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 통계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올해 들어 220만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4천원. 그러나 내년엔 이마저도 위태로워 보입니다. 2010년도 최저임금액이 이번 달에 결정된다고 하는데, 노동계는 인상안인 5150원을 주장하는 반면 경영계는 경제악화를 이유로 3770원으로 삭감하자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경제난,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을 만나봤습니다. [편집자말]
열흘 전, 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갔던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나는 지금 백수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기 싫다느니, 공부를 해보겠다느니 온갖 핑계를 대며 뛰쳐나왔지만 사실 문제는 '돈'이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할 요즘 같은 때, 돈 때문에 그만뒀다니 무슨 말인가 싶을 거다.

영화관에서 내가 받은 임금은 최저임금을 딱 맞춘 시간당 4천원. 하루 6시간 근무에 일주일 중 하루 휴무, 이렇게 한 달을 일하면 정확히 60만 원을 번다. 거기에 교통비와 식비, 가끔은 문화생활을 즐기다 보면 반절은 생활비로 쓰인다. 배낭여행을 목표로 최대한 아껴 석 달을 모았으나, 통장에 남은 돈은 100만 원 남짓. 내 노동의 가치가 고작 4천원밖에 안 된다니, 통탄할 노릇이다.

그러나 '취업대란'에서 예외일 수 없는 이 땅의 88만원 세대인 나는 결국 여행을 포기하고, 남들 다 하는 '스펙' 쌓기에 돌입했다. 부모님의 등쌀에 못 이기는 척하긴 했지만, 석 달 간 모아 남은 돈이 100만 원이니 여행 자금 벌기도 전에 반 학기 휴학이 끝날 것 같아서다. 결국 드넓은 세상 속에서 헤엄쳐 보겠다는 젊은 패기는 최저임금 4천원이라는 처절한 현실 앞에서 태평양 물에 발 한 번 못 담가보고 무너졌다.

여행은 무슨? 시간당 4천원 버는 주제에

'최저임금 만 원이 될 때까지는 절대 아르바이트 세계로 돌아오지 않겠노라'는 가당치도 않은 꿈을 꾸며 의기소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기가 막힌 소식을 접했다. 경영계가 경제위기 상황과 근로자의 고용불안 해소 등을 감안해 내년도 최저 임금액으로 올해 시간급 최저임금에서 5.75% 삭감한 3770원을 제시했다는 것.

어라, 이건 아닌데? 아무래도 선수를 친 것 같다. 해마다 그래왔듯이, 최저임금 4000원으론 생계를 유지하기 턱없이 부족하다며 인상을 주장할 노동계에 대비해 맞불 작전을 펼친 건 아닌지. 때마침 찾아온 경제위기 상황은 누가 들어도 그럴듯한 핑계거리다. 일정 부분은 이해한다. 너도 나도 힘든 시기니까.

그러나 고작 230원을 덜 받아 수렁에 빠진 기업을 살려낼 수 있다면 나라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 최저임금을 받아 근근이 생활하는 이들에게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의 책임을 덮어씌우려는 그들의 고육책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는 말은 아마도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근로자의 고용불안 해소'라고? 불안한 마음을 헤아려 준다니 퍽이나 고맙다. '잘리는 것보단 돈 조금 덜 받는 게 낫지 않겠냐'는 솔직한 표현보다는 그 편이 듣기 좋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높게 책정하면 기업이 근로자를 고용하지 않아 실업자만 많아진다는 논리는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다.

나는 슬픈 멀티플레이어

서울 시대 한 극장의 내부 모습. 한 시간 동안 수십 장, 수 백장의 티켓을 판매하고 4천원을 버는 내가 영화 한 편에 팝콘까지 사 먹으며 내 세 시간 급여를 쓰고 가는 손님을 대하고 있노라면 속이 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서울 시대 한 극장의 내부 모습. 한 시간 동안 수십 장, 수 백장의 티켓을 판매하고 4천원을 버는 내가 영화 한 편에 팝콘까지 사 먹으며 내 세 시간 급여를 쓰고 가는 손님을 대하고 있노라면 속이 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이유하

관련사진보기


4년째 '알바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나는 늘 '최저 인원'으로 '최고의 효율성'을 달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했다. 편의점에서는 늘 혼자였고, 명동 한복판의 레스토랑에서는 말 그대로 '날아다녀야' 했다.

