴수록 민심을 얻기는커녕 대못을 박고 있다는 사실은 왜 모르고 있는 것일까. 모든 권력은 광장 대신 그곳에 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광장의 주인은 국민들의 것이란 사실을 왜 모르는 체하는 것일까. '앙앙불락 정치'를 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근 라디오 연설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고 있는 시국선언과 정권에 대한 비판확산을 이념과 지역의 대립구도로 단순히 해석했다. 해묵은 이분법적 해석은 광장의 메아리를 잘못 보고 들었거나, 잘못 보고 받은 게 분명하다. 지금 광장의 메아리는 개혁이라는 단어가 주된 키워드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에피스테메(episteme: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성의 기준, 또는 시대정신)는 이념과 지역이 아닌 '개혁 대 반개혁'의 진영을 개혁중심으로 재편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다시 필요한 단어는 개혁이라고 광장에서 거리에서 외치고 있다. 그런 광장의 메아리를 외면하고 있으니 해석을 제대로 할 리가 없다.    

 

그래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정부가 기를 쓰고 폐쇄하려고 하거나 경계하는 광장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그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거나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곳이라는 점이다. 역사의 긴 시곗바늘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마침 6월 15일 YTN '돌발영상'이 이를 잘 규명했다. '과거와는 거꾸로…'란 제목과 함께 '빽 투 더 퓨처'란 부제로 방영한 이날 '돌발영상'은 참여정부시절 야당이었던 한나라당 지도부와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모습이 지금과 얼마나 다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5년여 전부터 지금의 정치권 모습을 '돌발영상'과 다른 언론의 보도내용을 토대로 재구성해 보면 크게 3부류다.    

 

[# 장면 하나] "한나라당이여, 시청광장으로 모입시다"

 

2004년 9월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수도이전 반대 대규모 집회가 열리던 날이다. 수도이전은 당시 '대통령이 있는 곳이 수도'란 개념 아래 청와대와 국방, 외교 등의 정부부처는 서울에 남기는 대신 충청권 등 각 지역의 중심지를 분야별 거점으로 집중 육성하자는 취지였다.

 

행정부 일부와 산하기관, 기업의 이전을 촉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정부의 수도이전 계획안에 한나라당이 반대 당론을 확정하면서 야당의 광장, 거리정치가 연일 이슈가 됐다. 한나라당은 수도이전 반대성명과 기자회견을 갖는 등 거리에서 반대서명운동을 펼쳤다. 대규모 반대집회도 열었다.

 

당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한나라당 지도부들과 함께 참석해 "저도 마음이 똑같습니다"라고 언급했다. 물론 이때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수도이전 반대집회 예산지원과 주민동원 논란이 매우 거셀 무렵이었다.

 

국내 주류 언론들은 2004년 9월 20일부터 25일 사이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수도이전 반대집회 지원 논란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연합뉴스> 등 일부 언론은 "한나라당은 이명박 서울시장이 '수도이전 반대집회 예산지원'을 공개적으로 밝힌 데 대해 공식적으로 지지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문제될 것이 없다'며 두둔하고 나섰다"며 보도했다.

 

또한 "열린우리당은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서울시 주민들의 반대집회에 대해 한나라당 소속 이명박 서울시장이 개입된 '관제데모'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측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 여당은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해 고발 방침까지 밝히는 등 강경 대응을 밝히고 나서 파장이 컸다.

 

이후 한나라당 집회는 서울광장으로, 더 넓은 광장으로 향했다.

 

[# 장면 둘] 너도 나도 촛불 들고 모인 한나라당... "국회등원 거부"

 

2005년 12월 16일 서울시청 앞 광장. 한나라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사학법 반대투쟁을 위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시울시장을 포함하여 이상득 의원, 이윤성 의원 등도 야간집회에 촛불을 들고 나란히 앉았다.

 

한나라당은 개정 사학법 통과를 규탄하며 국회등원을 거부하고 장외투쟁에 나선 것이다. 당시 '사학법 원천무효' 집회에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한나라당 지도부 외에도 많은 의원들이 시민들과 가두행진에 나서기도 했다. 대통령 당선 이후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 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이 대통령도 당시 촛불을 들고 함께 있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됐다.

 

한나라당은 이어 서울역 광장에서도 원내대표를 비롯한 소속 의원과 당직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학법 개정 무효 촉구 집회를 열었다. 이에 당시 열린우리당 정세균 의장 겸 원내대표는 고위정책회의에서 "길거리로 나갈 바에는 TV토론을 통해 국민 앞에서 공개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고 심판을 받자"며 한나라당의 조속한 국회 복귀를 촉구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당시 국회복귀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다. 특히 안상수 원내총무의 당시 발언은 3년 반이 흐른 지금과 전혀 대조적인 모습이 '돌발영상'에서 확인됐다. 

 

[# 장면 셋] "모든 일은 국회에 들어와서... 돌아오라 국회로?"

 

"국회는 원래 야당을 위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갖가지 조건을 붙여서 국회에 응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하늘 아래 없는 야당 아닙니까? 이 문제에 대해 제도적인 반성을 하자 해서 매월 짝수달에는 자동적으로 국회를 열도록 했습니다. 왜 의무적인 법적 규제까지 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2009년 6월 11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박희태 대표는 '돌아오라 국회로'를 연거푸 외치며 이렇게 강조한다. 불과 4, 5년 전 한나라당이 길거리와 광장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깡그리 잊은 듯하다.

 

4~5년 전 한나라당에게 "빨리 국회로 돌아올 것"을 촉구했던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반면, 지난 11일 민주당 홈페이지에 올린 '국민께 드리는 글'에서 1박 2일간의 서울광장 농성과 6.10 범국민대회를 마친 소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서울광장은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현장이었습니다. 신음하고 질식하던 민주주의는 시민과 야당이 어깨 걸고 지켜낸 광장에서 모처럼 크고 깊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열린 광장의 주인은 국민이었습니다.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증명하는 소통의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나라를 걱정하는 시국선언이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그때와는 다르다. 대학교수와 법조인, 종교단체, 청년학생 등 각계각층에서 현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거리 또는 광장에서 메아리치고 있는 모습이 그 때와 는 분명 다른 점이다.

 

그럼에도 여당은 광장정치를 끝내고 쉽게 자신들의 의지대로 승부를 낼 수 있는 링 안으로 들어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링 안과 밖은 천지차이다. 그래서 야당의 고민은 더욱 커 보인다. 링 밖에는 민심이 있고 링 안에는 민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품고 있다는 구밀복검(口蜜腹劍) 정치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선 엄정한 심판자가 나서야 한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행동과 참여가 필요하다. 국민이 나서서 심판하지 않으면 그 몫은 '앙앙불락'의 부메랑으로 날아오고 만다. 이것이 그간 보여준 정치 현실이다.


태그:#광장정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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