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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들여와 심은 벚나무가 멋드러집니다.
▲ 제가 일하는 아시아 지역학과 사무실 일본에서 들여와 심은 벚나무가 멋드러집니다.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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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북유럽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의 작은 도시 카우나스라는 곳에 위치한 대학교에서 1년째 한국어과 한국문화사를 강의하고 있는 신참 강사입니다.

영어도 아닌 현지어로 진행해야하는 문화수업을 준비하는 저는 정말 공포를 느낄만큼 떨렸습니다. 한국인이라는 사실 그거 하나를 제외하고는, 리투아니아 대학생들에에 한국문화를 소개할 만한 능력이나 자질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솔직히 종교사와 밀접히 연관되어있는 한국문화사의 경우, 독실한 기독교집안에서 자라 반야심경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저에게는, 거의 외국 문화와 별반 차이가 없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생전 보지 않던 법화경과 금강경을 읽어보고, 오랫동안 뇌리에서 잊혀져 있던 사서삼경을 되뇌면서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 드디어 지난 주, 기말고사를 마지막으로 강의가 끝났습니다.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염려한 대로 학생들 중 제가 리투아니아어로 설명하는 것을 잘 못 알아듣는 애들도 있었고, 수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애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단군신화를 읽고 팔만대장경과 삼국유사와 지장보살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했고, 리투아니아어로 시조도 지었으며 한류의 미래에 대한 토론도 했습니다. 저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잘 따라와준 리투아니아 학생들이 고마워 미치겠습니다.

특히 '한류의 문제와 유럽 내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 논하라'는 기말고사 문제에는 여러 학생들이 기발한 답변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리투아니아 학생들이 쓴 3장 6구 시조를 소개해 드렸으면 합니다.

제가 사서 하는 생고생 이야기 한번 들어보세요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는 진작에 유럽에 소개되어있는 반면, 시조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아 학생들은 새로운 것을 최초로 시도해보는 뿌듯함 때문인지 정말 열성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정말 어려웠지만 이런 기회를 통해 저는 유럽 학생들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방학이라고 끝이 아닙니다. 이번 7월, 제가 일하는 대학교에서 한국언어와 문화강습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약 2주 정도 걸리는, 현지 학생과 유럽 학생들이 참가해서 한국어와 한국무용을 배우는 강습회입니다. 본의 아니게 꽤 국제적인 행사가 되어 또 몹시나 부담스럽습니다.

대략 30명 정도가 참가신청을 했는데, 반 정도가 현지 학생들이고 그 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폴란드 같은 주변 국가 학생들을 비롯해서 멀리는 사이프러스,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같은 유럽의 끝자락에서도 신청서를 보냈습니다. 그만큼 유럽 곳곳에 한국어 교육에 목말라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이야기겠지요.

대부분 인터넷으로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세계에 빠져든 유럽의 한류 팬들입니다. 라트비아와 불가리아, 마케도니아 같은 생소한 나라에도 '꽃보다 남자'와 '패밀리가 떴다'를 즐겨보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이런 작은 도시의 대학교에까지 잊지 않고 자료를 보내주는 일본 정부가 대단합니다. 동해에 관한 자료는 있냐고요? 보내줄 자료가 있기는 할까요?
▲ 일본해 명칭에 관한 홍보자료 이런 작은 도시의 대학교에까지 잊지 않고 자료를 보내주는 일본 정부가 대단합니다. 동해에 관한 자료는 있냐고요? 보내줄 자료가 있기는 할까요?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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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행사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추진한 후부터 저는 이 끝이 없는 생고생의 모래 지옥으로 거침 없이 발을 밀어넣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해결해야하는 문제가 한 두 개가 아니었던 것이죠. 그 중에 하나를 소개해 드리지요.

구 유고 연방인 마케도니아의 학생인 경우에는 유럽연합 회원국민이 아닌 관계로 비자를 받아야만 입국이 가능하고, 제가 추진하는 강습회 이름으로 초청장을 보내주어야 그 학생이 참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많더군요. 일단 제가 일하는 아시아지역학과 (사실 아직은 일본학과라고 불립니다)의 학과장은 일본으로 출장 중이라 6월 말에 돌아오고 그외 다른 대학교 간부들도 많이들 자리를 비운 상태더군요. 말하자면 그 서류에 서명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결국 두 시간에 할 일을 이틀 걸려...

리투아니아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 몇 가지를 들라면 바로 유럽 최강의 농구, 방송에 나와 강호동을 번쩍 들어올렸던 '스트롱맨' 사비츠카스(많이들 사빅카스라고 알고 있죠), 그리고 엄청난 관료주의입니다. 이 나라에서 무엇을 처리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보다 '이것이 왜 안됩니다'라는 설명을 듣는 일이 더 많을 정도입니다.

