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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장면? 편파영상?... 이번엔 어떤 변명할까?

6.10 범국민대회가 큰 사고 없이 평화롭게 끝났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오늘(11일) 인터넷을 달구는 두 개의 동영상은 이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생중계 중인 촬영팀을 무시무시한 금속제 흉기로 내려치는 장면. 전력으로 도망가는 시민을 방패로 찍는 동영상.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지금 이 시간, 추측하건대 경찰청에서는 누군가가 이 동영상에 대한 대응방침을 만들기 위해 밤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설마 '좌익세력이 만든 연출된 장면'이라고 하지는 않을 테고, '촬영팀이 문제의 동영상을 찍기 직전에 새총을 쏴서 경찰 한 명을 크게 다치게 했다'든가 '방패로 찍힌 시민은 쇠파이프를 휘둘러 의경 한 명을 혼수상태에 빠뜨린 후 도주하던 중이었다'고 하기도 쉽지 않을 테고, 뭐라고 할 것인가.

경찰이 6.10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에 대한 해산작전을 펼치면서  방패로 달려가는 시민의 머리와 목을 가격하고 있다.
 경찰이 6.10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에 대한 해산작전을 펼치면서 방패로 달려가는 시민의 머리와 목을 가격하고 있다.
ⓒ <민중의 소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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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동영상들은 시위대의 폭력은 찍지 않은 편파적인 영상'이라든가, '이런 식의 진압은 당시 시위대가 보인 극도의 폭력성을 감안할 때 부득이한 것이었다' 정도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나라면 차라리 '두 장면 모두 접근하던 경찰이 발이 꼬여서 넘어지면서 생긴 불행한 사고였다'고 우기겠지만, 그것도 참 참담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작년 촛불집회와 관련한 경찰의 과도한 폭력사용에 대해 앰네스티가 조사결과를 발표했을 때, 이에 대해 경찰과 법무부를 비롯한 한국 정부의 적반하장식 반박과 변명을 익히 경험한 터이지만 이번에는 또 어떤 반응이 나올지 궁금하다. 과연 그런 변명과 반박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그렇다고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들도 알면서 생계를 위해 하는 것인지…. 전자라면 한심하고 후자라면 측은하다.

진심으로 대한민국 경찰에 충고한다. 그런 반박거리나 찾고 있을 시간에 앰네스티 보고서를 단 한 번이라도 열린 마음으로 읽고 개선책을 생각했다면, 지금 이런 상황은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또 다시 폭력경찰의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어제(10일)의 진압은 무난하게 성공한 작전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시위 진압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하라는 것

작년 10월에 나왔던 앰네스티 보고서의 분량이 상당하므로 마지막 부분의 권고사항만 이곳에 옮긴다. 이 중 단 몇 가지만이라도 실천했다면 10일 상황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1. 현행 경찰력 집행 실태를 철저히 재검토하여 군중통제 시 모든 경찰, 특별히 진압경찰의 배치와 훈련 그리고 경찰의 무력 사용에 관한 규정이 아래의 국제 기준들에 부합하도록 하라.
2. 경찰이 경찰장비 및 안전장비, 무기를 국제인권법과 기준에 부합되게 적절히 사용할 수 있도록 명확한 지침과 엄격한 훈련을 받도록 하라.
3. 의료조치가 필요하거나 요청되었을 경우에 모든 수감자들이 이를 즉각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게 하고 경찰 구금 중 인권침해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라.
4. 경찰관에 의한 인권 침해 주장들에 대해 즉각적이고, 효과적이며 독립적이고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를 실시하라.
5. 인권침해 가해자들의 책임을 규명하라. 면책권 부여와 같은 진압 경찰의 불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모든 조치들을 멈추라.
6. 책무성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일반경찰과 특히 진압경찰이 제복에 이름표나 식별번호를 항상 착용하게 하라.
7. 모든 인권 침해 희생자들이 국제적 기준들에 맞게 배상 받게 하라.
8. 국가인권위원회의 촛불집회 중 인권 침해 진정 사건들에 대한 조사 시 전적으로 협조하라.
9. 촛불집회 진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시하는 권고사항들을 실행에 옮기도록 진지하게 고려하라.
10. 징집 군인의 경찰 병력 배치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라.
11.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모든 시민이 국제적 기준에 맞게 집회의 자유를 더 폭넓게 행사할 수 있게 하라.

앰네스티는 결코 대한민국 경찰의 명예를 훼손시키거나 비방할 목적으로 오랜 조사를 거쳐 힘들게 보고서를 내놓는 것이 아니다. 시위진압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안전하게, 시민의 기본권을 존중하면서 하라는 것이다. 앰네스티 보고서는 일차적으로는 대한민국 시민들의 안전과 인권을 위해 내놓은 것이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면 경찰 조직 자체의 위상도 올라가고 언젠가는 시민에게 사랑 받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인권침해의 우려가 있으므로 경찰에게 수사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검찰의 주장이 억울하지도 않은가. 아니면 수사권 독립을 주장할 만큼 패기가 있는 경찰간부 따위는 이제 경찰 조직 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부디 경찰의 존재 이유를 단 한 번만이라도 다시 생각해 보고, 앰네스티의 권고사항을 읽어보라. 저 권고를 지킨다고 해서 경찰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는가. 만일 저런 식으로는 기능할 수 없는 존재가 지금의 경찰이라면, 그때는 경찰의 존재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앰네스티의 보고서 원문을 보시려면 다음 링크를 이용하십시오.

촛불집회에서의 경찰력 사용에 관한 앰네스티 보고서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앰네스티일기(http://amnesty.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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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6.10, #범국민대회, #경찰폭력, #인권, #앰네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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