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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고 설거지도 끝낼 즈음해서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처음 보는 단발머리 여고생 같은 앳된 여자가 접시에 떡을 들고 있었다.

 

"바로 위층에 사는 사람이에요. 오늘이 애기 백일이라 떡 좀 드시라구요."

"어머, 그래요. 잘 먹겠어요. 참, 접시를 비워줄게요."

"아니, 괜찮아요. 접시는 일회용이라 그냥 두세요."


떡 접시를 들고 나는 좀 머쓱해졌다. 접시엔 네모난 백설기 위에 분홍색 하트모양이 예쁘게 박혀있었다. 남편은 떡을 보더니, 애기 백일인데 그거 그냥 받아도 되는 거냐고 묻는다. 옆에 있던 아들아이도 한마디 한다.


"와~ 그 아저씨 결혼했었어? 그럼 애기가 있는데 공사를 한거야?"


작년 여름, 바로 위층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옆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 집은 초등학생인 남자애들만 둘이어서 이따금씩 씨름 같은 걸 하는지 쿵쾅대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그 애 둘이 태권도복을 입고 다니는 걸 기억했다.


저녁때 욕실에 들어가면 위층 아이들 아빠가 아이들에게 야단치는 소리도 환풍구를 통해서 들려왔다. 어디 그뿐인가. 짜증 내며 투덜대는 아이들 소리도 들렸다. 그런 소리들은 다들 살아가는 일상이어서 소음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쩌다 만난 그 집 엄마는 '우리 애들이 너무 시끄럽죠?'라고 말하며 바로 아래층에 사는 내게 미안해했다.

 

위층이 이사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소음에 온 신경이 곤두섰다. 드릴로 뭔가를 뚫어대는 기계 소리가 연이어 계속 들리는가 하면,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겼다 다시 들렸다.


처음엔 이사를 왔으니 하루 이틀은 저런 소리도 나겠거니 했다. 그런데 이틀 사흘이 아니었다. 일주일이 넘도록 우리 집 천장이나 바닥에서 떨어져 나갈 듯, 둔탁하고 어쩔 땐 예리한 것이 떨어질 듯 울리는 소리에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래 위층에 사는 이웃인데 직접 얼굴을 대면하며 싫은 소리를 하는 게 걸려서 경비실에서 대신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그럴 땐 잠시 기계 소리가 멈추기도 했다. 그런데 밤 열한 시가 넘어서도 나는 소리에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웃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싸가지 없는 ×이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이지 올라가서 따지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활짝 열린 현관에 고개를 들이미니 페인트냄새가 확 끼쳤다. 위층은 한눈에 봐도 대공사였다. 어디를 그렇게 뜯어고치는지 살림이 들어오기 전에 손을 봐두는 것 같았다. 문을 쾅쾅 두드리며 아래층에서 왔다고 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나오면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내가 뭘 말하려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그렇잖아도 지금 공사를 끝내고 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이에요?"

"네."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공사도 끝났다는데 내가 좀 참지, 했다. 그날은 정말 공사가 끝나서 그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은 더 이상 드릴 소리가 나지 않았다.


어느 날, 옆 동네로 이사 간 위층에 살던 엄마를 시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새로 이사 온 사람이 드릴 소리를 내면서 어찌나 시끄럽게 공사를 하는지 올라가서 따지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엄마는 그 집을 산 사람이 곧 결혼할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혼집을 꾸미는데 신경을 엄청 많이 쓰는 것 같다고 했다.


한동안 위층은 잠잠했고 나는 시나브로 그 일을 잊고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시 신경을 건드리는 예전의 그 드릴 소리가 들렸다. 게다가 땅 땅 쳐대는 망치 소리까지 합세했다. 공사가 끝났다는데 저건 또 뭔가 싶었다.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남자가 나왔다.


"지난번에 공사를 끝냈다고 했는데 어떻게 된 거예요?"

"아~ 네. 그때 친구가 와서 공사를 했는데 잘못돼서 재공사를 하게 됐어요. 죄송한데 오늘 중으로 끝낼 거예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남자가 아니었다. 나는 참는 길에 오늘까지만 참자 했다. 친구한테 공사를 맡겼다가 잘못된 공사를 하는 사람 심정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어쩜 혼자 사는 곳도 아니고 공동주택에서 배려하는 마음이 그렇게 없을까 싶었다.


죄송하다는 말만 무성했지 정말 그런 생각이 있다면 여차저차 해서 공사를 하는데 시끄럽더라도 양해를 구한다고 말 한마디를 하거나, 한 줄 써서 엘리베이터에 써 붙여놨다면 그리 서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시 위층 집 일로 언짢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누그러졌다. 그런데 간혹 조심스레 뭔가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귀에 익은 드릴 소리였다. 주말에 날을 잡아서 하는 건지, 한낮에 잠깐씩 들리는가 하면 평일 밤에도 간간이 들렸다. 그럴 때면 아들아이가 우스개로 말하곤 했다.


"위층에 아저씨는 공사가 취민가 봐. 주말에는 하루 종일 '즐기고' 평소에는 회사 끝나고 와서 '놀고'"


작년엔 딸애가 수험생이어서 밤늦게 들리는 소리에 내가 더 민감했을 수도 있다. 해가 바뀌고 위층에 살림이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아이가 말한 것처럼 위층의 남자는 자기 '취미'를 포기할 수 없는지 드릴과 망치 소리를 번갈아 층간 아래 우리 집으로 내려 보냈다. 이젠 화가 나지도 않았다. 소리가 점점 시끄러워지면 경비실도 거치지 않고 바로 관리실로 연락을 한다. 그러면 사흘 정도는 약발이 먹혔다.


그리고 또 며칠 전이었다. 한낮에 계속 이어지는 드릴 소리에 인터폰을 눌러 관리실에 연락했다. 이젠 입에 거품을 물고 큰소리칠 일도 아니었다. 위층이 계속 공사 중인데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 너무 괴로우니 관리를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잠시 후, 관리실에서 연락이 왔다. 위층에 에어컨을 설치하느라 그러니 조금만 참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틀 후에 백일떡을 받은 것이다. 드릴 소리가 나는 사이로 갓난애 우는 소리가 들리긴 했었다. 위층 남자는 신혼집을 새로 꾸미고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았나 보다. 그 아기가 백일이 되어 떡을 돌리는 위층남자의 부인을 나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어쩌면 그동안 공사로 불편했던 이웃에게 떡을 돌리며 미안했던 마음을 표현한 건 아닐까 싶어 나도 백일떡 답례로 아기 턱받이를 준비했다. 선물을 건네며 여고생처럼 풋풋한 단발머리 아기엄마와 혹시 차 한잔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도 없지 않았다.


아기엄마는 턱받이를 받으며 고맙다고 했다. 현관에서 고개를 기웃하며 안을 살짝 보니 같은 공간인데도 아기가 있는 신혼집은 울긋불긋 화려했다.

 

"공사 때문에 제가 아기 아빠한테 싫은 소리를 좀 했었어요."

"애기가 남자 아긴가요?"


'잠깐 들어오라'는 말을 기대했으나 짤막하게 '네'라고만 답하는 아기엄마와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나는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동안 우리가 겪은 '고통'을 아기엄마가 모를 수도 있겠지, 생각했지만 화해하고 싶었던 마음이 왠지 허전했다.


어쩌면 아기엄마도 백일떡을 받아들면서 머쓱해했던 나처럼 그런 마음이었을까?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백설기, #층간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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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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