학교 직원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어디에 가서 누구를 찾고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고 고질적인 동유럽 스타일의 똥개훈련을 요구하곤 했습니다. 그런 쓰잘데기 없는 똥개훈련에 적응할 준비를 하고 들어왔으니, 저는 웬만큼 참고 일을 하려니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엾은 똥개는, 가는 곳마다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만 들을 뿐 문제 해결의 기미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리를 비웠으니 대신 할 사람은 없고, 그래서 다른 곳에 가보면 그 사람은 안되고…. 그래서 그 마케도니아 학생에게 보낼 초청장은 거의 이틀 동안을 여러 사람들의 손에서 왔다갔다 했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그 문제를 해결해줄 만한 사람한테 가게 되었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해 본 결과, 국제협력업무를 담당하는 한 직원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제 문서에 서명을 해줄 거라는 결론에 이른 겁니다(어찌보면 아주 당연한 것 같지만, 업무분담이 지나치게 많이 되어 있다 보니 국제협력업무과에서 국제협력업무를 담당할 거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지긋지긋한 똥개 훈련을 어서 끝내고 마케도니아로 그 망할 놈의 서류를 보낼 생각에 그 담당자를 찾아갔지요. 그 여직원은 저의 이야기를 듣더니 단번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당신이 직접 서명하면 되겠네요."
"뭐라구요?"
"아니 강습회 추진하시는 분이 당신인데, 왜 서명을 못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아닌게 아니라 저도 여러 사람들한테 물어보긴 했는데, 다들 여기 저기로 가라는 말 뿐이고…. 제가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어보긴 했어도 다들 높은 사람만 찾아가라고 했거든요."
"걱정말고 그냥 그 초청장에 서명해서 가지고 오시면 저희가 공증을 해드릴게요."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여기저기 굴러다니면서 쓸데없이 힘과 시간을 낭비해야했던 것입니다. 몇 시간 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이놈의 몹쓸 관료주의는 이틀이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파랑새는 가까운 곳에 있다더니….

한국과 중국이 헷갈리는 세관원들

한국의 어느 단체에서는 이번 강습회에 쓰라고 사물악기와 풍물복을 사서 보내주었습니다. 그런데 리투아니아 세관은 그 사물악기를 붙들어 놓고는 엄청난 양의 서류와 관세를 요구하더군요. 비싼 물건이기도 하지만, 저희 학교 행사를 위해서 구입해 준 그 단체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물론 값비싼 물건이라서 통관에 어려움이 많겠지만, 세관에서 온 공문서에 적혀있는 내용이 정말 제 창자를 뒤집어 엎고 말았습니다 .

'중국에서 4개의 소포가 배달되어왔습니다. 내용물과 가격 등을 증명할 수 있는 증빙서류를 지참하여 관세청으로 전달해주시기 바랍니다.'

관료주의가 하늘을 찌르는 이 나라의 세관원들은 중국과 한국조차도 구분을 못하는 모양인가 봅니다. 한국 물건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그 악기들이 세관에 걸렸을까, 중국과 한국을 제대로 구분하는 똘똘한 세관원이었다면 나를 이렇게 쓸데 없이 고생시키지는 않지 않을까. 과연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악기를 받는데 도움이 되기는 하는 것일까. 정말 관료주의 신도들에 의해서 또 시간만 버리는 것은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일처리를 더욱 더디게 합니다.

자료사정과 노력만 따지고 보면, 유럽에서 독도는 누가 봐도 일본땅이 맞습니다.
▲ 독도 영유권에 관한 자료 자료사정과 노력만 따지고 보면, 유럽에서 독도는 누가 봐도 일본땅이 맞습니다.
ⓒ 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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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세관원에 대학교 행사에 사용할 기증품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보냈고 제가 사는 카우나스 우체국에 도착했다는 통지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관세를 얼마나 물어야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전 아무리 생각해도 중국과 한국을 구별 못하는 그 세관원들 때문에 쓸데 없는 힘을 허비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려야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유럽의 영원한 엄친아, 일본

에스토니아 5년, 폴란드 5년, 그리고 리투아니아에서 새로운 1년, 에스토니아에서의 생활과 리투아니아의 그것을 비교해 본다면, 사람 자체가 적은 에스토니아는 좀 심심했지만 살기엔 괜찮았고, 친구와 한국 교민이 많은 리투아니아는 덜 심심하지만 살기가 조금 더 어렵습니다. 바로 리투아니아라는 땅 위에 유령처럼 거무튀튀하게 내려앉은 절차 위주의 관료주의와 뿌리 깊은 권위주의적 관행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전에 몇 번 글을 쓴 적이 있었지요. 요즘 들어서 이론만이 아닌 정말 경험적인 차원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굳이 내가 몸 담고 일하는 대학교와 이 나라를 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싫지만, 일본에서 추진하는 활동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 같은 경우에는 제가 일하는 이 작은 학교 행사에 엄청난 돈을 지원해주고 관심을 아끼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본에서 오는 물건의 경우, 중국에서 온 물건으로 오인 받아 골치를 썩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그런 차원에서 본 받을 점이 많습니다. 학생 수 얼마 안되는 저희 학교의 도서관에도 일본정부는 동해 명칭문제와 독도영유권 홍보 자료를 잊지 않고 꼬박 꼬박 보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독도가 우리 땅이라며 거품을 물고 이야기를 해봐야 우리는 그런 일본의 그늘에서 이길 승산이 전무합니다. 그냥 포기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 건강에 좋습니다.

리투아니아에 한국 공관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곳을 관할하는 대사관에서도 이 작은 나라에서 열리는 한국관련행사에 그 어떤 지원이나 관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 기업의 핸드폰과 컴퓨터는 점차 시장을 늘려가는데, 그 어떤 곳에서도 한국문화가 얼마나 제대로 알려지고 있는지 한국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는지 궁금해 하는 곳이 없습니다. 우리와 규모도 비슷한 일본문화강습행사는 일본 정부와 기업의 후원금으로 떵떵거리며 행사를 치르는데, 한국문화 행사는 없는 돈을 쪼개고 쪼개서 지출을 해야할 판입니다.

그런 핸드폰과 컴퓨터, 그리고 드라마를 잘 만드는 한국의 언어를 배우기 위해 사이프러스와 마케도니아 학생들이 먼길을 돌아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가난한 한국어 강습회에 와야하는 상황입니다. 사이프러스와 마케도니아에서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왜 전혀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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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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