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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낮 박영태 쌍용차 관리인이 "정리해고를 철회해 달라"는 쌍용차 노동자 아내들의 요구를 외면하자, 아내들이 울고 있다.
 5일 낮 박영태 쌍용차 관리인이 "정리해고를 철회해 달라"는 쌍용차 노동자 아내들의 요구를 외면하자, 아내들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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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낮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노동자의 '아내'는 참 서럽게 울었다. 그는 도로 한복판에 털썩 주저앉아 품에 있던 갓난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흐느꼈다. 아기도 엄마를 따라 앙앙 울었다. 또 다른  '아내'도 드러누웠던 길바닥에서 일어나 눈물을 훔쳤다.

다른 10여 명의 '아내'들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이 막아섰던 검은색 '체어맨'은 이미 멀어진 뒤였다. 그 차엔 박영태 쌍용차 공동 법정관리인이 타고 있었다.

앞서 아내들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일한 죄밖에 없다", "정리해고를 철회해 달라"고 외쳤지만, 박영태 관리인은 용역의 힘을 빌려 아내들을 뿌리치고 공장을 떠났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쌍용차 노동자들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회사에 대한 분노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8일 정리해고 단행을 3일 앞둔 이날 쌍용차 공장은 이렇듯 눈물과 한숨으로 가득했다. 이미 해고통지서가 집집마다 날아든 상황에서 눈물과 한숨은 점차 분노로 바뀌고 있었다. 공권력 투입이 임박한 공장에는 긴장감이 꽉 들어찬 모습이었다.

"해고통지서 받으니까 멍해지더라"

박영태 관리인이 이날 공장을 찾은 건 노·사·정 간의 대화 때문이었다. 이날 오전 공장 내 회의실에서 박영태 관리인 등 회사 쪽 관계자들과 노조 집행부 그리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추미애 민주당 의원·송명호 평택시장 등이 참여하는 간담회가 있었다.

노조가 제시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인건비 삭감 방안에 대해 회사는 "현실성이 없다"며 정리해고와 공권력 투입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일말의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대화가 이뤄진 3시간 동안 회의실 밖 복도에서 기다린 많은 노동자와 그 아내들의 얼굴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가족대책위원장인 이정아(35)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자의 눈에 그의 손에 들린 꾸깃꾸깃한 우편물도착안내서가 보였다. 집배원이 방문한 지난 3일 낮 집에 아무도 없었던 탓에 등기가 우체국에 보관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밤 집 대문에 붙여 있던 이 안내서를 보는 순간, 이씨의 눈은 금세 물기로 흐릿해졌단다. 해고통지서였다.

"예상을 수백 번 했지만, 실제로 받고 보니 멍해졌다. 다른 집에도 알아보니 많이들 받았다고 했다. 누군가는 해고통지서를 받고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울자, 집배원이 알아서 반송해줬단다. 그날 밤 남편에게 '해고통지서 받았느냐'고 문자가 왔다. 답문을 보냈더니 응답이 없었다. 눈물이 흐르더라."

그와의 대화 도중,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부산에 있는 친정아버지였다. 그는 "애들은 잘 지내고 있고요. 여기에 저만 있는 게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전했다. 이어 한동안 친정아버지의 목소리를 듣던 이씨의 입에서는 "(해고통지서) 받았어요"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후 통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고, 기자와의 대화도 끊겼다.

"살아도 산 게 아니다"... 해고자도 비해고자도 함께 싸워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내부에서 컨테이너박스 등으로 엮은 바리케이드가 마련됐다.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내부에서 컨테이너박스 등으로 엮은 바리케이드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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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은 찾은 외부인들이 돌아가자 공장에는 다시 적막감이 감돌았다. 파업·투쟁과 관련된 온갖 펼침막이 나부끼는 정문을 지나자 기계 소리가 아닌 풀벌레 소리가 기자를 맞았다. 신차 야적장은 텅 비어 있었고, 공장 곳곳엔 부품 더미가 쌓여 있었다.

