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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부터 친구랑 같이 자취를 시작하였다. 자취를 시작 할 때 부모님께서 밥 잘 먹고 학교를 다니라고 20kg의 쌀을 사주셨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하루 생활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2월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에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었다. 그리고 학교에 가지 않거나 약속이 없는 날에도 라면이나 빵으로 밥을 때우기 보다는 밥을 해 먹었다.

 

밥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3개월 만에 20kg의 쌀을 다 먹어 버렸다. 같이 사는 친구는 자신은 아침을 자주 먹지 않는 편이고,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집에서 밥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 쌀이 벌써 떨어진 걸 보고 의아해 했다.

 

 

"형 내가 집을 자주 비운 사이 쌀이 완전 없네?"

"그러게 말이다. 20kg 짜리 쌀도 내 먹성에 비하면 3달 밖에 못 버티네."

"요즘 쌀 값 정말 비싸던데 우리 돈 모아서 살 수 있을까?"

"쌀 10kg짜리가 3-4만원 한다던데 우리가 지금 당장 그런 돈이 어디 있냐?"

"아 이제 좀 집에서도 밥 좀 먹으려고 했더니 쌀이 없어서 못 먹게 생겼네."

"자취생이라 서럽다. 쌀이 없어서 밥도 못 해먹고 말이야."

 

매일 학교 식당에서 밥을 사먹기로 결심하다

 

쌀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어 앞으로 어떻게 아침을 먹을까 고민이 들었다. 부모님께 부탁하여 쌀을 사달라 하기에는 24살 나이는 너무 염치없는 행동 같아 포기했다.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쌀을 사기에는 감당 할 수 없는 액수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자취방에서는 잠만 자고 밥은 식당에 비해 가격이 싼 학교 식당에서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짐을 한 그날부터 바로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동아리 후배 녀석이 우리 집에서 밥을 해먹자고 했다.

 

"선배, 저희 선배 자취방에 가서 오늘 저녁 밥 해먹어요. 밖에서 먹으면 비싸잖아요. 저희가 재료를 사서 갈게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밥을 해먹을 쌀이 없어. 그렇다고 쌀을 살 수 있는 돈도 없거든. 그래서 앞으로 학생식당을 애용하기로 했어. 그냥 우리 학생식당 가자."

"아 정말 아쉽네요. 선배 집에서 먹는 음식이 맛있는데 말이에요."

"그러게 말이다. 갑자기 하늘에서 쌀 한가마니만 떨어졌으면 좋겠다."

 

"쌀 한가마니는 안되지만 이거라도 받으세요!"

 

모든 식사를 밖에서 해결하려고 하니 밥을 굶는 경우가 흔했다. 예전에는 집에 있는 음식을 대충 꺼내서 끼니를 때우곤 했다. 하지만 이른 아침 1교시 수업이거나, 일찍 활동보조인 아르바이트를 하는 날에는 밥을 먹지 않게 되었다.

 

아침을 먹지 않게 되니 자연스럽게 아침 시간을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으니 힘이 없어 수업 시간에 비몽사몽 하는 날이 늘었다. 그리고 아침에 공부를 하거나 다른 활동을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럴 때마다 매번 학생 식당에 가서 밥을 먹겠다고 다시 다짐을 했지만 그래도 바쁘면 밥을 먹지 않았다.

 

아침 시간만 되면 힘없이 동아리 방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동아리 후배가 갑자기 불렀다.

 

"선배! 요새 왜 이렇게 힘이 없어요?"

"저번에 말했듯이 쌀이 다 떨어져서 아침을 거르다 보니 힘이 없는 것 같애."

"아직 쌀 안사셨어요? 아 맞다. 학생 식당에서 밥 드신다면서요?"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먹기가 좀 그렇더라. 그리고 바쁘면 밥 먹는 것도 대충 넘어가버리거든."

"자 이거 받으세요."

"이 봉지 안에 든게 뭔데?"

"쌀 한가마니는 안되지만 이거 받으세요. 이제는 아침 밥 집에서 꼭 챙겨 드세요!"

"와우! 정말 고맙다."

"앞으로 쌀 떨어지시면 이야기 해주세요. 더 드릴께요. 어머니가 자취하는 선배 있다고 하니깐 필요하면 조금씩 줄 테니 말해라고 하시던데요.."

"정말? 이야 이제 아침을 굶거나 밥 못 해먹을 일은 없겠네. 정말 고맙다."

 

 

동아리 후배 한 녀석이 쌀을 가져오기 시작하자, 2-3명의 후배가 또 쌀을 가져왔다.

 

"선배 저희 쌀 가져왔어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이야 정말 고맙다. 이렇게 한 명 한 명 쌀 가져 오니 2주일은 먹을 쌀이 생기네. 완전 기분 좋아. 기분이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밥 한번 해먹자."

"에이. 선배 저희가 가서 밥을 축내면 또 쌀 없다고 밥 굶으실 거에요. 다음에 갈게요."

"완전 감동이다. 그래 다음에 내가 돈 생기면 쌀 사서 너희 한 번 초대할게."

"네. 그 때는 완전 맛있게 밥 해먹어요."

 

"앞으로 언제라도 부탁하세요!"

 

후배들에게 동아리 활동을 제안하면서 가장 먼저 이기적인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동아리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기획해보자고 했다.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쓰는 것 뿐 만 아니라 타인을 알기 위해 쓰고, 기쁜 일, 슬픈 일을 같이 나누자고 후배들과 약속했다.  

 

사실 후배들과 약속을 하면서도 20년간 자신만을 위해 바쁘게 살아온 인생이 대학 동아리 생활 3개월 만에 변하겠나 싶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동아리 후배들은 변화하였다. 내가 쌀을 달라고 보채지도 않았는데 후배들이 먼저 힘 없는 나의 모습을 걱정해주고 쌀을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20년간 자신만을 위해 살았던 새내기 후배들이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행동이 아닌가 생각된다.

 

후배들이 앞으로도 쌀이 없거나 먹을 게 없으면 집에서 챙겨 오겠다고 꼭 부탁하라고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앞으로 꼭 먹을거 없으면 부탁하세요! 제가 아니면 집에 찾아가서 검사합니다."

"그래. 매일 아침 밥 잘 챙겨 먹고 힘찬 모습으로 학교를 올게. 고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필자의 블로그와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쌀, #타인, #이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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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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