남들 자는 시간에 졸린 눈 껌뻑이며 담배 손님을 맞이할 때도 그랬고, 크리스마스 날 건너편 가게에까지 늘어서 있는 줄을 보며 '환영합니다'를 외쳐야 할 때도 언제나 내 임금은 '최저' 기준선에 정확히 맞춰졌다.

'고효율 알바생'인 덕에 영화관에서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적도 있다. 바쁜 시간에 이리저리 지원 다니다 보니 오전에 티켓을 판매한 고객에게 팝콘을 팔고, 입장할 때는 티켓까지 받은 것이다.

"어라? 아까 봤던 분 맞죠? '멀티플레이어'시네요."

대답은 대충 웃음으로 때운다. '만능'이란 소리가 기분 나쁘진 않았지만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는 내 심정을 그가 알기나 할까.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대꾸할 틈도 없이 다음 손님이 밀려 들어와 상황은 일단락됐다. 이 손님, 내가 영화 끝난 후 문까지 열어야 했다면 진짜 정분날 뻔했다. 웃자고 한 소리지만, 사실 민망한 상황이다. 그 넓은 영화관을 혼자 뛰어다니는 '알바생'을 보고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한 시간 동안 수십, 수백 장의 티켓을 판매하고 4천원을 버는 난 영화 한 편에 팝콘까지 사 먹으며 나의 세 시간 노동만큼의 급여를 쓰고 가는 손님을 대하고 있노라면 속이 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니 내가 시급 4천원을 받고 더 못해먹겠다고 나올밖에.

그래도 나는 특혜 받은 '알바생'?

그런데 어찌 보면 나는 오히려 특혜 받은 '알바생'이었다. 최저임금 4천원조차 받지 못하고 일하는 '알바생'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서울 지역은 대부분 최저임금을 지키고 강남역 부근의 카페나 호프집에서는 6천원을 넘는 경우도 있지만, 수도권 및 지방의 경우는 매우 열악하다.

대구의 어느 피시방에서 일하는 양모(23)양은 "3200원을 받지만 이보다 못 받는 친구도 많다"며 "경영계의 주장이 통과된다면 더도 덜도 말고 (내년 최저임금으로 경영계가 요구하는) 3770원만 지켜진다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피시방에서 일했던 최모(20)군 역시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으로 신고도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주인은 '벌금 내는 게 시급 올려주는 것보다 낫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현재 최저임금법이 얼마나 허술하게 지켜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안양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전모(23)양도 시간당 3500원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그녀는 2009년 최저임금이 4천원이라는 사실을 아느냐는 물음에 "알지만 편의점이니까 어쩔 수 없다"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당동의 한 피시방에서 야간 '알바'를 하고 있는 김모(21)양은 야간엔 1.5배의 수당을 받아야 함에도 4000원을 받고 있다. 그녀 역시 "자리 안내하고 돈 받는 일이 전부"라며 "억울해도 피시방은 원래 그렇다"고 말했다.

친절한 사장님도 최저임금 앞에선 눈빛이 달라진다

내가 아는 한, 어떤 친절한 고용주도 절대 필요 이상의 직원을 두는 경우는 없었다. 이러한 근로환경에서 근로자를 '적게' 고용하겠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어야 하는 기업은 무리한 요구라고 하겠지만, 적당한 임금으로 소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노사가 상생하는 길이지 않을까.

하지만 일부 고용주들은 '최저임금'을 '최고임금' 혹은 '적정임금'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임금', '적어도 이만큼은 받아야 한다'는 말인데, 최고 기준선이 마치 4천원이기라도 한 듯, 그 이상을 지급하는 일이 없고, 대부분의 영업장에서 시급 4천원을 책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최대한의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하려는 기업의 본질은 어쩔 수 없으나, 국가는 그에 앞서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권을 보장해 줄 의무가 있다. 최저임금을 낮추라는 기업계의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귀 기울이기 전에 일단 최저임금법부터 엄격하게 집행해 달라.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서로 허리띠 졸라맵시다'는 말은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노동자에게 할 소리가 아닌 듯하다.


태그:#최저임금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