바닥에는 4일 회사에서 헬리콥터로 뿌린 전단이 흩어져 있었다. 이 '삐라'는 '외부 노동단체가 여러분을 선전·선동해 불법적인 투쟁에 참여시키고 있다'며 '정리해고는 단행할 수밖에 없으니, (희망퇴직이라는) 용단과 현명한 결단을 내려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와 기자재 더미로 이뤄진 바리케이드를 여러 차례 지나서야 노동자 1000여 명이 15일째 숙식을 하고 있는 공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노조 정비지회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차체1팀 공장에 들어서자, 내걸린 수건·빨래들과 여러 곳에 마련된 취사도구·식탁이 눈에 띄었다. 은박 깔개가 깔린 공장 바닥에서 노동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쌍용차 부산서비스센터에서 왔다는 김정수(46)씨는 "공권력이 투입될까 부담이 된다"면서도 "여기 남아 있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밝혔다.

"이틀 전 부인이 전화했는데, 해고통지서가 와서 바로 반송했다고 하더라. 19년 동안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해고통지라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 오늘이 마감인 희망퇴직을 신청하면 돈은 더 받고 나갈 수 있지만, 19년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눈에 밟힌다. 맞서는 수밖에…."

김씨와는 반대로 양대명(38·광주서비스센터 근무)씨는 살아남았다. 해고통지를 받지 않은 것. 그의 가족들은 양씨가 왜 계속 일할 수 있는 행운을 걷어차고 있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양씨는 가족 같은 동료들을 버리지 못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양씨는 "1997년 1300여명이던 노조 정비지회 조합원 숫자는 현재 386명으로 줄었다, 3~4년마다 한 번씩 구조조정을 한다"며 "이번에 살아남아도 내가 언제 정리해고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정리해고 비대상자 중 상당수는 회사의 분사 정책을 통해 사실상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살아남아도 산 게 아니라는 말이 공장 내부에 떠도는 이유다.

높아지는 긴장감... "공권력 투입되면 많이 다칠 것"

5일 오후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노동자들의 공권력 침탈 대비 훈련 모습을 걱정스러운 듯 지켜보고 있다.
 5일 오후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노동자들의 공권력 침탈 대비 훈련 모습을 걱정스러운 듯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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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한때 공장에선 사이렌 소리가 날카롭게 퍼졌다. 5분도 안 돼 공장 정문으로 노동자들이 줄지어 몰려들었다. 안전모를 쓰고, 붉은 스카프로 얼굴은 가린 이들의 손에는 쇠파이프가 들렸다. 이들은 정문을 가로막고 있는 2층짜리 컨테이너 박스에 오르거나 공장 울타리의 한자리씩을 지켰다. 공권력 침탈에 따른 훈련이었다.

10개월 된 아기를 안고 가족대책위 천막에서 빠져나온 정순연(29)씨가 컨테이너 박스에 오른 남편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는 "공권력이 투입되면 정말 많은 사람이 다칠 것 같다,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노동자들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방극제(46)씨는 "공권력이 들어오면 소주 한 병이 먹어야 제대로 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족들 생각에 매일 마음으로 울고 있다.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지만, 살기 위해 싸운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장에서는 보수 언론과 경제 신문에 나오는 것처럼 회사를 망하게 하려는 폭도의 모습은 없었다. 공장 곳곳에 내걸린 리본에는 한 아내의 평범한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인 쌍용차 노동자들의 모습이 오롯이 담겼다. 다음은 한 리본에 적힌 글이다.

"여보. 작지만 아름다운 미래를 위하여 참고 있어줘. 평생을 위한 투쟁이니까. 당신과 아이들이 살기 좋은 세상 함께 만들자. 생존권이 보장되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볼게. 사랑해."

리본에는 '투쟁', '파업'만큼이나 '사랑', '그립다'는 단어도 많았다. 그리고 쌍용차 노동자들이 회사 사정보다 자기 뱃속만 챙기는 귀족 노동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노동자가 리본에 적은 다음의 글귀는 가슴을 울렸다.

"쌍용자동차여 영원하라."


태그:#쌍용자동차 파업, #정리해고,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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