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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휴게소와 풍물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음반노점상을 동네에서 만났다.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하려는지 음반 정리를 하는 주인 옆에 서서 가지런히 정리된 음반들을 훑어보았다. 트로트와 7080세대 음반이 주를 이루었고 '홀딱쏭'이라고 하는 성인가요도 보인다. 요즘 잘 나가는 것을 물었더니 경제가 안좋아서인지 잘 나가는 것은 없다며 웃는다.

소형 트럭에 CD, DVD, TAPE를 틀 수 있는 음향장치들을 직접 설치했다는 이기영(65,가명)씨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씨가 음반노점상을 한 것은 2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서예연구실을 15년간 운영했는데 서예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 들어서 정리를 하고 젊었을 때 음반회사에서 일했던 인연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소형 트럭을 개조해 만든 노점음반트럭
 소형 트럭을 개조해 만든 노점음반트럭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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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 몇 번 봤던 것 같다.
"주로 이곳(구로시장 근처)에 있고 가리봉동에도 가끔씩 간다. 중국사람들은 먹고 즐기는것을 좋아해서 음반도 잘 사가는 편이다."

중국본토음식점과 노래방이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이 장사가 잘 되는 지역이라고 한다.

- 영업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단속이다. 요즘은 무인단속 카메라가 많아서 차도 옆에 차를 세우는 게 힘들다. 인도 쪽에 세우면 노점단속 신고를 받고 용역들이 쫒아와서 항상 불안하다. 그나마 일요일에는 단속이 없어서 마음 편하게 장사를 하는 편이지만 벌금고지서를 받으면 영업을 그만하고 싶을때도 있다. 구청에 찾아가 하소연도 해봤지만 소용없다."

식당주차장 옆 지금 자리는 주인의 배려로 차를 세울 수 있게 됐다. 덕분에 단속걱정은 덜었다고 한다. 거의 매일 이곳에서 영업을 하다 보니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다. 처음 차를 몰고 나왔을 때는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러워 변두리 동네로 갔는데, 하루 종일 한 개도 못 팔고 돌아온 적도 있었다. 서울 근교 유원지에 갔을 때는 지역상인들 텃새와 자릿세 때문에 자리를 못 잡고 단속을 피해 돌다 보면 하루가 저물 때가 많았다고 한다.

추억의 음반과 음향시설까지 갖춘 노점음반트럭
 추억의 음반과 음향시설까지 갖춘 노점음반트럭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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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럭에 카메라도 있고 거울도 많은데 어떤 용도인가.
"저녁에 장사하다 보면 슬쩍 집어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감시와 예방차원에서 달았다."

트럭 양옆과 뒤에 판매대가 있다보니 사각지대가 생겨서 도둑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자구책으로 판매대 높이를 낮추고 사각지역을 볼 수 있는 거울과 차 안에서도 볼 수 있도록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한다.

- 살고 있는 지역에서 멀리 온 것 같은데 이유라도 있는 건가.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은 가족들만 알고 있다. 친구, 친척들도 모른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도 있었는데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창피한 것도 있고 해서 멀리 나오게 되었다."

결혼을 한 큰 아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걱정이라는 이씨는 더 자세한 이야기는 부담스러워 했다. 작은 아들은 원하는 대학에 가겠다며 삼수까지 했다. 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곁에서 공부하는 시간만큼 새벽녁까지 서예를 했다는 이씨의 아들은 끝내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고 한다.

- 주변에서 노점영업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 텐데 어떤가.
"노점으로 나오고 싶은 사람들은 없다.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우니까 힘들고 창피하더라도 나오는 거다. 갈수록 노점상들은 늘어가지만 오래 못 버티는 경우가 많다. 노점마저 못 할만큼 어려워지는 거다."

사각지역을 볼수 있는 거울은 감시와 예방 차원에서 달았다.
 사각지역을 볼수 있는 거울은 감시와 예방 차원에서 달았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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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이 없는 일요일은 일을 하러 나오고 월요일은 음악을 들으면서 집에서 쉰다고 한다. 쉬는 날이 있어야 일도 오래 할 수 있다는 거다. 날씨 등 변수로 쉬어야 할 때도 있어서 한달에 20일 정도 영업한다고 한다. 유명 가수보다는 얼굴 없는 가수의 음반이 더 많이 나가는 것이 노점음반의 특징이다. 수입은 들쑥날쑥이지만 5만 원 팔면 2만 원 정도 남는다. CD는 5천~1만원, 테이프는 2천원을 받는다. 두시간여 같이 있는 동안 테이프 4개를 팔았다.

인터뷰 말미에 정치에 대해 묻자 새로운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며 격앙된 목소리를 높이며 정치권에 대한 강한 불신을 보였다. 서울광장을 봉쇄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광장이 뭐하는데야. 사람들 모여서 놀고 떠들라고 만들어둔거 아녀. 국민들이 하는 소리가 듣기 싫으면 말뚝을 박든지 뜯어내 버려야지 뭐하는 거야. 하천도 그거 왜 파는 거야 안된다니까..."

옆에서 음반을 보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정치 이야기에 끼어들어와 정부의 대북정책과 소통하지 않는 대통령을 강하게 성토했다. 비가 온 뒤라서 하늘은 맑고 꺠끗한 햇볕을 쏟아내고 있지만 민심은 잔뜩 흐려져 있다.

덧붙이는 글 | 신상이 공개되는것을 원하지 않아서 가명을 썼습니다.



태그:#노점, #음반, #노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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