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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대교를 건너 초지진에서 시작해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 나아가다보면, 고려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 사적 제226호 덕진진과 마주하게 됩니다. 덕진진은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성-외성-돈대-진보 등의 12진보를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입니다.

 

 

 

효종 7년(1666)년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해군주둔지(수영)에 속해 있던 덕진진을 덕포로 옮겼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졌습니다. 강화 12진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었는데,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기도 했습니다.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으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 군대에 의해 끝내 점령당하고 맙니다. 그 때 건물에 몸을 숨겨서 적과 싸울 수 있도록 쌓았던 낮은 담 등은 모두 파괴되었는데, 이를 1976년 성곽과 돈대를 고치고 남장포대도 고쳐 쌓았다 합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문의 누각도 다시 세웠고, 당시의 대포도 복원해 두었습니다.

 

 

 

지난 주말 자전거로 덕진진을 찾았을 때는 주차장 화장실 옆 샛길로 내려가 옛사람들이 지키던 강화해협과 갯벌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덕진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해안가에서 올려다 본 덕진진의 모습은 사뭇 달랐습니다.

 

바닷가로 놀러온 고등학생들은 갯낚시를 하려는지 애를 쓰고 있었고, 갯바위가 삐죽 서있는 갯벌에는 꼬마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곁에는 아이의 부모와 할머니가 바닷물이 빠진 갯고랑에서 뭔가를 열심히 잡고 있더군요.

 

덕진진에서만 볼 수 있는 강화해협과 갯마을 사람들의 모습, 놓치지 말아야 할 보기드문 풍경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덕진진, #강화해협, #갯마을,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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