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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이 한참 술정리 동탑 문화재 발굴조사로 인해 시장길로 접어 들어서 가는 경남 창녕군 창녕읍 술정리 29 시장1길 63에는 중요민속자료 제10호 창녕술정리하씨초가가 있다. 예전에는 다 창녕 하병수씨 가옥으로 소개되어 있다.

이 가옥은 몇 번을 다녀온 곳으로 이번에는 현지 해설사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들어가는 곳은 공간 구분을 해 놓았는데 이 집은 안채·사랑채·대문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안채만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안채는 현소유자 하병수 할아버님은 예전에 비해 몸이 다소 불편 하신 듯 보이셔도 집에  계셨다. 건륭 25년 조선 영조 36년(1760)이라는 상량문 기록이 있다.

 이 집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처마인데 기둥의 높이에 가까울 정도로 깊다. 이는 일조량과 강우량을 고려한 남부지방 가옥의 특징이라 한다.

 지붕은 억새풀을 엮어서 얹은 초가이며 대청은 통나무를 윗부분만 편평히 깎아 깔았다. 또한 목재는 못을 전혀 쓰지 않고 구멍을 뚫어 연결하였다. 단지 아쉬운 점은 일부 문을 보수하면서 수입송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새로 한 것만이 좋은 같은 아니다.

 

부엌 앞에는 붉은 색이 감도는 돌이 있는데 이 곳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떡도 했을 것이라 한다. 이는 붉은 색이 벽사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즉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고 하고 고가에는 일부 이런 돌이 있다고 한다.

 부엌의 가마솥은 부자가 되라는 의미인 부를 상징, 생쌀이 한주먹이면 밥을 하면 두 주먹으로 두배로 늘어나 늘 부엌에는 솥을 두어 살림살이가 늘어나라는 의미도 한다.

 문고리가 일부 가죽으로 있으나 이는 잘못된 복원이다. 전통 방법은 원래 노루 가죽을 얇게꼬아서 만드나 지금은 인조 가죽으로 손잡이처럼 해 놓은 이중 미닫이는 여닫이 문과 비교된다.

  우물이 원래 안 팠던 곳인데 100년 정도 전에 우물을 팠다고 한다. 예전에는 남창교 물을 길어다 사용 했다고 한다. 이는 지형이 배가 마을 껏 가라는 의미로 부 떨어 놓기 위해서 못을 내었다고 한다. 즉 우물을 파면 배주형 지형이 배가 가라앉는다고 생각 했다.

 원래 이 곳은 술정리가 아닌데 일제 감정기에 이름이 바뀐 것이라 한다. 술정리란 창녕현감 한강 정구가 지은 정자를 술정이라 한데에서 지어진 마을 이름이다.

마당에는 잔디가 갈려 있는데 이는 목조 건축물에 안 좋다고 한다. 수분이 증가하여 물기를 머금는다고 한다. 즉 목조 건축은 물에도 약하다는 것이다. 

 장독대가 있으며, 안채 뒤로는 오래된 나무들 있다. 디딜방아간의 증거가 디딜방아를 사용하던 돌이 일부 있는데 복원되지 못하고 있다.

오랜 세월을 거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옛 집을 이렇게 자세히 보니 전통 가옥 및 고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의 국보 술정리 동탑과 함께 창녕 답사에서는 필수코스로 많이 찾아 가는 장소이다. 


태그:#창녕 술정리 하씨 초가, #창녕 술정리 하병수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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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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